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나무 중에 제일은 바로 소나무’라 했던가. 늘 푸르고 멋진 소나무를 항상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소나무 언덕의 솔뫼성지다. 당진 우강면 송산리의 솔뫼성지에는 웅장하고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주교성지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해가 질 무렵 햇빛에 반사되는 빛에 소나무 숲이 어찌나 웅장하고 멋지게 보이는지, 왠지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라고들 한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로 유명한 곳이다. 솔뫼에 들어서면 바로 옆에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도 있고 온갖 꽃나무와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봄이나 여름, 가을과 겨울 언제라도 아담하고 정감이 넘치는 곳이란다.
당진 우강면 솔뫼로 132에 위치하고 있는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출생한 곳으로 생가가 있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국내 제1의 가톨릭 성지로 명성이 자자한 이유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에 생가 안채를 복원했다. 생가는 1998년 충남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됐다.
1984년 5월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김대건 신부가 성인으로 시성된 이후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솔뫼성지다.

■ 소나무 숲 솔뫼성지 ‘한국의 베들레헴’
문화재청은 지난 2014년도에 이곳 당진 우강의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제529호로 지정했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적·세계적인 성지가 됐다. 1836년에 작성된 김대건 신부의 신학교 입학 서약서에는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가 ‘충청도 면천 솔뫼’로 기록돼 있는데, ‘솔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현재 이곳에는 지난 2004년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와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이해 1946년 세워진 순교복자비, 김대건 신부 동상, 울창한 소나무 숲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주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솔뫼아레나(야외 문화공간) 등이 조성돼 있어,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성당은 김대건이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형상화했다고 한다. 침몰 위험을 안고 떠난 일엽편주가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졌지만 무사히 돌아왔듯이 한국천주교도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성장했음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라파엘호는 원래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운행하도록 만들어진 작은 돛단배였다. 외관은 순교자를 상징하는 붉은 색 소재를 사용했으며, 성당 가운데로 난 큰길은 김대건 신부의 세계를 향한 드넓은 기개를 나타낸다는 설명이다. 아레나는 모래를 깔아놓은 로마의 원형극장을 말하는데, 솔뫼아레나는 김대건 신부와 동료들이 병오박해(1846년) 때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해 조성했다. 솔뫼아레나 주변으로 12사도상이 세워져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 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 역사 중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신심(信心)만 놓는다면 해방될 수 있는 온갖 핍박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인물이다. 부귀영화에 아랑곳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신자를 돕고 의지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딛고자 했던 성인이다. 김대건 신부에게 있어서 박해는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감내할 수 있는 극복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솔뫼성지의 신앙고백비에는 “솔뫼 노송의 등 굽은 모습에서 순교자들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철 푸른 솔은 순교자들의 한결같은 신앙 고백을 상징합니다. 솔뫼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처럼 우리도 소나무를 심어 후손들에게 하느님께는 영광을, 사람에게는 구원을 가져오는 신앙을 전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천주교 103인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 뒷동산을 거닐자니 예의 소나무 숲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이렇듯 제법 나이가 먹었음 직한 소나무들이 동산에 가득 숲을 이룬 곳 솔뫼성지. 솔숲을 거닐던 중 자세가 바르지 않고 휘어 자란 소나무들의 모습에서 문득 느낀 애처로움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4대가 순교한 인물을 기억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 김대건 신부의 동상 뒤의 하얀 탑은 성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탑으로 신자를 돌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믿기에 의지하고 사랑하기에 믿음을 준 성자와 성모의 상을 함께 바라보자니 사람은 믿음으로 살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당진의 솔뫼성지다. 솔뫼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다.


■ 조선에서 가장 컸던 교우촌 신리성지
당진 합덕읍에 있는 신리 성지는 조선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우촌을 기념해 조성됐다. 신리는 간척사업으로 논이 생기면서 새로 생겨난 마을로, 이존창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1865년 위앵 신부가 신리에 들어왔을 때 400명의 주민 모두가 신자였다. 신자가 아닌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1986년 병인박해 때 위앵 신부는 물론 신자 42명이 순교했다. 단일 마을로는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교우촌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논 한 가운데 1만여 평의 부지에 조성된 신리 성지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손자선의 생가와 다불뤼 주교 동상, 기념 성당, 다불뤼 주교 기념관 등이 있다. 2004년에 복원된 손자선 생가는 다불뤼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교구청으로 사용됐다. 앙투안 다블뤼(세례명 안토니오·한국명 안돈이) 주교는 병인박해로 체포되기 전 신리의 천주교회에서 천주교 조선 제5대 교구장을 지내면서 성사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다불뤼 주교는 한국천주교의 은인과 같은 존재다. 초창기 한글 교리서를 저술했으며, 조선교회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정리해 파리외방선교회에 보낸 ‘다불뤼 비망기’는 훗날 한국천주교사와 순교사의 기념비적인 토대가 됐다. 노출 콘크리크로 건립된 기념관(지하 2층, 지상 2층)은 다블뤼 주교의 시성 30주년에 맞춰 지난 2014년 순교자 역사공원과 함께 준공했다. 건물 옥상인 전망대에 올라가면 멀리 ‘합덕 성당’과 ‘여사울 성당’이 조망된다.
또한 신리성지 내에 자리 잡은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은 지난 2013년에 착공해 2014년 1392㎡ 규모로 준공됐고, 2017년 3월에 개관했다. 이곳에는 살아있는 유일한 화폐 인물화가인 예산 출신인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이 신리의 순교자들과 신자들의 삶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3년에 걸쳐 작업한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르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손자선 토마스 다섯 성인의 영정화 5점과 다블뤼 주교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록한 1000호 크기의 순교기록화 13점 등 총 18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모두 우리나라 전통 채색기법인 장지기법을 사용해 완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 제5대 조선 교구 역할을 하며 조선천주교회 초기 박해 시절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성지인 이곳에는 순교미술관 외에도 순례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강당, 순례자 센터 등의 시설이 함께 조성돼 있으며, 인근에는 무명순교자의 묘 46기도 위치해 있다.
한편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이 자리한 신리성지는 충남도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곳으로, 제5대 조선 교구장을 지낸 다블뤼 주교가 조선천주교사를 집필한 곳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