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덕산양조장, 100년 근대유산·100년 전통의 ‘술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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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덕산양조장, 100년 근대유산·100년 전통의 ‘술도가’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4.08.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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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5〉
일제 때인 1930년에 완공한 양조장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일제 때인 1930년에 완공한 양조장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1925년부터 3대가 대를 잇고, 이제 4대와 5대가 함께 명품 술 빚어
옛 양조장 분위기 물씬 발효실 항아리엔 ‘1935년 용몽제’ 글자 선명
등록문화재 58호, 일본식·서양식 트러스트구조 목조건물 양조장 전형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촬영, 허영만 만화가 ‘식객’ 모델

 

옛부터 농사가 잘되고 인심이 후덕하며 살기가 좋다고 해 ‘생거진천(生居鎭川)’ 이라고 불렸던 곳 충북 진천.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진천은 옛말에 ‘생거진천, 사후용인(生居鎭川, 死後龍仁)’이란 말이 있다. ‘살아생전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 묻힌다’는 풍수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전형적인 농촌, 시골마을인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초금로 712) 도로변에서 만나는 100년 세월의 근대문화유산인 100년 전통의 ‘술도가’인 ‘덕산양조장’ 입구 왼편에는 ‘등록문화재 제58호 덕산양조장’ 입간판과 함께 선돌에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약주치성 천감지응, 청향만가 일미동춘(藥酒致誠 天感地應, 淸香滿家 一味動春; 약주 빚기에 정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하고, 맑은술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면 그 좋은 맛이 봄을 일깨운다)’는 글귀다.

이곳에서 만나는 ‘덕산양조장’은 양조장이니 술 이야기는 빠질 수 없겠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품는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지키며, 옛부터 내려오는 전통 방식으로 술맛을 이어오는 양조장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정성스레 술을 빚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인 목조건물은 한눈에 봐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1925년부터 3대가 대를 이어 왔고, 이제 4대와 5대가 함께 어깨동무하며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명성과 전통적 제조비법으로 선돌에 쓰인 글귀처럼 맛 깊은 명품 술을 빚는 곳이 바로 진천의 ‘덕산양조장’이다. 술 항아리와 양조장 앞에 늘어선 측백나무와 향나무에서 100년 세월 빚고 있는 술이 정신이고 문화의 혼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등록유산 58이며 허영만의 식객 촬영지.
등록유산 58이며 허영만의 식객, KBS 1TV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촬영지.

■ 100년 세월 근대유산·전통주 ‘술도가’
충북 진천군 덕산읍의 덕산양조장은 지난 2003년 6월 30일 등록문화재 제58호로 등록됐다. 당시 현장조사를 나온 문화재위원들은 당시의 양조장 전형을 알 수 있는 단층 합각함석 지붕 목조건축물인데다 벽체는 수수깡을 엮어 왕겨로 채운 후 흙을 발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지붕상단 가운데엔 ‘소화 5년 경오구월초이일 미시상량목수 성조운’이란 글자가 또렷이 적혀 있다. 단층 건물이지만 3층 높이 규모로 일본식과 서양식 트러스트 구조를 합쳐놓았다. 

서쪽에 냇가가 흐르고 동쪽에 산이 자리해 바람 방향에 맞춰 건물 위치를 잡고 높은 지붕에 통풍 굴뚝까지 세웠다. 발효실은 단열을 위해 이중벽을 설치했고, 천장은 왕겨를 깔아 발효를 도왔으며 고희를 훌쩍 넘은 옹기 안에는 술이 부글부글 익고 있다. 특히 효모를 독 안에 넣어 발효시키는 주모실 환기구의 배기 통로가 굴뚝처럼 좁고 길게 나와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런가 하면 양조장의 중요한 위치에 통풍구가 만들어져 온도와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될 수 있도록 고안한 점이 특징적이다. 더욱이 옛 양조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발효실 항아리엔 ‘1935년 용몽제’란 음각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어 적잖은 연륜을 느끼게 해준다. 

이 건물은 옛날 양조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무 널판으로 마감해 건물은 통풍이 잘되도록 했다. 환기와 열 배출을 위해 천장 높은 곳에 창을 둔 것이나 온·습도 조절을 위해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두툼하게 채우고 흙을 바른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 과정에서 확인해 보니 왕겨는 전혀 상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1930년대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정문 앞 좌우에 늘어선 측백나무와 향나무들은 햇빛을 막아주면서 동시에 특유의 향으로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더 놀라운 것은 양조장 건물에 사용된 목재가 백두산의 삼나무와 전나무라는 사실이다. 당시 압록강 제재소에서 나무를 켠 뒤 수로를 이용해 두 달에 걸쳐 이곳 진천으로 운반해 왔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지금도 갈라짐이 하나 없이 생생하고 견고한 모습이어서 옛날의 기술이 놀랍기까지 하다. 정겨운 나무로 지은 목조 건물의 양조장은 외관에서부터 술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은 풍광이다. 지금은 까마득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술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으로 심부름을 다녔던 옛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나는 추억이다. 

