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석면 피해자들의 ‘보이지 않는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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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석면 피해자들의 ‘보이지 않는 숨소리’”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자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신은미
  • 승인 2023.11.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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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석면피해지역 충남, ‘석면피해기록관’을 세우자〈12〉

 

10~20대 시절 석면광산에서 일을 했던 박공순 옹이 당시 사용했던 곡괭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보령지역 석면피해자 박공순 옹

■석면폐증 2급 보령 박공순 옹… 7년 넘게 석면광산서 일해
보령 주포면 보령1리마을 박공순 옹(80)은 16~17세였던 지난 1960년경부터 5년 정도 석면광산인 ‘대보석산’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28개월의 군 복무 이후 다시 석면광산에서 일을 했다. 주로 광석을 지게에 져서 나르는 일을 했다. 결국 박 옹은 석면폐증 2급을 인정받았다.

당시 박 옹이 거주했던 자택에서 겨우 100m 떨어진 곳에 제분공장이 위치해 있었다. 석산은 2km 남짓 거리로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무려 20여 년가량 생꼬 일을 했고, 제분소에서도 일을 했다.

대전에 살고 있는 박 옹의 여동생 박점순(76) 씨와 서울에 사는 박정순(78) 씨 역시 모친과 함께 어려서부터 생꼬 일과 제분소 일을 했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 모두 석면폐증 3급을 인정받았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 모두 석면폐증 3급입니다. 나도 석면폐증 2급이고요. 자식은 3남 1녀를 뒀는데, 아직 석면 관련 검사를 받은 적은 없어요. 하지만 아마도 환경적인 영향으로 석면 질환을 갖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 옹은 스물아홉살이 되던 해 혼인 후 석탄광산에서 7~8년 정도 근무하다가 방앗간을 차려 40여 년 정도 운영했다.

“기침을 철렁철렁한다고 해서 내 별명이 박철랭이었어요. 예전에는 석면폐증 1급도 요양생활수당이 2년밖에 지원되지 않았었어요. 우리가 계속 데모하고 다니고 해서 1급은 해준거죠. 그런데 2급하고 3급도 같이 지원해줘야지…. 말하면 숨이 가쁘고 겨울에는 특히 더 힘듭니다. 농사짓는 것도 이젠 못하겠어요.”

지난 2009년 1월 2일 국회 앞에서 부산, 대구, 충남, 서울, 경기 지역에서 모인 100여 명의 피해자들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회원들은 석면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도 별짓 다했어요. 정지열 씨가 국회 찾아가서 울고 그랬었죠. 그래도 우리 편 안들어주더군요. 광산의 광자도 모르는 양반들도 석면폐증 1급이에요. 광천 근방 가면 피해자가 널렸죠.”

광산에서 직접적으로 일하지 않았어도 석면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행하는 분진으로 인한 석면피해는 피해갈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석면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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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령 주포 박공순 옹, 내 별명은 기침을 철렁철렁해서 ‘박철랭’
2009년 국회 집회에 참여… 석면폐증 2·3급도 ‘1급 대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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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옹은 하루종일 마스크를 써야만 했던 코로나시대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운 여름에 마스크를 착용하면 더욱 숨이 가쁘고 숨 쉬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대를 지났지만 한해 두해 지나면서 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도 늙어가고 있다.

10년 후면 광산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 소유의 방앗간이나 어머님이 생전에 생활하셨던 빈집을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석면피해기록관을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데 장소가 마땅치 않다면 기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래서 석면피해자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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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지역 석면피해자 김양희 여사

젊은 시절 2~3년 간 이따금씩 석면 관련 일을 했던 김양희 여사는 석면폐증 2급을 인정받았다.

■보령 오천면 갈현리 김양희 여사… 온 가족이 석면 피해, 유독 기침 심해
보령 오천면 갈현리 돌고개마을 김양희 여사(89)는 21살이었던 지난 1955년 오천면 영보리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돌고개마을로 시집왔더니 동네에 석면광산이 있었다. 바로 ‘대보석산’이었다. 김 여사는 당시에 석면 일을 많이 하진 않았다. 그래도 농사를 지으며 2~3년가량 종종 석면 관련 일을 했다.

주로 백토 덩어리에 묻은 황토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석면 덩어리를 포대에 담아 꿰매는 일을 했다.

“당시에 생활이 궁하지는 않아서 석면 일을 많이 하진 않았었어요. 시댁 식구가 워낙 신사라 그런 일을 안했었죠. 그래도 종종 일손이 필요한 경우 일을 하곤 했어요. 그때 알았으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김 여사는 7남매를 뒀다. 석면광산 근처에서 살았던 탓에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어려서부터 기침이 심했다.

“애들은 집 근처에 석면광산이 있으니 일을 하진 않았어도 얼마나 석면가루를 들이마셨겠어요. 기침을 유난히 많이 했지만 그땐 먼지가 많아서 그러려니 생각했죠. 저도 찬공기 들이마시면 기침나고, 기침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먹어봤는데 별 소용 없더라고요.”

김 여사는 벌써 구순(九旬)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기침에 좋다는 약 중에 아주 센 약을 먹었더니 기침 증세가 나아지더라고요. 그래서 2년 넘게 그 약을 먹으며 ‘이제 좀 살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온몸이 가려워지더니 너무 심해져서 결국 그 약도 끊었죠. 후유증은 말끔히 없어졌는데, 기침이 다시 돌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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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령 오천면 돌고개마을 김양희 여사, 석면폐증 ‘3급’→‘2급’
온 가족 석면질환자, 7남매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기침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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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석면피해지원센터는 매달 석면피해신고를 접수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석면피해를 입은 경우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에 문의해 피해규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석면피해자들이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굳이 과거에 근무한 경력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거리끼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석면광산에서 근무하지 않았어도 석면광산 근처에 거주했던 이들 중에서도 석면피해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다수다.

또한 농어촌 주택의 방치된 슬레이트 지붕과 학교 건물 등에 사용된 슬레이트 등으로 인한 석면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공 있는 실정이다.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지 13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석면피해로 인해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이들이 곳곳에 많다. 어제오늘 만났던 가까운 이웃 중에도 석면피해자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령 주포면 마강2리마을 석면피해자 김종구씨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모습.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청운대 학생들이 김양희 여사(사진 오른쪽)를 인터뷰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이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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