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낙조, 은빛물결의 영산 ‘오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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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낙조, 은빛물결의 영산 ‘오서산’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07.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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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18〉

오서산(烏棲山)은 보령시 청라면과 청소면, 홍성군 광천읍과 장곡면, 청양군 화성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791m 인 오서산은 ‘평지 돌출형 산’으로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산세의 위용과 기상이 빼어나고 신령스런 기운을 지닌 호서 제일의 명산으로 꼽힌다. 

‘삼국사기 전 32’에 오서악(烏棲岳)이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에는 명산대천을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눠 국가 차원의 천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백제 때는 오산으로 불리며 대사 격에 해당 됐고, 통일신라에서는 중사의 위치에 있었으며, 이후 백제 부흥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다.

또한 중국지리서인 훈원의 ‘백제전’에는 신령스런 산으로 오산과 계룡산을 소개하고 있다. 정암사 중수기에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에 버금가는 호서지방 최고의 명산으로 수록 기운이 크게 맞닿아 우뚝 서 여유 있게 솟아 있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오산 또는 오서산으로 불리며 민족의 영산으로 태양 숭배사상과 산악신앙의 중심이 돼 왔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오서산으로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까마귀산’으로 비하되면서 영산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됐다. 오서산이 단군 조선에서부터 백제로 이어지는 동안 신령스런 기운이 넘치는 산으로 받들어진 것은 풍수지리적으로는 물론 그 정기와 위용이 ‘태양 안에 있는 세발달린 까마귀의 삼족오가 살고 신의 사자로서 천상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우리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서산은 영산으로서 민족의 정기를 이어오고 있으나,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까마귀산’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늦게나마 정암사를 비롯한 뜻있는 광천지역의 주민들이 힘을 모아 ‘오서산 정기 회복운동’에 나섰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서산 정상에서 보면 서쪽으로는 눈앞에 안면도가 펼쳐지고, 그 끝 지점에 원산도가 그림처럼 나붙었다. 남으로는 성주산, 성태산, 장군봉이 가지런하다. 북으로는 울렁거리는 금북정맥 줄기 쪽으로 홍성읍내와 백월산, 홍동산, 용봉산, 덕숭산, 가야산이 가물거린다. 한편 가까이에는 의좋은 형제가 살았던 예당저수지가 보이고 왼편으로 임존성이 둘러싸인 봉수산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끝없이 타고 내리는 기나 긴 칠갑산 줄기며, 차령산, 광덕산, 흑성산 등 북쪽의 금북정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금북정맥의 정기 탓인지, 기골이 만만치 않은 인물을 숱하게 배출했다. 고려 공민왕이 이 고을을 목(牧)으로 승격시킨 것도 여기가 보우국사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영 장군을 비롯해 조선초기의 성승, 성삼문, 성웅 이순신, 추사 김정희, 한말의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유관순 열사, 매헌 윤봉길 의사, 고암 이응노 화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민족사를 이끌었던 훌륭한 지도자들이 어느 고장 보다 많았던 곡절이 있다.

정암사의 범종각 다락을 지나 그 뒤에 심검당, 뜨락 위에 극락전, 그 앞으로 요사채, 내려다보면 너른 광천바닥이 발치아래 펼쳐진다. 지금 현판에는 ‘淨巖寺(정암사)’로 쓰였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正庵寺(정암사)’로 표기돼 있다. 백제 성왕3년(527)에 지어진 절로 신라 헌강왕 때 이웃하는 보령의 성주산에 성주사를 크게 일궜고, 거기의 ‘낭혜화상백월보광지탑비(국보8호)’의 자취를 전하는 무염대사가 크게 중수했다지만,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고의 침략 때 불타 그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오서산은 서해안 최고(해발 791m)의 명산으로 해마다 가을이면 정상을 중심으로 약 2km에 걸친 주능선에 은빛물결로 출렁이는 억새풀 군락이 장관을 이루며 정상에서는 가을의 서해바다의 낙조와 섬 자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오서산 억새는 10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중순경에 최고의 절정을 이루며 11월초까지 계속되는데, 홍성 12경으로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져 산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서산을 찾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에서 광천IC로 나와 읍내 방향으로 10분 남짓 들어오면 광천 오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기차 또는 버스로 광천역, 광천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광천은 서해에서 생산되는 김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남해안의 돌김과 달리 표면이 얇고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재래김’은 옛날 방식 그대로 생산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이제는 ‘광천김’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됐다. 

홍성의 특산품인 광천토굴새우젓은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광천토굴새우젓은 옹암포구의 독배마을 뒤 야산의 자연 토굴에서 숙성시키는 특징이 있다. 30여개의 토굴에서는 2만5000여 드럼 분량의 새우젓이 익어간다. 토굴은 영상 14~15도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천연 저장고다. 토굴 속에서 숙성을 시킴으로써 새우젓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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