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역사의 예산, 100년 전통 가업 잇는 ‘명인·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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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역사의 예산, 100년 전통 가업 잇는 ‘명인·명장’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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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다, 100년 가업을 잇는 사람들 〈1〉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명장.

가업의 전통 잇는 사람들, 그 자체로 지역의 힘이요 자산
4대에 걸쳐 172년 동안 가업을 잇고 있는 ‘전통예산옹기’ 
막걸리 생산 100년 전통 신암양조장, 70년 전통 쌍송국수
가업 잇는 지역의 후계자들에 적극적인 지원책·도움 절실

 

현대는 급격한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역 고유의 특색을 잃어버린 요즘, 각 지역에서는 가업을 잇거나 전통을 계승하려는 장인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오랜 기간 자신의 일을 해 온 장인의 정신은 지역민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긍지를 갖고 가업을 계승하면서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청·장년들에게는 새로운 도전 정신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가업의 전통을 이어오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지역의 힘이요 자산이다. 그러나 그동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장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에 지역의 전통과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재조명해 이들의 지혜를 엿보고, 이들이 가진 강인한 정신과 삶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도전 정신을 고취해 지역의 정체성에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아울러 지자체에서도 현재 전통을 계승하거나 지역발전에 필요한 가업을 잇고 있는 지역의 후계자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 원활한 가업 승계가 이뤄져 역사와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책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 등의 시행을 기대해 본다.
 

■ 4대째 172년 가업 잇는 전통예산옹기
무려 1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충청도 예산 땅, 고려 태조(왕건) 2년(919년)에 ‘예산’이란 이름이 탄생한 이래 현재까지 1100년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예산 땅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이나 전통의 가업이나 대를 잇는 명장과 명인들이 즐비하다.
무려 172년 동안 가업을 잇고 있는 ‘전통예산옹기’ 황충길 명장을 비롯해 1930년대에 창업해 90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전통방식의 막걸리에 열정을 쏟고 있는 ‘신암양조장’ 김윤도 대표, 1952년에 창업해 3대에 걸쳐 70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제면소에서 전통국수를 뽑아내고 있는 ‘예산 쌍송국수’의 김민균 사장이 바로 예산에서 100년 전통 가업 잇는 ‘명인·명장’이다.

전통예산옹기는 예산 오가면 오촌중앙길 점촌마을에 있다. 1850년 조선 철종 원년 황충길의 할아버지 황춘백(생몰 미상)이 옹기를 만든 이래 172년이 됐다. 황춘백은 천주교도였다. 19세기 천주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옹기장이로 변신했다. 사람들은 산속에서 옹기를 구워 생계를 꾸렸고, 팔도를 떠돌면서 몰래 만들고 몰래 팔고 가마 속에서 몰래 기도했다. 지금도 전국에 40여 곳의 옹기회사 사람들은 90%가 천주교도라고 한다. 故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도 옹기장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만든 장학회 이름도 옹기장학회다. 황충길 명장의 집안에서 대대로 옹기를 빚은 바탕에는 천주교가 있다. 할아버지 황춘백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떠나 옹기점을 시작한 것이 1850년, 아버지 황동월이 뒤를 이었고, 황충길 명장이 예산 땅에 정착해 가업을 이었다. 지금은 아들(진영)이 함께 일하니 4대가 172년 전통을 잇는 셈이다. 

부친이 가마에 불을 때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명장은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 일을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집안에 우환이 생겨 마음을 다잡고 옹기에 전념했다. 옹기에 전념하니 상 복도 따랐다. 황 명장은 1996년 냉장고용 김칫독을 발명하고 반전을 맞았다. 그해 11월 제1회 농민의 날 행사에서 공예부문 국무총리 대상을 받은 냉장고용 김칫독은 옹기는 바깥에서만 쓰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깼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1998년 10월에는 냉장고용 김칫독을 의장등록 했고, 11월에는 노동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도자기공예부문에서 국내 최초로 옹기명장(98-23호)이 됐다. 
현재 전통예산옹기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벗어나려고 한 옹기 인생, 전통 기법 그대로, 4대에 걸쳐 평생 한길로 가업을 잇는 ‘살아 있는 그릇’ 옹기를 빚는 일이 천직임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황충길 명장이다.
 

예산 신암양조장 김윤도 대표.

■ 100년 전통의 신암양조장, 3대째 70년 전통 이어가는 쌍송국수
예산 신암면 종경길 45 길가에는 100년 전통의 신암양조장이 있다. 신암양조장은 1926년경에 설립, 운영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지역민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신암막걸리를 생산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자료가 남아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소화(昭和, 1926년부터 사용된 일본 연호)시대의 술항아리 7개가 있다. 현재 신암양조장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건축·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는 건물구조 일부가 남아 있으며, 1958년도에 중수했던 상량문이 있어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예산군의 소중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예산군은 지난 2017년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신암양조장의 가치에 주목하고 충남도로부터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암양조장 김윤도 대표(70)는 50년째 막걸리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김 사장은 군대 가기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다가 그동안 모은 돈으로 2005년 이곳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밀가루 반죽과 종국균(효모)을 넣고 발효를 시키는 전통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한다. 완성하는데 10일 이상이 걸리고 하루 생산량이 580리터 한독으로 대량생산되는 기업형 막걸리와 비교할 순 없지만 지역의 가정이나 마트, 택배를 통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한편 1952년 예산읍에서 두 번째로 지어졌다는 일본식 2층 목조건물에서 3대를 이어 제면소를 운영하고 있는 ‘쌍송국수’는 김민균 사장(40)이 70년의 가업을 잇고 있다. 이 집은 예산에 단 두 채밖에 없을 정도로 유명했는데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던 예산시장통의 명물로 통했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제면소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국수를 햇빛과 바람으로만 건조해 ‘태양국수’라고도 부르는 건면을 전통방식대로 만든다. 쌍송국수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가내수공업 형태로 시작해 70여 년 3대를 이으며 추억과 정성이 온전히 담긴 맛이다. 비록 집이 낡고 비좁아 3년 전 새 보금자리(예산읍 천변로 159)로 옮겼다.

2011년 아버지(故 김성산)가 세상을 떠난 후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회사에 다니다가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가업을 이어받았다. 쌍송국수는 한국전쟁 전후로 할아버지가 하던 방앗간에 이어 국수 제면소를 하게 됐다. 예전에는 ‘삯국수’라고 제면기가 없는 집에서 기계 삯을 주고 국수 가락을 뽑아 집에서 말려 파는 이들이 있었다. 쌍송국수의 시작도 그랬다. 그렇게 70년이 지나면서 세월과 전통, 추억을 등지고 문을 닫을 수도 없었거니와 요즘 가내수공업으로 국수를 만드는 데가 흔하지 않다 보니 전통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동했다고 한다. 쌍송국수는 이제 향토 명물, 전국의 명물이 됐고, 정성이 깃든 맛은 멀리서 직접 찾아와 국수를 사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산의 젊은 사장이 만드는 전통의 향기와 향수가 사람들의 발길을 예산으로 자꾸만 잡아끌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닥나무 껍질이 원료인 닥종이라고도 불리는 전통 한지를 만들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는 신양면 만사리의 ‘만사한지’는 전통방식의 한지와 금을 여과하는데 필요한 여과지를 생산하다가 수요가 줄고, 경영난이 겹쳐 3년 전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예산시장에 위치했던 옛 쌍송국수 전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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