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남편 병수발과 20여년간 순대장사 그리고 청소부
'"남은 인생 나 자신과 이웃위해 살고 싶다"
상설시장 내 순대장사 김경식 씨
'"남은 인생 나 자신과 이웃위해 살고 싶다"
상설시장 내 순대장사 김경식 씨

돈이 없을 때 한 끼 식사대용으로 그만이었던 순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속이 꽉 찬 순대가 마침 바쁜 취재일정으로 점심식사를 못한 기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순대 한 접시 시켜놓고 주인 아주머니와의 대화 속에 속이 꽉 찬 순대만큼 아주머니의 삶도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있다.
상설시장 내 한 평도 채 안되는 가게에서 2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순대를 팔고 있는 김경식(59) 씨의 하루는 새벽 4시 반부터 시작된다.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씨는 새벽기도를 위해 집을 나선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식사 후 걸음을 재촉하며 도착 한 곳은 시내의 한 건물 앞. 순대장사와 함께 병행하고 있는 청소부 일을 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계단과 건물 곳곳 청소를 끝마쳐야 된다"며 "조금만 부지런하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깨끗해진 건물을 보며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것 같아 몸은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흐믓해 한다.
청소부 일을 끝마치고 본업(?)인 순대를 팔기 위해 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김 씨는 부지런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한 후 간신히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아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다.
평범했던 김 씨의 일상이 생업 전선에 나가 고된 삶을 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갈산면 가곡리에서 태어나 22세 꽃다운 나이에 당시 목수였던 남편과 결혼 한 김 씨는 두아들을 낳고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전업주부였다. 김 씨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 것은 28년 전. 갑작스런 남편의 위암 판정이 김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절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어떻게든 남편의 병수발과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는 좌절해 있을 수 만은 없었던 김 씨는 모든 역경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섰다. 우선 병환 중인 남편의 병수발을 위해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장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순대를 팔며 새벽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청소부 일을 시작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머뭇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지내왔던 것 같다"며 "돌이켜보면 순탄치 못했던 삶 속 남에게 많이 베풀지는 못했지만 신세 안지고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8년 전 끝내 남편과 사별한 김 씨는 경제적으로 힘든 순간에도 두 아들이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등록금을 한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대를 팔고 건물청소를 하며 빈병을 모아 팔고 폐유로 비누를 만들어 파는 등 잠시도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김 씨의 충실한 삶에 보답하듯 형제는 너무도 성실하게 잘 자라줘 대학졸업 후 큰 아들은 현재 직업군인(소령)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작은 아들은 기독교 신자로 교회 권사이며 두 아들 모두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김 씨에게 손주까지 안겨줬다.
자식들이 이제는 일을 그만두고 편하게 살라고 하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김 씨는 "지금까지는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 계획"이라며 "노후대책을 위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장사와 청소부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또한, 여유가 된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김 씨에게서 강한 모성애와 여성 특유의 강인함으로 못해낼 것이 없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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