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땅, 오서산 기슭의 명당에 창건한 ‘내원사(內院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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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땅, 오서산 기슭의 명당에 창건한 ‘내원사(內院寺)’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4.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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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38〉
  • 장곡면 광성리 내원사(內院寺)

홍성군 장곡면 광성 3리 산89번지(장곡길438번길 435, 041-642-1809)에 소재한 ‘내원사(內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백제 때 창건됐다고는 하나 이를 고증할 만한 문헌이나 유물 등은 전하지 않는다.
 
1744년(영조 20)에 편찬된 홍주읍지(洪州邑誌)에 사찰 이름이 나오고,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태고사 사법’에는 ‘내원암(內院庵)’이라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나온다. 이밖에 자세한 역사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현재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가 있다. 

본래 1990년대 중반까지 원통전이 있었으나 이를 법당으로 다시 지은 것이 대웅전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내부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한 삼존불이 있고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제석천룡탱화가 걸려있다. 절의 서쪽 축대 위에는 아미타불 석상이 서 있다. 

내원사는 백제 의자왕 16년에 법명대사(法明大師)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법명대사는 백제 665년(의자왕 15)에 일본 대마도에 건너가 오음으로 유마경을 독송 강론했으며, 오음으로 불경을 전파해 명성을 날렸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이 절은 오서산 북사면의 8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계곡의 서쪽으로 석축을 쌓아 사역을 조성했다. 전설에 의하면 법명대사가 어떻게 오서산에 와서 사찰을 창건했는지, 창건 관련 연기(緣起)의 근거는 무엇인지 명확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법명대사가 일본에 있을 때의 기록인 ‘원형석서(元亨釋書)’에 656년 내신인 경자(鏡子)가 병이 들었는데, 백방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았지만 백제의 법명이 ‘유마힐경(維摩詰經)’ 일부를 송독해 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 일로 법명이 이름을 떨쳐 수많은 희사금을 받아 그것을 백제 땅으로 가지고 돌아와 오서산 기슭에 명당을 찾아 ‘내원사(內院寺)’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하나의 전설에는 홍성 ‘고마노리성주(古麻怒利城主)’인 ‘여자진(余自進)’이 고국에 돌아올 때에 망국의 슬픔을 안고 ‘내원사(內院寺)’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전설을 토대로 홍성의 향토사학자들은 ‘내원사(內院寺)’가 ‘주류성(周留城)’을 지킨 국가부흥의 도량이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원통전과 근래에 새로 지은 요사채 1동이 있다. 내원사(內院寺)와 관련된 기록으로는 ‘홍주읍지(洪州邑誌)’ 사찰조(寺刹條)에 ‘내원사재오사면남거사십리(內院寺在烏史面南距四十里)’라고 기록됐고, 사지(寺址) 주변에서 수습되는 ‘선조문(線絛文)’의 기와편이 사찰의 역사를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조선 초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결성현(結城縣) 불우조(佛宇條)에는 오서산에 있는 사찰로 ‘정암사(正菴寺)’만 나타나고 있어 조선 시대의 오서산 내원사(內院寺)의 연혁을 알만한 기록은 없다. 내원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지난 2009년에는 사찰 공사 중에 땅속에서 철불이 나왔다고 전해지며, 기왓장도 발견되고 있다.

1925년에 발행한 ‘홍성군지(洪城郡誌)’ 사찰편(寺刹篇)에는 ‘내원암(內院庵)’에는 ‘장곡면(長谷面) 광성리(廣城里)’에 소재하고 있으며 봉안불상 좌수는 ‘금도금 목불2좌(金鑛 木質佛二座)’로 기록하고 있으며, 건물 평수는 ‘2동25평(二棟二十五坪)’이며 승려는 ‘조선인 2(朝鮮人 二)’이며 유지 재원은 ‘논 19두 3승락, 대지 3승락(畓 十九斗 三升落, 垈 三升落)’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양사(洪陽史, 1969년 발행)’ 고적편(古蹟篇)에는 ‘장곡면(長谷面) 광성리(廣城里) 오서산(烏棲山) 동편중복(東便中腹)에 있다. 

2동25평(二棟二十五坪)의 고찰(古刹)이다. 금종불2좌(金鐘佛二座)가 봉안(奉安)돼 있다. 논19두3승락(畓十九斗三升落)과 대략간(垈略干)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락(斗落)’은 논과 밭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마지기)이며, ‘승낙(升落)’이란 되지기로 한 되의 씨앗을 뿌릴 만한 논밭의 넓이, 마지기의 10분의 1이다.오서산 내원사 아래쪽에는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있다. 장곡면 광성리 광재마을이다. 

오서산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금북정맥과 봉수지맥 분기봉에서 시작되는 ‘삽교천(揷橋川) 발원지(發源地)’다. 삽교천은 이곳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오서산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해 홍성군을 지나, 다시 예산군 삽교읍을 돌아 당진시와 아산시를 거처 당진시 신평면 우정리 삽교천 방조제에서 끝나는 62km의 황금들판을 이루는 천(川)이며 강(江)이다.

장곡면 광성 3리와 신풍리 마을을 이어주는 시멘트와 비포장임도 길이며, 차량 통행이 가능한 길이다. 이곳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면 발원지가 형성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너널 돌’들이 빼곡하고 오서산 북동쪽 계곡을 따라 삽교천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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