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보초의 고서·헌책방거리, 60년 전통의 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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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진보초의 고서·헌책방거리, 60년 전통의 책 축제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1.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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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8〉
일본 도쿄의 간다 진보초에는 유명한 고서점과 헌책방 200여개가 있으며, 올해로 60년째 도쿄명물 고서축제와 29회째 진보초 북페스티벌축제를 열고 있다.
일본 도쿄의 간다 진보초에는 유명한 고서점과 헌책방 200여개가 있으며, 올해로 60년째 도쿄명물 고서축제와 29회째 진보초 북페스티벌축제를 열고 있다.

독서에의 감성을 자극, 올해 제60회 도쿄의 명물 간다의 고서축제 열려
올해로 29회째 진보초 북 페스티벌 등 헌책축제도 고서축제기간에 함께
세계 10위권 출판대국인 한국에서는 절판된 책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일본 도쿄의 간다 진보초(神田神保町)에는 유명한 고서점가와 헌책방이 있다. 올해도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간다고서축제(神田古本祭り)’가 열렸다. 1960년에 시작된 축제로 올해로 60년째 이어져 오는 축제다. 간다 진보초의 고서점가와 헌책방은 ‘야스쿠니토리(靖国通り)’라는 거리에 있는데 약 500m에 걸쳐 180여 개가 넘는 책방이 있다고 한다. 물론 헌책방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와나미(岩波), 삼성당(三省堂) 등 일본의 유수한 책방이 모두 몰려 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고서점과 헌책방거리이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あなたの人生を変える一冊との出会いがあるかも?)’라는 말로 독서에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축제를 열고 있다.

고서축제 ‘도쿄 명물 간다 후루혼 마쓰리’는 올해도 10월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져 60년째를 맞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매년 축제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기간에는 100만 권 정도의 헌책이 특별히 할인된 가격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고서축제가 행사의 포문을 열면, 신간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과 출판사가 축제 말미에 합류해 그야말로 헌책과 새 책 할 것 없이 ‘책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축제는 고서나 헌책 판매뿐 아니라 작가와 만남과 강좌, 이벤트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진다. 축제 기간에는 헌책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회성 홍보나 단순한 판매행사에서 벗어난 고서와 헌책축제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본 간다 진보초의 고서와 헌책축제는 전적으로 고서점과 헌책방 주인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그 중심에는 진보초의 고서점과 헌책방거리 상인들을 주축으로 결성한 ‘간다고서연맹’이 있다. 축제는 헌책방 주인들 스스로 축제를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다.