이곳 덕산양조장은 KBS 1TV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촬영 장소로 드라마 속에 등장했다고 한다. 또 허영만 만화가의 ‘식객’의 모델이었다고도 한다. 이런 역사까지 담아 덕산양조장의 내부에는 아담한 전시실을 마련해 놨다. 100년 가까이 된 술독, 1970년대 사용했던 하얀 플라스틱 말통을 비롯해 깔때기, 체, 간이 증류기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수집해 놓은 각종 골동품으로 빼곡한 공간인 덕산양조장은 술 익는 마을 덕산 주민들의 오래된 자부심일 수밖에 없다. 

덕산양조장에서는 대통령상을 3회나 받은 진천 쌀을 사용하며 지하 150m 깊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연암반수, 인삼과 백복령, 구기자 등 12가지 약초와 누룩을 넣어 100% 순수 곡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수작업 위주의 전통 제조법으로 발효균의 섬세한 차이까지 세세히 신경을 쓰며 제조과정의 기본원칙을 지키며 전통주를 빚고 있다는 설명이다.

좋은 쌀과 맑고 깨끗한 물로 빚은 술은 9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거대한 항아리 속에서 발효되고 전통주조법에 따라 걸러지는 술이 덕산양조장의 약주요, 막걸리다. 옛부터 덕산약주는 많은 사람들의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는 평가를 받는 술이라고 한다. 전직 대통령들도 모내기할 때 내려와 “저번에 마셨던 약주(藥酒)를 달라”고 했을 만큼 그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난 술이었다고 회고한다.
 

■ 아들과 동행하며 5대째 전통주 맥 잇다
덕산양조장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덕산 한천교 건너편의 구말장터에서 술을 빚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9년에 이 지역에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양조장이 모두 쓸려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터를 잡게 됐다고 한다. 대홍수가 나자 1929년 지대가 높은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1930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막걸리를 빚어왔다고 한다. 100년 세월을 품고 있는 양조장이니 처마나 벽면, 양조장 앞에 늘어서 있는 항아리, 측백나무와 향나무에도 100년 세월의 주름살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백두산에서 전나무를 가져다가 지었다는 200평 남짓한 양조장 자체가 잘 익은 술 같은 느낌이다.

1925년 이장범 창업주를 시작으로 2대 이재철 대표에 이어 3대 이규행 대표까지 대를 이어 3째 전통주를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모든 기업이 경영에 굴곡이 있듯이 3대째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지난 2014년 이방희 대표가 인수, 4대째 대표를 맡아 양조장 운영을 정상화했다고 전한다. 

최고의 막걸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덕산막걸리는 긴 세월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덕산양조장은 지난 1974년 정부 방침에 따라 충북 5개 약주 공장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약주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세왕주조를 별도로 세웠다. 이후 덕산양조장은 막걸리만 생산하다가 1990년 진천의 막걸리 양조장이 통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0년 진천 합동 막걸리 양조장이 해체됐고, 세왕주조는 가까스로 2001년 12월 덕산양조장 면허를 돌려받아 막걸리 생산을 재개하게 됐지만 또 다른 경영위기를 맞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지난 2014년 창업주로부터 3대째 이어온 가업을 이방희 대표가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이방희 대표는 35년간 양조기계설비회사인 ‘한영ENG’를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양조장 운영을 본인이 직접 해보고 싶던 차에 소식을 듣고 인수해 운영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 이재승 상무는 대학에서 의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효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부모님이 운영하는 양조장의 전통 방식에 관심이 끌려 귀국해 몸담았다고 전한다.

지금은 함께 경영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이방희 대표의 둘째 아들인 이재승 상무가 양조장 사업에 동행하고 있다. 이 상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캐나다에서 공부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대학 졸업 후 그곳에서 병원에 근무하다 귀국해 양조장에 합류한 이 상무가 5대째를 잇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들 부자는 우리 고유의 술맛을 구현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한다. 30년 넘게 양조설비업에서 쌓은 술 생산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통의 술맛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에 발효학에 관심이 많은 아들 이 상무와 함께 우리 고유의 전통 술맛 구현에 정성과 혼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방희 대표는 “잘되는 양조장은 술맛이 좌우한다”는 철학과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다면서 “4대, 5대 가업의 장인정신으로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한다.

현재 덕산양조장에서는 △덕산생막걸리 6% △덕산약주 11%를 비롯해 △차례주 11%와 다섯가지 약재를 넣은 △천년오자주 13% △장미추출액을 넣은 로즈앙(와인)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매출액은 25억 원 정도라고 귀띔한다.

전통방식 그대로 탁주와 약주만을 만들어오고 있는 ‘덕산양조장’은 분명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주의 맥을 잇는 술도가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세월에 밀려 사라졌던 전통의 막걸리 명가, 다른 막걸리 양조장들도 부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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