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3대 하천, 대전천·갑천·유등천 중심 촌락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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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3대 하천, 대전천·갑천·유등천 중심 촌락 형성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1.07.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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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생태하천 복원, 주민들의 행복공간 복원이다 〈6〉
대전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전천과 다리 뒷편으로 2010년 복원된 목척교가 보인다.
대전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전천과 다리 뒷편으로 2010년 복원된 목척교가 보인다.

대전천 생태하천 복원, 2008년 복개구간인 중앙데파트 폭파·해체
대전역과 함께 대전천과 목척교, 대전 원도심의 상징이며, 구심점
 2000년대 대전 3대 하천 정비, 생태공간 회복 위한 자연하천 개발
대전천·갑천·유등천 생태복원사업, 시민들의 문화쉼터 역할 톡톡히

 

대전이 오늘날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대전천이다. 이 물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됐고, 생활에 필요한 용수를 대전천이 공급했다. 대전천은 유등천·갑천과 달리 발원지가 대전에서 시작된다. 대전과 금산의 경계에 있는 만인산 봉수레미골(동구 하소동)에서 발원해 대덕구 오정동에서 유등천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천연장은 22.4㎞에 이른다. 발원지부터 중구 옥계동 옥계교까지 14.6㎞ 구간은 지방2급 하천이고, 여기서부터 다시 유등천 합류지점까지 7.8㎞은 지방1급으로 분류되는데 지방1급 하천 구간의 유역이 ‘대전시내’로 불린다. 유등천과 합류하기 전 보문중·고등학교 앞에서 식장산에서 발원한 대동천을 흡수한다.

대전천에서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건 목척교다. 지금도 옛 향수를 자극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주요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대전시는 대전천의 생태하천 복원을 위해 지난 2008년 복개구간(목척교) 위에 세워졌던 중앙데파트를 폭파·해체하고 목척교를 다시 건립했다. 당시에 대전천과 목척교에 얽힌 수많은 추억담이 쏟아져 나왔다고 전해진다. 대전역과 함께 대전천과 목척교가 대전 원도심의 상징이며, 구심점인 이유다.

대전천의 복개와 더불어 목척교가 사라지고 그 위에 중앙데파트가 건립된 건 1974년의 일이다. 이후 중앙데파트는 대전 최초의 백화점으로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초대형 백화점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옛 영화를 뒤로하고 2008년 10월 결국 폭파·해체됐다. 1년 뒤에는 중앙데파트 옆 홍명상가도 해체돼 대전천 복원이 본격화 되는 계기가 됐다. 그 일환으로 2010년 새로운 목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천 전경.

■ 대전의 남북을 종단하는 최대의 하천, 갑천
갑천(甲川)은 대전의 남북을 종단하는 대전 최대의 하천이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878m) 북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금강에 합류하기까지 39.5㎞를 잇는다. 계룡산에서 발원하는 두계천과 대둔산에서 발원하는 벌곡천이 대전 서구 용촌동에서 합류하고 노루벌을 힘차게 휘감아 돌아 가수원교까지 흐르다. 이후 진잠천, 유성천, 탄동천 등 소하천들을 흡수한다. 이어 만년동에서 유등천과 만나 힘차게 북쪽으로 향하면서 지역 산업의 심장부를 적신 뒤 봉산동 인근에서 금강본류로 흘러든다. 대전시계 갑천은 서구 우명동의 대전시 경계부터 용촌동의 두계천 합류지점까지 6㎞가 지방하천이고, 용촌동부터 유성구 봉산동의 금강합류점까지 33.5㎞가 국가하천으로 관리되고 있다. 갑천은 한밭을 가로지르는 3대 하천 가운데 수량이 가장 풍부하고 유역면적(648.87㎢) 또한 크다. 그래서 갑천은 대전 3대 하천의 ‘우두머리 천’으로 불렸는데 이런 이유로 첫 번째를 의미하는 ‘갑(甲)’이란 명칭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또 금강은 상류에선 적등강, 중류에선 웅진강, 하류에선 백마강으로 불리는데 적등강에서 가장 큰 물줄기라고 해서 ‘갑천’이란 명칭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옛 문헌에서 갑천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엔 ‘갑천은 현 서쪽 5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군 신현에서 발원해 현 서쪽 3리에 이르러 선암천(船巖川)이 되고 아래로 흘러 형각진(荊角津)과 합류한다’고 기록돼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선 ‘성천(省川)은 유성현 동쪽 7리에 있는데 연산과 진산 두 현 경계에서 발원·합류해 진잠현을 지나 유성현 동쪽에 이르러 성천이 된다. 유포천·성천·대전전이 합류해 회덕현의 갑천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근엔 갑천을 비롯한 대전 3대 하천은 대전시민들의 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하천 생태계가 되살아나면서 사라졌던 동식물들이 다시 터를 잡고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이 맑아지고 자연습지가 형성되다 보니 다시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말끔히 포장된 하천이 아니라 자연형 하천으로 모습을 갖추면서 나타난 변화다. 하천의 살아난 생태계와 함께 하천과 함께 달리는 자전거도로는 하천과 시민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유등천 전경.

