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장터국밥 시초, 4대 102년 가업 잇는 안성 ‘안일옥’
상태바
안성장터국밥 시초, 4대 102년 가업 잇는 안성 ‘안일옥’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7.15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다, 100년 가업을 잇는 사람들 〈7〉
4대째 가업을 이으며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식당 설렁탕·우탕 전문 ‘안일옥’ 전경.

조선시대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조선의 3대장으로 불린 ‘안성장’
안성장, 개성·수원과 함께 소를 사고파는 3대 우시장으로도 유명
국밥은 지역의 특성·개성 담아 발전한 김치·깍두기 궁합의 음식
안성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의미 담은 ‘안일옥’ 옛 방식 그대로

 

예로부터 안성장은 조선시대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조선 3대장으로 불렸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지방에서 출발해 한양을 가는 지방의 상품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안성이 동래~대구~충주~용인~백교~한양으로 이어지는 영남로와 영암~나주~정읍~공주~수원~한양으로 이어지는 호남로가 만나던 지점이었던 까닭이다. 안성이 곧 동서와 남북의 물산들이 모이던 물산집하장으로의 역할을 한 것인데, ‘이틀이레 안성장에 팔도화물 벌일 렬(列)’이란 천자문 풀이도 있었고, ‘안성장은 서울의 장보다 두세 가지가 더 난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그만큼 상품의 종류가 많고 값도 쌌다는 뜻이다. ‘영조실록’에는 안성장의 규모가 서울의 이현시장이나 칠패시장보다 커서 물화가 모이고 도적 떼들도 모여든다는 기록이 있고,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서울로 모이는 물산을 매점매석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안성장이다.

안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안성맞춤’으로 대변되는 ‘유기’다. ‘안성유기’가 다른 지방보다 유명했던 이유는 깐깐한 서울 양반가들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성 유기그릇은 제작 기법이 정교해 당시 양반들이 선호하던 작고 아담한 그릇을 만드는데 적합했고, 품질이 뛰어나 사람들의 마음에 꼭 들었다. 바로 여기서 안성유기를 대표하는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안성장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으로도 유명하다. 시장 한켠에 있는 식당에서 매콤하고 얼큰한 소위 시장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면 나른한 몸은 보약 한 첩을 먹은 것처럼 몸에 힘이 솟는다는 음식이 바로 ‘소머리국밥’이었을 게다.
 

■4대째 102년 역사를 잇고 있는 설렁탕집
안성 장터에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설렁탕집이 있다. 장장 4대를 이어오며 올해로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설렁탕 전문점 ‘안일옥’이 그곳이다. 설렁탕집 안일옥은 안성 장터에서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의 안일옥이 있게 한 1대 주인장은 고 이승례 할머니다. 이씨는 1920년, 40대 초반이던 남편이 병석에 눕게 되자 어린아이(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날 안성장터에 가마솥 하나 걸어놓고 국밥을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안일옥’의 시작이다. 경기도 안성은 조선시대에 개성, 수원과 함께 3대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안성 우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쇠전거리’라 불렸는데 1920년대 초, 故 이성례(김종열 사장의 친할머니) 할머니는 쇠전거리 한 귀퉁이에 작은 가마솥 하나를 걸어놓고 국밥을 말아 팔았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고 3남 3녀와 함께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당시 여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안성 우시장에서 나오는 소뼈와 내장, 부산물 등을 넣고 푹 끓여 밥을 말아낸 것이 안성장터국밥의 시초다. ‘안일옥’을 키운 사람은 김종열 사장의 어머니인 고(故) 이양귀비 할머니라고 한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듯이 충남 조치원에서 남편 얼굴도 못 보고 19살에 안성국밥집으로 시집을 왔고, 시어머니를 도와 장터에서 국밥을 말다가 자연스럽게 2대로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름처럼 얼굴도 곱고 심성도 고와 손님들 사이에서도 ‘양귀비 할머니’로 통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안성 구사거리에 정식으로 가게를 내고 ‘안성에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뜻을 담은 ‘안일옥(安一屋)’이라는 간판을 단 이도 바로 양귀비 할머니다. 1918년생이었던 양귀비 할머니는 지난 2007년 작고했다.

