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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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 전만성(화가, 홍성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0.08.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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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여름날. 조합토 화장토. 높이 15cm.


천안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데 좀 앉아 있자니 외국 어린이들이 탔는지 유창한 영어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부드러운지 실바람소리 같이 감미롭고 여렸다. 그러나 누군가와 상대를 하여 대화를 하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간간히 우리말이 섞여 외국 아이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영어가 입속에 그득히 고여 저절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어 소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자꾸 귀에 걸려 돌아다보니 열 살도 안 된 남자애 둘과 여자애 하나가 보이는 것 생각나는 것을 영어로 번역하며 놀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회지의 영악스런 아이들 같지는 않았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수한 옷차림에 평범한 외모를 한 아이들 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사내 아이 하나가 머리에 퍼머를 하고 귀에 반짝이는 귀고리 하나를 달았다는 것뿐이었다. 하기는 귀고리도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아이들이 하고 있으니 특별할 것은 없는 일이겠다.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아이들의 영어놀이는 그치지 않았다. 영어도 우리가 아는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가 아니라 얼른 알아듣기 힘든 줄줄 이어지는 영어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고개를 돌려 보니 아이들 옆에서 할머니 한 분이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방학 때니 할머니를 따라 시골집에 놀러 가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할머니에 상관하지 않고 영어를 쉼 없이 흘려보내며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디이스 어 츄레인' 이번에 좀 세고 분명한 발음이었다. 소리도 그 아이들 쪽이 아니라 바로 내 등 뒤였다. '아유 해삐?' '아이머 유어 마더. 유아어 마이 베이비' 아이들 같이 줄줄 이어지는 영어가 아니라서 알아듣기는 했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젊은 엄마 한 분이 갓난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하는 영어 교육이었다. 건너편 아이들의 영어놀이에 박자라도 맞추는 양 아이를 추석이며 한마디 한마디를 똑똑 끊어 아이의 귀에 넣어주고 있었다.

젊은 엄마의 영어 실력도 보통은 아니었다. 영어 교사이거나 영어 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숨쉬기까지 영어로 하는 것이 모자라 갓난쟁이 아이의 귀에 까지 영어를 넣어 주어야 하는 우리의 영어에 대한 신앙이 끔찍스럽게 느껴졌다.

영어가 경쟁력이라고 말할 때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저 아이들과 저 아이들의 부모가 영어를 위해 감당해야 했을 고초가 얼마나 했을까? 영어부터 배우는 저 아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 될 것인가?

"이잉? 아빠가 왠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찍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라고 대견해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는 부모들이 문제야. 그러다가 정체성 없는 나라가 된다는 거 모르나! 잃어버린 혼은 어디 가서 찾을 거야." 생각 있는 아버지로 보이고 싶은 내 속 마음을 꿰뚫었는지 아들아이가 일갈했다. 본전도 못 찾은 아들과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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