■ 대전의 원도심과 신도심의 경계하천, 유등천
대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전시내는 도시의 성장과 맞물려 점점 북서쪽으로 넓혀졌다. 대전시의 외곽이었던 유등천과 접한 드넓은 논밭이 주거지로 바뀌었고, 1970∼80년대 유천동·태평동·도마동·변동·가장동 등 서대전이 급속히 도시화되기 시작했다.

유등천(柳等川)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금성면·금산읍·남이면의 경계를 짓는 월봉산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른다. 금강의 제2지류로 국가하천과 지방2급 하천으로 나뉘는데 국가하천의 하천연장은 15.5㎞, 지방2급 하천의 하천연장은 22㎞다. 발원지로부터 대전시계인 중구 침산동까지 22㎞ 구간이 지방2급 하천으로 관리되고, 다시 침산동부터 갑천 합류지점까지 15.5㎞ 구간은 국가하천으로 관리된다. 유등천은 금산 진산지역의 여러 작은 물길을 모으고 금산의 복수면에서 지방천을 합한 뒤 대전 중구 침산동 놋점골(금동)을 지나 정생천·구완천 등을 합류하면서 큰 물길을 이룬다. 다시 북쪽으로 흐르며 안영동·복수동·산성동·유천동·도마동·태평동·용문동을 지나 서구 둔산동(삼천교)에서 대전천을 흡수한 뒤 갑천에 유입된다. 유등천은 대전천과 갑천 사이를 흐르면서 중구와 서구를 구분 짓는 경계 역할도 하고 있다.

예부터 유등천은 버드내 또는 유천(柳川)이라고 불렸다. 유등천의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하천은 버드나무와 관련이 있다. 하천변에 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포천(柳浦川)’ 또는 ‘유천(柳川)’ 등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유포천은 유성현 동쪽 20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현 경계에서 발원한다’고 적고 있다. 유등천 관련 기록은 이게 처음이라고 전한다. 또 동국여지세에는 ‘유천은 일명 유포(柳浦)라고도 하는데 유성폐현 동쪽 20리에 있다. 진산군 경계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용두촌에 이르러 대전천에 유입된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의 유등천이란 명칭은 1872년 지방지도(공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대전의 3대 하천에 대한 정비, 다시 말해 생태공간 회복을 위한 자연형 하천 개발이 이뤄진 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1960년대 주로 홍수조절과 하천 이수·치수를 위한 정비가 이뤄지면서 저수로 설치, 둔치 정비, 하천 직강화, 천변 제방 축조 등이 이뤄졌다. 이는 생태계 파괴를 의미했는데, 둔치엔 주차장이나 시민공원 등이 조성됐고 이는 대부분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또 봄·가을 갈수기엔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건천화가 심화됐고 하천변의 녹지가 사라지면서 시민들의 휴식처로서의 기능도 상실했다. 이와 함께 도시화에 편승해 국토이용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하천복개도 이뤄졌는데 대전의 경우 대전천 중앙데파트가 대표적이다.

오염된 하천을 자연상태로 되살리려는 시도는 대전 3대 하천 생태복원사업 계획안(2003년)으로 구체화됐다. 이 계획의 첫 시도가 바로 대전천 유지용수 확보사업으로 하천복개 구간에 대한 철거가 핵심이었다. 2008년 중앙데파트, 2009년 홍명상가를 차례로 철거하고 하천을 덮어 이를 지지하던 콘크리트도 모두 걷어내 대전천의 물길을 다시 이었다. 2010년에는 목척교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잇는 가교로 다시 등장했는데, 대전천을 되살리는 이 대장정엔 모두 약 850억 원이 투자됐다고 한다. 이와 맞물려 대전천·갑천·유등천 등 3대 하천 생태복원사업들이 속속 시행돼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자연형 생태하천이 된 것이다. 

충남내포혁신도시의 자연하천에 대한 복원도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변형되지 않는 하천복원 사업을 벌여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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