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 전통 청양대치주조, ‘칠갑산생막걸리·아빠의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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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년 전통 청양대치주조, ‘칠갑산생막걸리·아빠의청춘’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4.09.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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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6〉

 

대치주조 목간판.
대치주조 입구 간판.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간직한 ‘청양’은 제일의 청정지역
청양의 명물, 고추·칠갑산·표고버섯·구기자·콩과 술 익는 마을 ‘주정리’
 1911년부터 술 빚어온 ‘대치주조’의 ‘칠갑산 대치생막걸리·아빠의 청춘’
 전통적인 수제 방식을 고수, 전통 주류의 명맥 지키며 빚는 막걸리 맛

 

차령산맥의 큰 자락에 우뚝 솟아올라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간직한 ‘칠갑산(七甲山, 해발 561m)’을 품에 안고 있는 천혜의 복된 고장 ‘청양’의 역사는 마제석기를 중심으로 하는 무문토기 시대부터 시작된다.

칠갑산은 백제 시대에 신성시되고 숭앙의 대상이 됐던 산이라 한다. 칠갑산은 삼국시대의 시가 가운데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도솔가’에 ‘칠악산(漆嶽山)’으로 등장한다. 이후 백제 도읍이 부여로 옮겨지고 산천숭배사상으로 명산대천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국가의 큰 행사로 자리 잡으면서 ‘칠악산’의 이름을 ‘칠갑산(七甲山)’이라 부르고 있다.

칠갑산은 조선 시대에 청양과 정산의 경계를 형성했기 때문에, ‘해동지도’와 ‘여지도’, ‘1872년지방지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도에서 청양이나 정산의 경계부에 위치한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칠갑산은 “청양의 동쪽 15리에 위치하며 주맥은 천안으로부터 뻗어 나온 광덕산(光德山)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청양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은 비슷한 시기에 공원으로 지정된 다른 산들에 비해 교통이 좀 불편하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나무숲이 울창하다. 맑은 날, 칠갑산 정상에 오르면 공주의 계룡산과 서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 칠갑산은 일곱 곳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칠악산의 이름을 북두(北斗)의 일곱 성인인 칠성원군(七聖元君), 또는 칠성(七星)을 뜻하는 ‘칠(七)’자와 천지시운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으뜸이 되고, 십이간지의 첫 자인 ‘갑(甲)’자를 써서 ‘칠갑산(七甲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제 시대, 주요 제천행사를 칠갑산에서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울창한 숲,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고이 간직해 청양은 한국 제일의 청정지역이라 불릴 만큼 깨끗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지형 또한 분지 형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여러 농작물이 골고루 잘 자란다고 한다. 특히, 칠갑산 맑은 이슬을 먹고 자라는 구기자는 전국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표고버섯은 충남지역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청양은 원래 콩이 더 유명하다고 한다.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 노래 첫 구절에 “콩밭 매는 아낙네”가 등장할 정도로 칠갑산 주변 마을은 콩 농사를 많이 짓고 살았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은 이 콩과 구기자, 밤, 쌀, 맥문동 등으로 빚은 막걸리를 인력거에 싣고 시장과 다른 마을에 내다 팔거나, 술통을 들고 막걸리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탁주를 팔아가며 생계를 잇고,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는 자부심을 자랑한다.
 

대치주조양조장 전경. 사진 왼쪽 뒤로 옛 장조장 건물이 보인다.
대치주조양조장 전경. 사진 왼쪽 뒤로 옛 장조장 건물이 보인다.

■ 주정리, 술 익는 마을의 주막거리
이러한 연유로 충남 청양의 명물로는 고추, 칠갑산, 표고버섯, 구기자, 콩, 맥문동과 함께 주정리(酒亭里; 술 익는 마을)를 꼽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대치면 주정리’는 마을 대부분이 ‘술을 빚었던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주정리라는 마을 이름은 조선 시대 큰 고개의 주막 마을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이름도 술 익는 마을 주막거리의 ‘주동(酒洞)’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이름을 따 ‘주정리’라고 불리고 있다. 대치주조는 조선 시대 ‘주동’ 주막 마을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큰 주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청양 대치면의 ‘주정리(酒亭里)’는 본래 청양군 동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량동, 주동, 독정리, 탄동 일부를 병합해 ‘주동’과 ‘독정’의 이름을 따서 ‘주정리’라 해 대치면에 편입됐으며, 대치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고랑골, 독정이, 망덕산, 매봉, 술골, 원안동, 청룡골, 용무골 등이 있다.

과거 조선 시대 이전부터 주정리(酒亭里)는 청양 읍내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한티(대치)의 길목에 위치해 고개를 오르내리던 사람들에게 유명한 주막거리였다고 전해진다. 고개를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 오가던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소식을 교류하던 길목으로 주막거리는 이러한 역할을 했던 장소였던 만큼 양조장과 술을 빚는 일은 어쩌면 필수품목이었던 셈이다.

