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누에’와 ‘산속등대’ 폐건물·폐공장에 ‘문화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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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누에’와 ‘산속등대’ 폐건물·폐공장에 ‘문화디자인’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7.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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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물·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가치를 담다 〈7〉
전북 완주군 소양면 폐종이공장이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로 재탄생됐다. 곳곳에 옛 공장 모습의 흔적이 남아있다.

쓰지 않는 폐건축물, 폐창고, 폐공장 등 활용 ‘관광명소로 탈바꿈’ 시켜
완주군 폐건물 활용 문화·예술 도시로 거듭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활력
호남잠종장, 특별한 공간인 ‘복합문화지구 누에(Nu-e)’ 새롭게 태어나
폐종이공장 재생시킨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 버려진 시간 문화디자인

 

전라북도가 도심 속에 버려졌거나 쓰지 않는 건축물을 문화관광자원 등으로 개발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국내외에서 여러 성공적인 사례가 있지만, 폐건물이나 폐공장, 빈집 등을 활용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만든 경우가 전북지역에 많다는 점에서 눈길이 끌리는 이유다. 

전북도가 도내의 폐건축물이나 폐공장 등 관광자원화, 또는 향토 문화예술 전시공간 등으로 재활용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곳에 대해 과감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일제 수탈사의 상징물이자 현존하는 완주 삼례의 양곡창고를 ‘삼례문화예술촌’으로, 또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 등으로 탈바꿈하는 등 일제 수탈의 상징물이나 방치된 건축물 등을 활용해 주민들을 위한 쉼터나 관광명소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북도는 도내 곳곳의 폐건축물이나 폐공장 등 활용방안을 구체화한 뒤 중앙부처 공모사업이나 지자체 시책사업과 연계해 재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버려지거나 쓰지 않는 폐건축물, 폐창고, 폐공장 등을 활용해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 곳도 많은데, 가까이는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나 전주한옥마을, 무주 와인동굴 같은 곳도 비슷한 사례다. 양곡창고를 활용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완주 삼례의 문화예술공간도 본받을만한 곳이다. 도심의 흉물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탈바꿈하는 일이야말로 일석이조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사업들은 해당 건축물에 역사적, 혹은 기념할만한 의미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스토리를 개발하고, 여행트렌드에 대한 고민이 앞서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폐건축물, 폐공장 등을 개조한 곳이라 하더라도 어떤 곳은 명소가 되고, 어떤 곳은 또다시 흉물이 되는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흔히 유행하는 폐건물이나 폐창고 등을 리모델링하면 곧바로 명소가 될 것이라는, 자칫 예산을 들여 건축물을 뜯어고쳐서 될 일이라고 쉽게 여겨서는, 결코 섣부른 생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로컬푸드 1번지’로 알려진 전북 완주군이 문화·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일제시대 쌀 창고를 고쳐 만든 삼례문화예술촌부터 누에를 치던 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지구 누에(nu-e)’까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완주군은 문화·예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부족한 관광 자원을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2년부터 문화·예술 재생 사업에 200여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복합문화지구 누에, 삼례문화예술촌, 비비정 예술열차, 삼례책마을 등의 문화시설 등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완주군 ‘복합문화지구 누에(nu-e)’ 새롭게 탄생
전북 완주에는 드넓은 뽕밭이 있었다고 한다. 푸른 뽕잎으로 누에를 길러 질 좋은 누에씨를 공급하는 한국농업기술원 종자사업소 잠업시험장이었다. 흔히 ‘호남잠종장’으로 불렸던 터전은 1960~70년대 수출산업으로 융성했던 한국 양잠업의 역사와 고된 노동의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80년대 이후 양장업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잠종장은 전북 부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2년 완주군청 신청사가 터를 잡았고, 잠종장 부지와 건물은 문화와 예술의 복합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누에가 뽕잎을 먹으며 자라듯 천천히 그리고 쉼 없이 공간은 변화했고, 문화와 예술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대의 유물처럼 남겨졌던 공간은 지난 2018년 삶과 문화가 순환하는 완전한 문화 재생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완주가 자랑하는, 충분히 자랑할만한, 특별한 공간인 ‘복합문화지구 누에(Nu-e)’가 새롭게 태어났다. 시간이 흘러 사라져가는 기억들이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삶과 문화가 경제와 놀이로 순환하는 곳, 누구에게나 알려주고픈 공간, 완주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아기자기한 복합문화지구 ‘누에(Nu-e)’의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복합문화지구 누에는 1980년대 호남잠종장의 검사소와 실험장, 창고와 기숙사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활용됐다. 붉은 벽돌 건물과 뽕나무밭이 어우러진 경관에는 아름다운 ‘복합문화지구 누에(Nu-e)’가 탄생했다. ‘누에(Nu-e)’란 ‘새로운 경험(New Experience)’으로 예술의 흥을 돋우는 문화예술 공간이 됐다. 융복합 문화예술의 교육과 전시, 주민들과 소통하는 지역활동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공간이 넓고 볼 것도 많아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복합문화지구 누에(nu-e)’는 호남잠종장(누에를 키우는 공장)을 고쳐 만든 공간이다. 완주군청 인근 1900여㎡ 부지에 28개 동의 건물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몄다. 지난 1987년부터 사용해 오던 ‘호남 잠종장’이 부안으로 이전하고 비어 있던 연구소와 창고 등을 활용했다. 호남잠종장이 있던 곳엔 누에아트홀과 교육동, 9개 객실을 갖춘 게스트하우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캠핑라운지 등이 들어섰다. 누에아트홀에는 외식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인 ‘청년 키움식당’을 만들었다. 내부공간은 호텔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잘 꾸몄으며, 이곳에선 경험이 없는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한다. 청년들이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주말엔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한다. 

