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3·1운동, 신풍리 매봉산에서 봉화 올리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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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3·1운동, 신풍리 매봉산에서 봉화 올리며 시작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4.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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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39〉
  • 장곡 3·1독립만세운동기념비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홍성의 장곡면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은 수백명에 이른다. 장곡의 3·1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기록은 국가보훈처 포상자 공적조서를 비롯해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사자료집’ 등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 선포식 시위에 참가했던 윤익중이 독립선언문 100여 매를 가슴에 품고 귀향, 10여 일간의 은밀한 밀회 끝에 각 동리마다 조직책을 선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고, 일시에 대대적인 항일 시위를 결행할 것을 모의했다. 장곡면에서는 4월 1일 밤부터 장곡면 신풍리 뒷산인 매봉산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시작돼 장곡 전역의 산상마다 봉화가 올려지고 화계리(花溪里)의 윤형중, 윤익중, 윤낙중 형제들의 주도로 4월 4일 밤에 화계, 광성, 신풍리 세 동리 사람들을 이끌고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부친인 윤태병(尹台炳)의 삼형제 중 둘째 아들인 윤익중(尹益重)은 장곡면 독립운동에는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1919년부터 1920년대까지 활발한 독립운동을 한 장곡면 지역의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첫째 아들인 윤형중은 1895년 6월 23일 장곡면 화계리에서 출생했다. 윤형중은 장곡면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애족장이 추서됐다.

셋째 아들인 윤낙중(尹낙중)의 호적 이름은 윤기순(尹己順)이다. 윤낙중은 화계리에서 1900년 7월 13일에 태어났으며, 형들과 함께 오서산 내원사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수료했다. 이후 경신보통학교를 다니던 윤낙중은 2월 말경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하는 3·1운동 소식을 듣고 3월 1일 탑골공원에 나가 독립선언서 선언식에 참가했다. 윤익중은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가지고 윤낙중과 함께 3월 20일 귀향했다. 윤익중은 윤형중, 윤의석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행동강령을 결의하고 지역 인사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했다. 

이들은 4월 4일에 윤만수, 이문재, 최기석, 최채선 등 화계리·광성리·신풍리 주민들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윤낙중은 이러한 활동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고, 1921년 5월에 1년을 복역하고 출옥한 이후 경신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선진문물을 습득한 후 귀국했으며, 1983년 8월에 애족장을 받았다.

4월 7일에는 김동하, 한상철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김동완, 김용숙, 김용제, 이화춘, 김차제, 한상철 등은 화계리 주민들과 앞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도산리 면사무소로 이동했다. 오후 8시경 광성리와 가송리 등 주민 300여 명과 함께 면사무소 뒷산인 응봉산에 올랐다. 한상철이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문재 등이 앞장서 일제히 태극기와 목봉을 들고 면사무소를 공격하자 면민들도 돌과 막대기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굴뚝을 무너뜨리며 유리창 17장을 깨트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과 기물, 문서 등을 파손했다. 4월 8일에도 오후 11시 30분경 주민과 학생들 60여 명이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전날 발생한 사건으로 출동, 대기하고 있던 일본 경찰과 일본군인들은 이를 막았고, 장곡면민들은 몽둥이 등으로 대항하며 격전을 벌였다. 이날 일제의 발포로 11명을 체포됐고, 2명은 부상을 당했다. 

장곡 만세운동에 참가한 주민들의 숫자에 대해 기록에서는 수천 명이라고 돼 있으나 당시의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500여 명 정도가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기록을 통해 4월 7일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파악해 볼 수 있다. ‘김동하는 4월 7일경 장곡면 화계리 앞 산위에서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후 군중과 함께 장곡면사무소에 쇄도했을 때 군중에게 면사무소를 부수라고 외치며 솔선하여 나무와 돌로 유리창과 온돌 굴뚝과 문기둥을 부수어 군중에게 힘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94년 장곡 3·1운동을 기념하고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장곡면 도산리에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도산리 492-5에는 ‘장곡3·1운동기념비’ 등이 있는 공원으로 조성돼 있으며, 화계리 산39에는 ‘기미3·1운동 항일투쟁공훈종합비’가 조성돼 있고, 윤익중·형중·낙중·의석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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