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장곡산성(洪城長谷山城), ‘홍주는 본래 백제의 주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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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장곡산성(洪城長谷山城), ‘홍주는 본래 백제의 주류성이다’
  • 취재|글·사진=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22.08.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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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숲길, 내포문화숲길의 역사·문화유산 〈11〉
홍성 장곡 ‘홍성장곡산성’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 코스에 있는 홍성 장곡산성.

‘홍성장곡산성(洪城長谷山城)’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 산28-2 일원에 있는 백제의 산성이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60호로 지정됐다.

장곡면 산성리 해발 256m의 산에 쌓은 성으로, 성 둘레는 약 1352m이다. 산성리 주변은 지세가 험하고 계곡이 좁아, 군사상 요충지로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옛 백제 부흥군의 거점이 되는 예산 대흥임존성(사적 제90호)과는 12.6km, 당진 혜성과는 37km, 청양 정산의 두륭융성과는 23km, 공주와는 34.5km, 부여와는 27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장곡산성 주위에는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이 띠를 이루듯 이어져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산성은 동굴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산성 안에서 건물터의 주춧돌·기와 조각·토기류가 발견됐다. 주변 지역에서도 ‘사시·사시량·사라’라 새긴 기와 조각과 문초석, 돌덧널무덤(석곽묘)에서 발견된 청동제 방울, 백제 토기류 등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장곡산성은 백제 사시량현의 정치, 행정적으로 중심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지형적 조건으로 볼 때 백제부흥군의 거점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장곡산성의 문지에서 살펴보면 비교적 윤곽이 뚜렷한 산성이다. 성벽은 매우 가파른 산비탈에 돌로 외벽을 쌓고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성돌은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다듬어 쓴 흔적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산성은 동쪽인 예산 광시 방향의 골짜기가 탁 트인 것으로 볼 때, 서쪽에서 오는 당이나 고구려의 적을 방어하는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내부 골짜기는 그다지 넓지는 않은 편이나 건물지도 있고, 저수지도 있다. 저수지 부근에는 우물 같은 웅덩이도 있다. 우물 주변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최근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흔적으로 보인다. 건물이 있던 자리의 석축 모습이나 감나무, 뽕나무, 앵두나무 등 살림살이의 흔적을 파악할 수도 있다.

아직도 넓고 평평한 건물지는 산성이 있던 당시에 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규모로 보아 골짜기는 그리 넓지도 않고 상주하는 사람이나 주둔한 군사가 임존성만큼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홍성 사람들은 이 산성을 ‘석성산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근거지인 주류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백제부흥운동의 과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대련사를 세운 스님 도침, 왕족 복신, 장군 흑치상지, 의자왕의 왕자 부여풍 등의 행적과 공적, 그리고 맹약에서 배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부흥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역사적 사실에는 이의가 없으나, 이들의 마지막 은신처 또는 부흥운동의 거점인 주류성이 어디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설이 여러 가지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홍성 사람들은 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이곳 ‘장곡산성’이 가장 확실한 ‘주류성(周留城)’이고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곡산성을 주류성으로 보는 근거는 김정호의 대동지지 홍주목조에서 “홍주목은 본래 백제 주류성인데, 당이 지심주라고 고쳤다”라고 한 것과 ‘건지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되어 조선시대에 폐성이 되었다’는 충청매장문화연구원의 건지산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장곡산성을 주류성으로 보고 건지산성이 주류성이라는 설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포지역 사학자였던 고 박성흥은 답사와 여러 논고를 통해 “주류성은 바로 장곡산성이고 백강은 당진 해안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임존성에서 홍성의 소구니 산성, 태봉산성, 학성산성, 장곡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일련의 산성들이 마치 하나의 전선이 돼 수도인 사비성이나 웅진성 가까이에서 방어하고 있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요거점이나 마지막 저항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백제부흥군의 주둔지가 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 2코스 안내판.


■ “주류성은 임존성과 하룻밤 행군거리다”
내포문화숲길에는 ‘백제부흥운동길’이 있다. ‘백제부흥운동길’ 제2코스에 있는 ‘홍성장곡산성’은 ‘대동지지’에 의하면 홍성지역에 백제의 주류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주류성은 임존성과 더불어 백제부흥운동의 중심 거성이었다. 임존성은 예산 대흥의 봉수산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봉수산성은 통일신라의 산성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홍성 장곡의 산성리에 위치한 학성산성을 백제의 임존성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산성 중에서 평면형태가 삼태기형을 하고 있는 산성은 그 지역의 치소에 해당되는 곳으로, 홍성의 봉화산성, 결성산성, 신금성, 장곡산성 등이 그곳이다. 실제로 이러한 산성은 우견현(牛見縣), 결이군(結已郡), 사시량현(沙尸良縣), 궁경부곡(躬耕部曲) 등과 대응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 2019년 ‘백제부흥전쟁의 중심, 주류성은 어디인가?’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이재준 건양대 교수는 백제부흥운동 당시 주류성에 대해 고대문헌에서 임존성과 하룻밤 행군거리(一夜可行)라고 언급하고 있는 점을 들어 “예산 봉수산과 가까운 홍성장곡산성이 확실하다”며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부안 위금암산성은 임존성에서 너무 멀고 동진강, 만경강, 금강 등 자연재해물도 많아 하룻밤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주류성으로 성립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백제부흥운동은 백제가 패망한 660년부터 663년까지 임존성과 주류성을 근거지로 백제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 흑치상지 장군 등이 벌인 재건 운동이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나라를 잃은 ‘민초’들이 나라를 지키는 의로운 일에 뛰어든 ‘의병 운동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흑치상지 장군이 지휘한 백제부흥군은 임존성에서 나당 연합군과 겨뤄 승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백제 전역에 해당하는 200여 개의 성을 순식간에 회복하기도 했다. 백제부흥운동 기간 왕성(王城)인 주류성이 함락된 뒤에도 끝까지 버텨내던 임존성이 무너지면서 4년여에 걸친 항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임존성과 이웃한 홍성 장곡의 산성리에는 백제부흥운동 기간 왕성(王城)인 주류성으로 추정되는 ‘장곡산성’이 있다. 

예산의 임존성과는 12.6㎞ 떨어져 있어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였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주류성의 정확한 위치와 관련해서는 이곳을 비롯해 충남 서천 건지산성(乾芝山城), 충남 청양 정산(定山), 전북 부안 우금산성 등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가 ‘홍주는 본래 백제의 주류성이다’라고 밝힌데다 ‘장곡산성이 주류성임을 입증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홍성군은 매년 10월 장곡산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재조명하고 의병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 코스에 있는 홍성 장곡산성.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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