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역사, ‘해미읍성주가’의 ‘옛날막걸리·서산들국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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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역사, ‘해미읍성주가’의 ‘옛날막걸리·서산들국화주’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4.08.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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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4〉
해미읍성주가 전경.
해미읍성주가 전경.

1920년 음암양조장 모태 ‘예술주조’와 ‘해미읍성주가’로 105년째 술빚어
2002년 새로운 술 ‘약주(藥酒)’개발에 도전 2년만에 ‘서산들국화주’ 탄생
 ‘서산들국화주’ 쌀과 들국화, 누룩 등 순수한 자연 효모 발효시켜 만들어
 ‘해미읍성옛날막걸리’ 쌀 70%, 밀 30%, 누룩, 국, 젖산에 아스파탐 첨가

 

조선 시대, 우리나라는 가장 찬란한 술 문화를 자랑했다. 고려 시대부터 왕실에서만 마시던 증류주가 일반에도 전파됐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 문화가 활성화됐으며, 집안마다 다양한 술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 전통주는 뒤틀리는 운명을 맞게 됐는데,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우리의 민족문화 말살 작업을 본격화했으며, 전통주도 그 대상이었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통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을 발효했다. 이때부터 가양주 제조는 면허제로 변경됐지만 사실상 금지된 것이었다. 가양주는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었고, 술 제조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은 술을 제조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주세령’의 핵심내용이었다.

이후 술은 일제의 통제하에 제조됨으로써 품질과 규격 등이 단일화됐지만 제조자 숫자는 급감했다. 1916년 30만 명이 넘었던 가양주 제조자는 1930년 10명으로 감소했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주는 더 자취를 감췄다. 이어 1960년대 식량난으로 탁주·약주 제조에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술은 밀가루 막걸리와 소주로 단순화됐다. 현재는 쌀을 이용한 전통주 제조는 가능해졌지만 이미 대량 생산되는 희석식 소주와 맥주 등에 밀리고 주류 유통구조까지 대기업들이 지배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해미읍성주가에서 생산하는 해미읍성 옛날막걸리와 서산 들국화주.
해미읍성주가에서 생산하는 해미읍성 옛날막걸리와 서산 들국화주.

■ 1920년 음암양조장 모태 ‘해미읍성주가’
서산 해미읍성 근처에 있는 ‘해미읍성주가’는 1920년 서산 음암면 도당리에 음암양조장 설립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1979년 3월 이문수·전영자 부부가 음암양조장을 인수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잇게 된다. 이후 음암양조장은 지난 2001년 1월에는 ‘예술주조’로 상호와 대표자(대표 전영자)를 변경하고, 2015년 6월에는 양조장을 해미읍성 근처의 해미면 휴암1길 40-8로 이전하면서 ‘해미읍성주가’로 상호와 대표자(대표 이원욱)를 변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0년에 설립된 음암양조장을 모태로 ‘예술주조’와 ‘해미읍성주가’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105년째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는 충남 서북부지역의 대표적 술도가의 명가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105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해미읍성주가’는 지난 2015년 6월 5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대를 이어 막걸리와 우리 술을 빚어오고 있다. 현재 이곳의 운영과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전영자)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은 아들 이원욱(李元郁) 대표다. 이 대표의 어머니 전영자(田令子) 전 대표는 홍성의 구항초등학교, 홍성여중과 홍성여고를 졸업했다. 지난 1981년 이 양조장 가문으로 시집을 왔고 이 대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양조장을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 “음암양조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에 워낙 오래돼 곳곳이 많이 낡았었지만, 오래된 명성만큼 막걸리는 잘 팔렸다”고 회고한다. 냉동차에 막걸리를 가득 싣고 납품을 가면 점심때쯤 다시 가지고 나갔을 정도로 바빴다는 설명이다. 서산 시내에서 팔릴 물량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고 한다. 지난 2005년에 양조장 두 곳을 끌어안으면서부터는 서산권(圈)까지 판매 범위를 넓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막걸리 판매가 부진을 거듭하자, 2002년에 새로운 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약주(藥酒)에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2년 여의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술이 ‘서산들국화주’라고 설명한다. 

사실 전영자 대표에 따르면 “들국화주 제조의 원조는 친정의 시할머니였다고 한다. 홍성 광천의 독배에서 친정의 시할머니가 들국화주를 담그기 시작해 시어머니를 거쳐 자신에게 전수됐는데, 결혼을 하면서 술 담그기를 중단했다가 약주 개발에 도전하면서 다시 들국화주를 제조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렇게 따지면 지금의 ‘해미읍성주가’는 전영자 대표의 시할머니에서 지금의 아들까지 4대에 걸쳐 대를 이으며 술을 빚고 있는 셈이다.
 

충남도가 발굴·선정하는 가업승계 지원사업 ‘충남이어家’ 인증 간판.
해미읍성주가 입구의 충남도가 발굴·선정하는 가업승계 지원사업 ‘충남이어家’ 인증 간판.