술을 잘 빚는 동네라는 소문이 나서 마을 이름도 ‘주동(酒洞)’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 주정리와 탄정리 일대는 당진 면천에서 두견주를 빚던 복씨 가문의 후예들이 전국 최대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인근에는 향정과 독정 등 정자도 많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주동과 독정을 합해 주정리라 부르게 됐다’고 ‘청양군지’에 기록하고 있다. 한티고개 가는 길의 주막거리에서 1910년경 자연스럽게 양조장이 설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치막걸리는 이때부터 유명세를 타면서 제조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1930년대 이후 양조장 시설을 제대로 갖추면서 대치면 지역 전체에 술을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멀리 40리 밖 북쪽 끝 상갑리에서 남쪽 끝 개곡리에 이르기까지 면내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의 주막에는 간단한 생필품과 더불어 막걸리를 파는 주막이 있었고, ‘대치양조장’은 매일 막걸리를 생산해서 이곳 마을들에 막걸리를 공급했다는 설명이다.

농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칠갑산 자락 골골마다 1960~1970년대 동네 모내기와 바심(추수) 때 농사꾼의 타는 목을 달래고, 동네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고향 술 인심의 시작이 ‘대치막걸리’였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뜬 터에 칠갑호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큰 마을(원동, 승주동 등)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양조장과 담 하나를 두고 인접해 있는 수정초등학교와 우체국, 농협을 비롯한 지역의 중심 영향력이 급작스럽게 축소되며, 지역이 점차 축소되고 와해되는 위기를 겪게 됐지만 말이다. 결국 주정리의 면천복씨와 광대리의 경주최씨가 번갈아 운영하며 명성이 자자했던 대치막걸리는 산업화·도시화, 면 지역의 쇠락과 더불어 문을 닫게 됐지만, 지금은 권순철·순오 젊은 형제가 옛 역사와 전통,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대치주조의 술 항아리에는 소화(昭和, 1926년)에 제작된 일본의 연호가 보인다.
대치주조의 술 항아리에는 소화(昭和, 1926년)에 제작된 일본의 연호가 보인다.

■ 2세 브랜드 ‘아빠의청춘’ 생막걸리 인기
청양 대치면 주정리 마을의 지금 자리(청양 대치면 주정리 527)에서 막걸리로 전통과 역사를 이어온 대치양조장은 올해까지 113년째 술을 빚고 있다. 강산이 무려 11번이 바뀌는 동안 주막의 주인도 바뀌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기술과 방식, 모습 그리고 술맛만큼은 113년 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야말로 청양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11년부터 술을 빚어온 이곳 대치양조장은 역사와 전통을 이으면서 대치주조와 해랑달주식회사 두 개의 사업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두 양조장을 통틀어 ‘대치주조(권순철·권순오 공동대표)’라 하는데, 대치주조는 자연발효 기술로 한평생 손수 막걸리만 빚어온 막걸리 장인으로 널리 알려진 권경남 회장이 부인 김은옥 여사와 함께 양조장을 운영해왔다. 이렇게 술을 빚는 기술과 정신을 두 형제(권순철·순오)가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도 옛날 전통방식 그대로 정성을 다해 술을 빚고 있는데,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만들자’는 것이 두 아들의 신념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막걸리 생산업체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인해,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제2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이에 전국적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막걸리가 출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충남 청양에서 전통 방법으로 막걸리를 제조해 ‘칠갑산 대치 생(生)막걸리’와 ‘아빠의 청춘’ 등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대치주조’가 막걸리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젊은 형제는 “소주가 국민주로 인식되는 요즘과 달리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면서 “우리 삶의 희노애락과 함께 해왔던 막걸리를 제대로 만들고자 대치양조장에서는 오로지 전통의 방식이 들어간 제조과정으로 정성껏 막걸리를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업을 이어 전통 주류의 명맥을 지키고, 발전을 선도하는 이들 삼십대 형제 청년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돋보이는 이유다.

아버지 권경남 회장은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치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빚은 것이 20여 년 전부터라고 한다. 막걸리 빚는 일은 직접 몸으로 하다 보니 엄청 힘들기 때문에 연세가 많아지고 하니까 아들 형제에게 양조장을 이어받아서 막걸리를 빚어 보라고 권유한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막걸리 만드는 일을 보고 자란 형제는 가업을 잇는 일에 흔쾌히 동생과 뜻을 같이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동생 권순오 대표는 지역의 행사나 공연 등에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아빠의 청춘’ 브랜드를 개발한 것은 물론 ‘칠갑산 대치생막걸리’ 알리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두 형제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전통적인 수제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좀 더 대중적인 막걸리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생막걸리가 건강에 좋지만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맛으로 발전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는 절절한 희망 때문이다.

대치양조장의 막걸리는 ‘칠갑산 대치생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를 찾아가는데 그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막걸리 고유의 쌉싸래한 맛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인데, 쌀과 밀가루의 적정한 황금비율을 찾아낸 결과라고 설명한다. 청양의 대표 수제 양조장 대치주조가 수제 생막걸리 ‘아빠의 청춘’을 빚어 내면서 아빠의 청춘이 파릇파릇 경쾌한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다.
 

청양 대치주조에서 생산되는 아빠의 청춘 생막걸리와 칠갑산 대치생막걸리.
청양 대치주조에서 생산되는 아빠의 청춘 생막걸리와 칠갑산 대치생막걸리.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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