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북 노은리 충문사, 노은단 추모제향

성삼문 선생을 비롯한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추모제향이 지난 3일 홍북면 노은리 충문사, 노은단에서 거행됐다.
성삼문선생(노은단)숭모회(회장 황필성)에서 주관한 이날 제향은 창녕성씨 문중회원을 비롯해 각 기관단체장 및 지역유림, 마을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완수 홍성군수 권한대행이 초헌관, 이동의 홍성교육장이 아헌관, 성기문 창녕성씨 문중대표가 종헌관을 맡아 전폐, 초헌, 아헌, 종헌례의 순으로 거행됐다. 이날 제향은 우선 충문사에서 성삼문 선생을 추모한 뒤 노은단에서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의식으로 치러졌다.
매죽헌 성삼문(1418~1456) 선생의 자는 근보(謹甫)․눌옹(訥翁)이고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며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사육신(박팽년․유성원․유응부․이개․하위지)의 한 사람으로 1418년(태종 18) 무관 성승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모친이 꿈에서 "낳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 받았다고 해서 이름을 삼문이라고 지었다.
선생은 1442년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독>을 편찬하고 경연관이 돼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또 세종이 정음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 때 정인지․신숙주․최항․박팽년․이개 등과 더불어 이를 도왔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을 배워오고 명 사신을 따라 명에 가서 음운과 교장의 제도를 연구, 그 정확을 기한 끝에 1446년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큰 공헌을 했다. 1455년 세조가 찬탈을 통해 왕위에 오르자 폐위된 단종에 대한 굳은 절개를 지키고자 1456년(세조 2년)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능지처형을 당했다. 이어 아버지 성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세 동생과 네 아들도 모두 살해됐다. 1758년(영조 34년) 이조판서에 추증됐고 충문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저서로는 <매죽헌집>, 문집에는 <성근보집>이 있다.
현재 홍북 노은리에는 성삼문선생유허지(노은단, 단소)가 1997년부터 복원에 착수했으며 2002년 발굴조사를 토대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2006년 6월 사당 신축공사를 완공, 지난해 11월에는 충문사 현판을 걸었다. 1973년 12월 24일 충남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노은단은 1676년(숙종 2) 읍사 이량이 성삼문 선생의 옛집 근방에 건립한 사당집으로 조정에서는 녹운서원을 사액하고 해마다 사육신을 봉사했다. 흥선대원군이 사원을 철폐되자 사육신의 위패를 묻고 노은단이라 부르며 매년 12월 제향을 지내고 있다. 또 성삼문선생유허비는 1984년 5월 17일 충남도문화재자료 제164호로 지정된 추모비로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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