■ 도쿄명물 고서축제·북페스티벌 등 책 축제

동경의 많은 남녀노소는 물론 일본 전역과 세계 각국의 애호가와 관광객들 헌책축제를 만끽하고 있다. 정말로 부러운 모습이다. 헌책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럽고 헌책방을 계속 유지하는 정성이 부러운 모습이다. 책방들은 책들을 정성스럽게도 다룬다. 얇은 종이로 책을 다시 싸서 고객에게 건네는 등 정성을 다한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학교에서 새 책을 받으면 이렇게 겉을 헌 달력 등으로 싸서 썼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덕분에 학기가 끝나도 책의 겉이 깨끗했던 경험이다. 그 때의 헌책이 지금도 어딘가의 헌책방에 꽂혀 있을 것이다.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역에서 신주쿠로 향하는 주오센(中央線)으로 갈아타 한 정거장 더 가면 닿는 오차노미즈. 이곳에서 남쪽으로 열려 있는 간다(神田)와 진보초(神保町)는 학교와 서점, 출판사가 몰려 있는 도쿄의 교육 문화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원래 이곳은 문화의 향기와는 거리가 먼 상인 거리로 발전했던 곳으로 아직도 에도나 메이지시대 상점의 모습이 남아 있는 몇몇 시니세(대대로 전해 내려온 가게)가 있지만 이제는 도쿄 문화의 거리로 완전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간다와 진보초에 있는 고서점과 헌책방 거리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대로인 야스쿠니 도리를 따라 늘어선 고서점가가 있고, 이곳과 평행하게 남쪽으로 한 골목 떨어진 쓰즈랑(すずらん) 도리를 따라 늘어선 고서점 거리가 있다. 보통 이 두 거리를 묶어 ‘간다 고서점 거리’라고 한다. 이미 도쿄의 명물이 된 간다 고서적 마쓰리는 1960년 이래 매년 가을에 개최하고 있는데, 이 기간에는 운신을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온다. 올해로 60년째를 맞는 이 행사는 일본, 아니 세계 최대 규모의 고서축제다. 이 일대 180여 고서점에서 준비한 100만여 권의 책을 평소보다 30~50% 저렴하게 판매한다. 지난 10월 26~27일 행사장 인근에서는 기존 출판사들이 올해로 29회째를 맞는 ‘진보초 북페스티벌’을 마련해 성황을 이뤘다. 재고 책 1000만권, 매장면적만도 5000평이나 되는 공간에서 대량의 새 책도 싼값에 판매했다. 축제 기간 방문객만 50~60만 명으로, 인근 음식점과 쇼핑센터 등의 매출도 덩달아 뛰면서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 진보초 일대 세계적인 고서점·헌책방거리
진보초를 중심으로 야스쿠니 거리, 하쿠산 거리 일대는 고서점가로 유명한 곳이다. 개성 있는 서점들이 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서점이 바로 ‘간다 고쇼센터’와 ‘산세이도 쇼텐’이다. 이들 대형서점 외에도 작은 서점들이 거리에 가득 늘어서 있다. 고지도·의학서 등 전문서적을 취급하는 곳도 많지만 소설이나 만화, 성인잡지류의 대중서적을 상상을 초월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서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저 곰팡내 나는 고서점들만 죽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헌책을 뒤지다 피곤해진 다리를 쉬어가도록 카페, 음식점, 선술집들이 골목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도쿄의 진보초 전철역 일대는 세계적인 고서점과 헌책방 거리이다. 지금은 치요다구로 들어갔지만 원래 간다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곳은 흔히 ‘간다(神田) 고서점가’와 ‘헌책방 거리’로 불린다. 도쿄 토박이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간다 지역에는 100여 년 전 메이지시대에 도쿄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이 여럿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레 수많은 서점들이 몰려들게 됐다. 몇 개의 대학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지만 아직까지도 진보초 역을 중심으로 고서적과 헌책 등을 다루는 서점들이 180여 군데 남아 있다고 한다. 고서점 마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 헤이온와이의 헌책방 수가 40여 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진보초에 있는 헌책방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서점의 위치와 취급분야를 적어놓은 지도가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진보초에는 헌책방뿐만 아니라 많은 출판사와 신간서점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에서 문고판 독서 붐을 일으켰던 출판사 ‘이와나미(岩波)북센터’를 비롯해 1881년에 개점한 ‘산세이도(三省堂)서점’이 모두 진보초에 둥지를 틀고 있다.
 


우리나라의 헌책방이야 서울의 청계천에도 있었고 부산 보수동에도 많이 남아 있지만 진보초의 고서점과 우리나라의 헌책방이 다른 점은 이곳의 서점들이 각각 특정한 전문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집이나 희귀 지도만 취급하는 서점이 있는가하면 온갖 만화책만 쌓아둔 곳도 있다. 어떤 장르를 다루든 책을 대하는 일본의 헌책방 주인들의 자세는 진지하기 짝이 없다. 진보초 고서점이나 헌책방 어느 가게를 들어가 봐도 주인들이 정성들여 헌 책을 손질하는 장면과 쉽게 마주친다. 낡은 책이 들어오면 먼저 솔로 먼지를 털어낸 다음 마치 갓난아기를 돌보듯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가며 정성들여 손때를 닦아낸다. 청소가 끝나면 붓으로 책의 제목과 가격을 써서 띠를 두른다. 아무리 낡은 책이라도 붓글씨가 적힌 책 띠를 두르면 그럴듯한 모습으로 타시 태어나게 된다. 비로소 헌책이 새로운 주인을 맞을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이 지극정성으로 책을 아끼다보니 진보초의 책방에 진열되는 책들은 비록 헌책일망정 고급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책 축제 기간 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평소의 절반 또는 그 이하의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고 희귀본 경매에도 참가하게 된다. 고서와 희귀본은 책값이 따로 없을 정도다. 세계 10위권에 든 출판대국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절판된 책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그 책을 만들어낸 출판사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책읽기의 계절, 독서의 계절’ 가을, 책을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도쿄 진보초 거리에서 지금은 규모가 줄어들어 점점 볼품이 없어지고 있는 서울과 부산의 헌책방 거리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게 된다. 일본 헌책방들의 조그마한 노력들이 오늘날의 간다 진보초를 헌책방들의 단순한 집산이 아닌 일종의 문화아이콘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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