당나귀 방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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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방귀
  • 범상(정암사 총무스님)
  • 승인 2010.08.2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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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는 마음이 없다' '본래 번뇌와 망상도 없다' 그런데 중생은 오염된 마음에 집착하여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괴로움(苦) 속에서 살아간다.

중생의 마음작용을 비유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해 본다.

시골에 사는 점잖은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당나귀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번에도 낙방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마침 길가에 점쟁이가 있기에 선비는 한참 거드름을 피우며, 점쟁이에게 "이번 과거에 내가 급제 할 수 있는지 알아보거라"하며 위엄을 세웠다.

점쟁이는 양반의 꼬락서니에 화가 나서 전혀 엉뚱하게 화풀이를 했다. "나으리 급제는 고사하고 타고 가는 나귀가 방귀를 3번 뀌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괘가 나옵니다."

이때까지 당나귀 방귀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선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길을 떠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당나귀 방귀소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정말로 당나귀가 방귀를 뀌는 것이 아닌가. 점쟁이의 점괘를 믿지 않았던 선비는 점괘에 대해 혼란스러워지며 불안해졌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돌멩이를 주워 당나귀의 그곳을 막기로 했다.

얼마가지 않아 당나귀가 또 방귀를 뀌자 선비는 너무나 당황하여 좀 더 큰 돌멩이로 그곳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다행히 저녁때가 될 때까지 더 이상 방귀를 뀌지 않았고 목적지인 동네 어귀에 당도하여 개울가에서 잠시 손도 씻고 세수를 하면서 쉬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낮에 그곳을 막아 두었던 돌멩이가 빠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와 함께 이제 조금만 참으면 하루가 지나가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그머니 돌아서 당나귀의 꽁무니를 살피는데 배속에서 반나절이나 부글부글 끓었던 방귀가스에 막아놓았던 돌멩이가 세차게 튀어나오며 선비의 이마를 때렸고, 순간 당나귀도 놀라 힘차게 뒷발질을 하는 바람에 결국 선비는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중생의 허망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일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당나귀는 늘 방귀를 뀌는 짐승이고, 점쟁이는 폼 잡고 으스대는 선비의 행동에 화가 나서 한 바탕 골려주려고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당나귀 방귀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선비는 당나귀 방귀소리를 듣는 순간 스스로 불안한 마음을 만들어내어 결국 점쟁이의 장난스런 점괘처럼 죽고 말았다.

우리속담에 "사랑에 빠지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라는 말처럼 중생의 마음이란 언제나 주관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와 사물을 판단하므로 실재하는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재하는 마음이 없지만' 중생은 허망한 마음을 일으켜 번뇌 망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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