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명성 우리홍고 빛내리’ 외치던 ‘홍성고등학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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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명성 우리홍고 빛내리’ 외치던 ‘홍성고등학교 강당’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5.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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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44〉
  • 대교리 ‘홍성고등학교 강당(講堂)’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72호>

 홍성고등학교는 1941년 3월 26일 홍성공립중학교 설립인가(6년제 5학급)를 받아 같은 해 4월 11일 홍성공립중학교로 개교했다. 1951년 8월 31일에는 홍성고등학교 설립인가(3년제 15학급)를 받아 1951년 9월 28일 홍성고등학교로 개교식을 거행했다. 

이후 2015년까지 75년간 총 2만 2801명의 인재를 배출하고, 개교 75년만인 2016년 2월 23일 충남도청 내포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홍성군 홍북읍 홍학로 49(신경리 1174)로 이전, 개교식을 거행했다. 충남도청 내포신도시로 옮기면서 남학교의 전통이 깨지게 됐고, 개교이래 첫 남녀공학 학교로 내포시대를 맞은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난 1941년 6년제 홍성공립중학교 개교 당시에는 홍주목사 동헌인 ‘안회당’에서 제1회 입학식을 했다. 이후 1942년 홍성읍 대교리 343-3번지에 신축교사가 준공됐고, 1943년 4월 5일에는 제3회 신입생 50명의 입학식을 신축·준공한 ‘홍성고등학교 강당(講堂)’에서 처음으로 갖게 되면서 홍성고등학교의 대교리 시대가 시작돼 2015년까지 74년 동안 계속됐다.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343-3번지에는 지금은 충남도청 내포신도시로 옮겨간 ‘홍성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던 옛터’로 남았으며, 지금은 지난 2018년 5월 홍성읍 소향리에 있던 홍성여자고등학교가 이곳으로 이전·개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홍성여자고등학교가 이전한 홍성읍 대교리 343-3에 있는 ‘홍성고등학교 강당(洪城高等學校 講堂)’은 1942년 본교사동과 함께 신축된 이후 현재까지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꼽히며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지난 1972년 9월 본관동이 전소되는 화재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자리해 있었던 강당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러한 연유와 건물의 역사·교육적 가치로 인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홍성고등학교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기 훨씬 전인 지난 2006년 9월 19일 ‘홍성고등학교 강당(洪城高等學校 講堂)’은 문화재청에 의해 홍성 유일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등록됐다. 

홍성고등학교 본관 교사동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옛 ‘홍성고등학교 강당’은 1층에 연면적 357.02㎡ 규모의 건물 1동이다. 1943년에 건립 당시부터 ‘홍성공립중학교 강당’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물로, 강당의 단상 위에는 무궁화와 태극 문양으로 꾸민 벽면을 파서 만든 벽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학교 건물에 있던 봉안소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각 학교의 봉안소에서는 일본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를 낭독했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드물게 강당 내부의 벽감이나 창문틀, 그 주변 등 일제강점기의 학교 건물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큰 문화재로 꼽히는 건물이다. 공간구성은 크게 강당과 무대 공간으로 나뉘고, 무대 공간 좌우로 부속실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홍성고등학교 강당도 이러한 일반적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다. 

강당의 크기는 외벽 중심선 기준으로 21820×16370㎜이며, 장단비는 1:1.33으로 폭에 비해 길이가 길지 않은 편이다. 외부 출입구는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1개씩 있으며, 주출입은 좌측면의 본관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무대 뒤쪽의 출입은 우측면의 중앙출입구에서 이뤄진다. 당시 용척을 분석한 결과 곡척 1자가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며, 장변은 72자, 단변의 길이는 54자가 된다. 

그리고 9자를 주칸으로 장변을 8칸으로 구획하고, 그중 7칸은 강당 공간으로, 나머지 1칸은 무대 뒤 부속 공간으로 구획했다. 특이한 것은 무대 후면에 벽감을 마련한 것으로 현재는 미닫이 안에 태극기를 부착했지만,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상징적 문장을 표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입면은 강당의 특성상 단변인 박공면을 정면으로 삼았다. 무대가 설치된 동쪽을 배면으로 삼고, 강당 부분인 서쪽이 건물의 정면이 된다. 정면 중앙에 주 출입구를 두고 좌우에 양측면과 동일한 형식의 창호를 배치했다. 그리고 삼각형을 이루는 박공면에는 수직으로 긴 창호를 삼열로 배치했는데, 원래는 천정속 환기를 위한 환기창으로 추정된다. 장변의 양측면은 전체적으로 8칸으로 구성하고, 양단부에는 창을 배치하지 않고 중앙의 6칸 중 한 칸에는 출입문을, 나머지 5칸에는 창호를 배치했다.

건물의 구조는 붉은 벽돌을 내력벽으로 쌓고 내부로 7개의 기둥을 세워 상부의 지붕 트러스를 받치고 있다. 본래 바닥은 장마루 형식의 마루 바닥으로 장선과 장선받이, 동바리 등으로 구성돼 있었지만 현재는 리모델링 과정에서 마루를 모두 걷어내고 콘크리트로 바꿨다. 원형이 가치 보존 차원에서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건물 활용은 등록문화재 등록 당시와 홍성고등학교가 활용 당시인 2011년에는 역사관으로 활용됐다. 역사관으로 개조할 당시에도 모든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바꿨어도 ‘무대 부분은 제외했다’는 점이다. ‘홍성고등학교 강당이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부분이 본 강당 건물에서는 무대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문화재의 보존에서 중요한 원칙은 ‘원형 보존’이라는 점인데, 원래의 마루 바닥을 뜯어내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바꾼 것은 ‘일제강점기 학교 강당으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가치를 벗어나 활용만 강조한 경우의 껍데기만 남긴 결과라는 지적에 주목할 일이다. 등록문화재의 가치와 후손들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 보존방안이 철저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곳을 활용하고 있는 홍성여자고등학교가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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