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 사회적경제로 실현하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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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복지, 사회적경제로 실현하자 -7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2.12.3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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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풀뿌리 경제의 대안, 협동조합

 

 

사회가 발달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복지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대다수 소규모 지역사회에서 복지 수요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존의 복지 담론은 국가라는 단일 개체에, 예산이라는 단일 방법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복지는 늘 선별과 보편의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는 그 인식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복지는 단순히 국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 아우루는 방법으로 실현될 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이 같은 자본주의의 한계와 복지사회를 위한 열망을 잇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날로 늘어가는 지역사회 복지수요를 사회적경제라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이번 보도는 홍주신문이 11월 말까지 옥천신문을 비롯한 11개 신문사와 연합취재로 진행했던 '지역사회복지, 사회적경제로 실현하자' 연재에서 이어지는 글로 스웨덴 주택협동조합의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꿈같은 주택협동조합, 스웨덴에선 '일상'으로 정착 

가구 20%는 조합주택… 일정기간 저축해야 입주권 받아
이웃들과 합창반 등 다양한 취미활동… 공동체적 삶 향유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은 일명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의 도시다. 도시 자체가 크고 작은 1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고, 이 섬들은 모두 57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11월의 스톡홀름은 낮게 드리운 잿빛 하늘 아래로 고색창연한 전통건축물과 현대식 건축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뤘다. 우리에게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는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를 휘감은 멜라렌(Malaren) 호수 주변에 형성된 주택단지 대부분은 푸른 녹지대에 안긴 높이 4~6층의 저층건물 일색이다.

평화롭고 깨끗한 이들 주택단지 가운데 협동조합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있다. 집을 협동조합으로 짓는다고? 집을 '사는 곳'보다 재테크 수단인 '사는 것'으로 인식해온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이야기이지만 이 도시에서는 지은 지 80~90년 된 집부터 지금 막 짓기 시작한 집까지 소비자가 만든 협동조합방식의 주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스웨덴 가구의 20%가 주거협동조합(이하 주택조합)으로 지어진 집에 살고 있을 정도다.


■ 스웨덴 전역 4000여 조합 가입 

 

 

 

▲ 스웨덴 스톡홀름 멜라렌(Malaren) 호수에 둘러싸인 439세대의 주택단지, 이 단지는 모두 협동조합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스웨덴의 대표적 주택조합인 호에스베(HSB) 스톡홀름 대표직(1997~2007)을 역임하고 현재 쿰파니언(Coompanion, 협동조합지원조직) 스웨덴 대표를 맡고 있는 군부리트 마텐손(Gun-Britt Martensson) 씨. 그녀와 남편 알네 마텐손(Arne Martensson) 씨는 1947년에 협동조합방식으로 지은 자신들의 집으로 기꺼이 공동취재단을 초대해 주었다. 남편 알네 씨는 총 439세대에 이르는 이곳 주택단지의 조합대표이기도 하다.
지은 지 65년 된 군부리트 씨의 집은 거실과 부엌, 4개의 방 구조로 이뤄진 30평 남짓한 중소형주택이다. 18년 전 주방가구를 교체한 것 외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은 원형그대로의 협동조합주택이다. 은퇴 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부는 단지 내 이웃들과도 다양한 취미활동을 함께한다.

더불어 식사와 사우나를 즐기고, 합창반과 사진모임 등을 꾸려 활동한다. 이는 협동조합주택과 일반주택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군부리트 씨는 "이 섬에 있는 주택단지 5~6곳이 모두 협동조합에서 지은 것인데 입주민들 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바로 HSB에 의해 조직화돼 있다"며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단지 내 필요한 사항을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다보니 협동조합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에 경찰관이 사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협동의 정신은 입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 집을 마련하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1924년 창설한 HSB에는 현재 스웨덴 전역의 크고 작은 주택조합 4000여 개가 가입돼 있다. 31개 HSB 지부들이 관리하는 이들 조합의 정회원 수만 55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만 5000여명은 지금도 내 집 장만을 목표로 일종의 '저축'을 붓고 있다. HSB의 조합원이 되려면 매달 최소 300크로나(Krona, 한화 약 4만 8000원) 이상의 회비를 내야 한다. 협동조합주택이 아름답고, 튼튼하고, 살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시에 목돈을 적립하려한 부자들도 있었지만 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협동조합주택의 입주 우선순위는 돈의 액수가 아닌 돈의 적립 기간에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볼보 회장도 일정기간 꾸준히 저축한 뒤에야 입주권이 주어졌다.
최근에는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집값이 많이 올라 30년 이상은 저축을 해야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지방의 중소도시의 경우에는 몇 년 만 납입해도 가능하다. 군부리트 씨의 딸도 30년간 조합비를 낸 후에야 스톡홀름 안에 아주 좋은 주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스웨덴 국민들이 아이의 탄생이나 세례식 때부터 조합가입을 서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SB는 스웨덴 주택시장 흐름 자체를 바꿔놓기도 했다. 지난 1930~40년대 HSB가 소위 잘나가자 민간건설업체들이 건축자재공장을 압박해 자재공급을 차단시켜 아예 자체 자재공장을 세웠다. 그 결과 지금은 자재공장들이 너도나도 HSB에 물품을 공급하려 줄을 서고 있다. 10년 전에는 주택보험사들이 보험료를 계속해서 올려 받았다. HSB는 이때 역시 주택보험회사를 차렸고 그 덕에 일반 보험료까지 덩달아 반값으로 내려앉았다.


■ 탄생부터 조합가입 서둘러 

 

 

 

▲ 1947년도에 지은 자택에서 포즈를 취한 군부리트 마텐손 씨(왼쪽)와 남편 알네 마텐손 씨.
조합원, 즉 주택이용자 중심의 주택설계 또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HSB는 불과 1920년대에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집을 설계하면서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닌 휴식과 회복이라는 생활의 질적 요소를 곳곳에 도입했다. 노동자들은 굳이 매일 매일 씻을 필요가 없다는 사회통념을 깨고 집 안에 욕조와 욕실을 앉힌 것은 당시만 해도 파격이었다. 집안에 미술작품을 들이고, 주방을 실용적으로 꾸미고, 복도에 쓰레기통로를 설치한 것도 HSB가 스웨덴 건축디자인을 선도한 부문이었다.

HSB는 88년의 오랜 역사와 스웨덴 내에서 무시 못 할 조직규모를 갖췄음에도 지금까지 비교적 초심을 잃지 않고 창설이념을 견지하고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24년부터 지금껏 지은 50만 가구 가운데 12만 가구는 돈이 없어 집을 살 수 없거나 조합주택을 받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이들을 위한 공공주택(일종의 공공임대주택)이다. 때문에 HSB는 최근 공공이 맡고 있던 주택시장 일부를 영리회사에 떠넘기려 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 강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군부리트 씨는 "오랜 세월 HSB가 지속돼 오면서 스웨덴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주택부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최근 20~25년 사이 공공이 관리하던 주택부문을 시장에 맡기려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 우리는 이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HSB는 여전히 젊은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집을 짓고 있으며, HSB의 가장 큰 장점 또한 아래의 민중들로부터 의견을 구하고 이것을 십분 반영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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