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망 같았던 ‘석면’, ‘코’를 통해 ‘폐’까지 관통”
상태바
“삶의 희망 같았던 ‘석면’, ‘코’를 통해 ‘폐’까지 관통”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자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신은미
  • 승인 2023.11.19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최대 석면피해지역 충남, ‘석면피해기록관’을 세우자〈11〉
15년가량 석면광산 막장에서 일을 하며 일을 했던 시절을 설명하고 있는 김명환 옹.
15년가량 석면광산 막장에서 일을 하며 일을 했던 시절을 설명하고 있는 김명환 옹.

보령지역 석면피해자 김명환 옹

■하루종일 막장에서 석면 파내… ‘에스키모인’처럼 먼지 뒤덮여
보령 오천면 갈현리 돌고개마을 김명환 옹(84)은 충남 서천군 문산면 출신이다. 25살이 되던 해인 지난 1964년 처가댁 동네인 이곳으로 장가와서 지금까지 68년 동안 살았다. 

마을에는 ‘대보석산’이라는 석면광산이 있었는데, 문을 닫을 때까지 15년가량 꾸준히 그곳에서 석면일을 했다. 보통은 막장에서 곡괭이를 사용해 캐내는 일을 하다가 굿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재분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김 옹은 부인 최금연(79) 씨 사이에 딸 넷과 아들 둘을 뒀다. 육남매 중 셋째인 장남 김상수 씨를 제외한 자녀들은 아직 석면검사를 받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김 옹의 처가 식구들은 석면광산 근처에 살았으나 석면과 관련된 일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도 석면일을 전혀 하지 않았던 부인 최금연 씨와 장남 김상수 씨는 석면폐증 3급 판정을 받았다. 

김 옹은 아마도 같은 환경에서 지낸 다른 가족들도 석면검사를 한다면 석면 질환을 판정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
.
.

 

 보령 오천면 김명환 옹, 15년가량 석면광산 막장서 일해
고된 광산 일 마친 후, 씻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잠들기도

.
.
.


“주로 막장에서 일을 했어요. 석면광산 굴 안에서 곡괭이를 이용해 큰 돌을 파내고, 좁은 곳에선 외뿔 곡괭이를 사용해 캐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굿반 작업을 했다가 또다시 파내기를 반복했죠.”

어둡고 하루 종일 매캐한 돌 먼지 가득했던 석면광산에서 김 옹은 하루종일 하얀 돌가루를 뒤집어 쓴 채로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일을 하고 나오면 마치 에스키모인처럼 온몸에 하얀 석면가루가 쌓였었어요. 광산에서 나와 하얀 돌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죠. 고된 일을 마치고 씻지도 못한 채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때론 그대로 잠들기도 했었어요.”

15년 가까이 석면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김 옹도 석면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광산에서 일을 그만둔 이후에도 슬레이트 지붕이 한창 유행하는 바람에 슬레이트를 톱으로 잘라 규격에 맞춰 이어서 못으로 박아 고정하는 일도 했었어요. 지금에 와서 보면 이렇게 위험한 줄 알았으면 석면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지나고 보니 다 죽으려고 했던 짓이었네요.”

한편 석면폐증 3급인 김명환 옹과 부인 최금연 씨의 건강관리를 위해 홍성의료원 의료진이 방문했다. 사회복지사 1명과 간호사 1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은 ‘석면질환 건강관리서비스사업’의 일환으로 도내 석면질환자 자택을 방문해 폐질환이나 감기 등 호흡기질환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안내하고, 혈압, 혈당, 빈혈수치, 당뇨, 요산(통풍), 소변검사, 우울증검사 등 건강관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건우 간호사는 “지난해부터 올해 중순까지 충남 5개 지역 714가구를 방문했고, 보통 3~4개월마다 방문해서 석면피해자들의 건강관리를 돕고 있다”면서 “대부분 70~90대의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노인성 질환을 갖고 계시고 있고, 의료지원 혜택이나 치료, 상담 등 의료 연계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김응환 사회복지사는 “방문 전 미리 전화로 연락을 드리는데 어르신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해 방문을 거부하거나 심지어는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하지만 가가호호 방문해 건강관리는 물론 이따금씩 전구를 교체해 드리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등의 일을 하기도 하는데, 고맙다며 손잡아 주시고 먹을 것을 챙겨주시는 모습에 정겨움과 보람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
.
.


보령지역 석면피해자 채석희 여사

오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업으로 석면일을 했던 채석희 여사가 옛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업으로 석면일을 했던 채석희 여사가 옛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석면 덩이 가마니에 담고 꿰매… 온갖 후유증에 안 아픈데 없어
보령 주포면 마강2리마을 채석희 여사(85)는 주포 토박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왔다. 채 여사의 집 옆에는 석면광산인 ‘대보석산’과 공장이 있었다. 

어린 시절 일제 시대 때 학교를 가지 못했던 채 여사는 석면 덩어리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생꼬’일을 했다. 황토를 칼로 긁어내고 털어냈다. 

그리고 청소면에 있는 공장에서 석면을 포대에 담아 꿰매는 일을 했다. 스무살부터 시작해 무려 20년 넘게 매일같이 석면을 만졌고, 숨 쉬며 들이마셨다. 채 여사는 석면폐증 2급이다. 

“석면폐증 2급 판정받고 2년간 요양생활수당 지원받았슈. 걸으면 숨이 차고, 어지럽고, 가래가 끓기도 하고, 정말 안 아픈 데가 없슈. 이렇게 된 게 벌써 10년은 넘은 거 같아유”

채 여사는 18살이 되던 해인 1957년에 시집을 갔고, 그전에는 석면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의 남편 유영수 옹은 30년 전 별세했다. 유 옹도 석면광산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채 여사의 오빠는 대천 청라에서 석탄광산을 다니며 일을 했다. 또 언니 최순예 씨는 석면공장을 다니며 일을 했다.

.
.
.

 

보령 주포면 채석희 여사, 스무살부터 20년간 석면일 해
오남매 키우며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 같이 석면에 노출

.
.
.


“언니가 석면일 숫하게 했슈. 공장이 하나 있었는디 돈 벌어 먹고 산다고 거기서 어지간히 일 깨나 했슈. 서울 사는 언니는 석면검사 했는디 뭐 안 나오데. 난 아들 하나에 딸 넷 뒀는데 지금은 각자 서울, 부산, 여주, 천안, 포천에 살아유. 애덜 어릴 때 다 거기서 살았는디 석면검사는 아직 아무도 안했슈.”

채 여사는 오남매를 키우면서 석면일을 계속 했다.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보통은 동네 여자 8명이 모여서 함께 생꼬 일을 했다.

“불난 줄 알았더니 집에 있는 앨범에 예전 사진이 있더라구유. 예전 생각하면 후회도 되는디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뭣한데유. 이제 다 늙어서. 갈 날 얼마 남지 않은 판국에. 그저 몸 더 안아프고, 생활하는데 힘들지나 않았음 좋것슈.”

 

홍성의료원 의료진이 석면질환 건강관리서비스사업의 일환으로 김명환 옹 자택을 방문했다. 
홍성의료원 의료진이 석면질환 건강관리서비스사업의 일환으로 김명환 옹 자택을 방문했다. 
김명환 옹이 옛 집터를 소개하며,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에게 석면광산에서 일했던 시절 사용했던 곡괭이를 보여주며, 만약 석면피해기록관이 생기면 기증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명환 옹이 옛 집터를 소개하며, 이날 인터뷰에 동행한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에게 석면광산에서 일했던 시절 사용했던 곡괭이를 보여주며, 만약 석면피해기록관이 생기면 기증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이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