그럼 9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지금의 ‘안일옥’을 일궈 낸 양귀비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김종열 사장이 기억하는 어머니 양귀비 할머니의 모습은 딱 하나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들고 가마솥 앞에 서 계신 모습이었다’고 회고한다. ‘어머니는 해산 당일까지 국밥을 말았다. 산통이 느껴지면 그제야 집으로 기듯 들어가서 애를 낳고 다음 날 바로 식당에 나와 국밥을 마는 나날이 연속이었다. 몸조리는 고사하고 몸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으니 자신을 위해서 미역국을 끓였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자식 아홉을 낳아 키웠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밥을 싸 들고 오기도 하고, 국물을 얼마어치만 달라고도 하고, 돈이 없으니 탕을 반만 달라고도 하고’ 이런 주문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처지를 꿰뚫어 보고 늘 베풀고 퍼주던 양귀비 할머니,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 챙기고, 또 그 사람들에게 돈도 많이 썼던 양귀비 할머니가 바로 안일옥을 지켜온 정신이 아닐까.

■경기도서 가장 오래된 한식당으로 꼽혀
1920년, 1대 사장님 고 이성례 할머니가 안성 우시장에서 국밥을 팔던 것을 시작으로 며느리인 이양귀비 할머니, 아들 김종열 사장에 이어 손자 형우까지 4대째 102년 동안 대를 이어 ‘안일옥’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개업할 당시엔 번듯한 가게였을 리도 만무한, 정말 가게랄 것도 없는, 말 그대로 난전에서 오로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장터 가까운 우시장에서 나오는 뼈, 내장 등을 이용해 국밥을 만들어 팔았다. 국밥이라고 해서 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것도, 요리법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장날마다 얻을 수 있는 재료가 일정하지 않아 ‘우탕’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소 부위별로 구입이 가능해 설렁탕·도가니탕·갈비탕·곰탕·소머리국밥 등 세분화 된 요리를 즐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뻔한 상황이었을 게다. 

예로부터 국밥은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담아 발전해 온 음식이다. 전라도 전주에서는 ‘콩나물 국밥’이 사랑을 받아왔고, 부산에는 돼지국밥, 대구는 따로국밥, 나주에서는 곰탕, 충청도 옥천에서는 올갱이국밥 그리고 경기도 안성은 장터국밥의 대명사로 알려진 안성국밥이 있다. 지금의 안성 장터국밥을 만든 원조집이 바로 ‘안일옥(安一屋)’이다. 

오늘날 우리가 ‘설렁탕’이라고 부르는 음식은 소의 머리, 내장, 뼈, 도가니 등을 푹 삶아 만든 국물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고기와 내장 등이 어우러진 음식을 말한다. 오랜 시간 끓여 각 재료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이 가득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김치나 깍두기를 올려 먹으면 환상의 궁합을 이루는 대중 음식이다.

4대째 가업을 이으며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안일옥’ 식당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이자 경기도에서 가장 오래된 한식당이다. 안성에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의미를 담은 ‘안일옥’은 옛 방식 그대로 가마솥에 끓인 사골을 베이스로 묵직한 국물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곳 안일옥은 전통방식 그대로 가마솥에 불을 지펴 사골을 17시간 동안 푹 끓여 진득한 국물을 준비한다. 모든 메뉴는 이 육수를 기본으로 만들어지며 곁들여 내는 재료에 따라 설렁탕, 도가니탕, 갈비탕 등으로 나뉜다. 대표 메뉴는 뽀얀 국물 속 부드러운 소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간 ‘설렁탕’이다. 담백한 국물은 식어도 잡내 없이 깔끔한 맛이 유지된다. 도가니, 갈빗대, 우족, 소꼬리, 소머리 등 다양한 부위를 푸짐하게 담아낸 ‘안성맞춤우탕’도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안일옥은 탕도 탕이지만 맛의 비결로 김치를 꼽는다. 겉절이가 나오는데, 하루에 두 번 담근다고 한다. 깍두기는 일주일에 한 번, 한꺼번에 준비한다고 한다. 탕집은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는 의지가 여전히 이 식당에 스며있는 맛깔이다. 현재 안일옥은 4대를 잇고 있다. 김종열 사장의 아들(형우)이 안일옥의 정신을 잇겠다고 나섰다. 조리과학고를 나오고 외국에서 유학하면서까지 새로운 시대의 요리가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전통이 어우러진 새로운 시대의 안일옥을 기대해봐도 좋겠다는 증거요, 이유다. 양귀비 할머니처럼 담백하게, 깔끔한 뒷맛으로. 안일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입맛으로 그렇게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