■ “좋은 들국화에서 좋은 술이 나온다”
“좋은 들국화가 있어야만 좋은 술이 나온다.” 해미읍성주가의 ‘서산들국화주’는 야생 들국화가 주원료인데, 들국화 채취를 위해 ‘오랜 세월 태안반도 곳곳을 누벼왔기 때문에 좋은 들국화가 있는 곳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 ‘서산들국화주’를 빚어온 전영자 대표의 설명이다. 따라서 ‘해미읍성주가’에서 만들어지는 ‘서산들국화주’는 들국화가 활짝 피어나야만 술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활짝 폈을 때의 들국화는 향이 풍부하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서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들국화를 직접 채취해 정성껏 빚은 술이 바로 ‘서산들국화주’다. 

‘서산들국화주’는 쌀과 들국화, 누룩 등 순수한 자연 효모를 발효시켜서 만들어졌으며 제조비법이 4대를 이어오는 세월 동안 서민들의 애환과 멋이 담긴 술을 지켜내며 맛과 향기, 감칠맛이 더해지고 있다. 술의 용량은 750ml로 13도라는 도수에도 불구하고 술잔에 따른 ‘서산들국화주’는 들판에 피어있는 들국화를 그대로 담은 듯한 샛노란 밝은 빛깔이 영롱하다. 은은하게 국화 향이 코끝을 스치는 부드러운 ‘서산들국화주’는 향이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인데, 들국화는 한창일 때 2주 동안 수확하고, 이를 1년간 사용한다고 전한다. 한때 ‘서산들국화주’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음암양조장은 ‘예술주조’로 간판을 바꿔 달았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또한 ‘해미읍성주가’의 현재 ‘해미읍성옛날막걸리’ 제조에는 쌀 70%, 밀 30%를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쌀만 넣으면 맛이 좀 밍밍하고 싸한 맛이 나는데, 여기에 밀을 약간 섞어주면 무척 구수한 맛이 난다’고 전했다. 해미읍성옛날막걸리는 누룩, 국, 젖산에 프랑스산(産) 아스파탐이 첨가돼 있다고 하는데, 알코올도수는 7%로 마셔보면 생각보다 세다는 평가다.

해미읍성 ‘옛날막걸리’와 ‘서산들국화주’를 제조하는 ‘해미읍성주가’를 경영하고 있는 이원욱 대표는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후 뮤지컬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지난 2012년 서산에 내려와 해미읍성주가를 운영하면서 농사도 짓고 젊은 세대들의 특성인지, 식품 등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되는 세미나 등을 비롯해 학업이나 연구 등에는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대표가 부모의 가업을 잇게 되면서 ‘해미읍성주가’도 충남도가 가업승계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우수 소상공인을 발굴·지원하는 ‘충남이어家’라는 가업승계 지원사업에 선정돼 ‘충남이어家’ 인증 간판이 양조장 입구에 걸려 있다. 

한편 지난 2008년 11월 당시 제22회 충청남도산업디자인대전 전국 공모 시각디자인분야에서 ‘서산 들국화주’가 대상(대덕대 윤극노 출품)을 차지한 디자인과 포장 등 패키지를 이용해 ‘서산들국화주’의 고부가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디자인한 ‘해미읍성주가’의 브랜드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충청의 100년 술도가’를 찾아다니는 기자에게 어머니인 전영자 대표는 ‘아들인 이원욱 대표는 양조장과 관련된 인터뷰 등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전하며 술빚는 비법과 양조장에 관련된 사연을 들려주며 인정까지 덤으로 안겨줬다.

전 대표는 남편(이문수)과 함께 충남 서북부지역 주민들이 빚어 마시던 민속주인 들국화주를 하나의 상품으로 개발한 주인공이다. 부부가 개발한 서산의 ‘들국화주’는 들국화의 아름다움과 맛, 멋과 향을 모두 머금고 있는 듯했다. 품질 좋은 서산·태안지역의 쌀을 원료로 빚어내니 제맛이 난다는 ‘서산들국화주’를 만드는 비법은 약주 계열의 다른 술과 대동소이하지만 술맛을 내는 특징은 들국화를 넣는 과정이 보태진다며 ‘들국화 등 재료의 색깔에 따라 연한 황색 또는 담황색 등을 띠는 들국화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술’이라고 강조했다.

서산 지역 100년 술도가를 찾아 동행한 기자와 중·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인연을 확인한 전 대표가 건네주는 해미읍성 ‘옛날막걸리’와 피를 맑게 하고 독을 없애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서산들국화주’만큼이나 ‘뒤끝이 깨끗한 술도 없다’는 전 대표의 설명처럼 깊은 향기와 부드러운 맛으로 다가오는 오늘날 삶 속에서 모처럼 만나는 옛날의 정겨운 인정이 가슴 깊이에 파고들고 있음에랴. 
 

해미읍성주가 입구 전경.
해미읍성주가 입구 전경.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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