‘개방형 내일공방’과 통합 예술교육인 ‘다시 상상움터’ 프로그램도 호평을 받는 등 문화 예술교육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복합문화지구 누에엔 독특한 공간이 또 있다. 대지 990㎡에 건물 197㎡ 규모의 문화 카페가 그곳이다. 이 카페는 원래 완주군수가 관사로 쓰던 공간이었다. 지난 2014년 주민과 소통하고 향유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카페 주변엔 잔디광장과 어린이 놀이터, 연못 등도 만들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는 설명이다.
 

복합문화지구 누에 카페(위 사진)와 미술관 전경.

■폐종이공장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 재탄생
완주에는 또 ‘한국의 테이트모던’을 꿈꾸는 폐공장재생미술관의 랜드마크인 ‘산속등대’가 있다. 만경강의 발원지 밤샘 근처에 닥나무로 갑옷까지 만드는 ‘만능한지(韓紙)의 본고장 대승한지마을’이 있다. 완주는 조선시대 최고의 한지로 평가받던 ‘전주한지’의 주생산지였다. 완주 한지 생산의 시원(始原)과 같은 곳이 바로 소양면이었고, 그러한 전통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로도 이어졌다. 당시 한지는 전북도내 산업 중 미곡 다음으로 중요한 산물이었다. 소양면 한지의 대표 상품은 장판지였는데, 전국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품질의 종이였다고 한다. 소양 장판지는 조선시대부터 최고였으며, 이런 전통은 1980년대 전후까지도 이어졌다.

한편 19세기 말 고종 때 기계에 의한 제지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한지의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북 전주지방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생산되고 있는데, 주로 공예에 사용된다고 한다. 산속등대에서 300여m 거리에는 국내 최대의 한지 공장인 ‘천양제지’가 있다. 이곳의 한지는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이웃 마을인 대승리의 ‘대승한지마을’에서는 체험관을 운영하는 등 소양면 한지의 오래된 명성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소양면 해월리 산속에 자리한 ‘산속등대’는 오랫동안 방치됐던 폐종이공장을 재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의 등대는 지름 3m, 높이 33m로 원래는 종이공장의 굴뚝이었다. 왼쪽에 기존의 폐수처리장을 공연장으로 탈바꿈시킨 야외극장이 있는 ‘산속의 등대’는 30여 년 전 종이공장의 굴뚝이었다. 전일제지와 동일제지라는 종이공장이 있었고, 수백 명의 직원이 일했으며 주변으로 수천 명의 가족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곳을 변화시킨 사람은 기업인 원태연 대표다. 일찍이 교육부 진로체험 ‘꿈길’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과학체험과 금속예술에 관련된 재능나눔활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공장을 정리하고 쓸 만한 자재를 골라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난 2019년 5월 ‘버려진 시간 속 새로운 문화를 디자인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산속 등대’가 문을 열었다. 산속 등대는 8000평의 대지 위에 미술관, 체험관, 공연장, 카페, 아트플랫폼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ㅅ’ 모양의 정문 건물에는 ‘자조, 협동,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빛바랜 문구가 보인다. 제지공장이 문을 닫고도 2004년 이후 방치돼 있었는데, 기업인 원 대표가 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융·복합 다원예술의 산실로, 미술관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옛 건물의 골격만 남긴 기둥과 보를 회랑으로 여기고 들어가면 예술적 감각의 카페를 만난다. 

옛 폐수처리장을 모네의 수련, 금붕어, 잉어, 개구리 등이 살도록 한 등대연못과 수생생태정원이 자리했다. 벙커놀이터를 만들려다, 산에서 양서류 등이 몰려들자 공사를 멈추고 ‘개구리놀이터’로 뒀다고 한다. 그 옆엔 몸길이 7m인 흰수염돌고래 아들이 있고, 큰 공터다. ‘산속 등대’ 복합문화공간은 개관 넉달만에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다시 한 달 뒤 전북건축문화상에서 금상을 받은 폐건물·폐공장 재생공간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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