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주 중에 가장 오래된 ‘앉은뱅이’술 ‘한산소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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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주 중에 가장 오래된 ‘앉은뱅이’술 ‘한산소곡주’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4.09.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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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7〉
서천 한산의 무형문화재복합전수관에 전시된 한산소곡주.

 ‘한산소곡주’ 1500년 전통 현존하는 한국의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
서천 한산지역 주민, 1300여 세대 중 250여 가구가 소곡주 빚고 있어
무형문화재 3호 명인 김영신, 며느리 우희열·손자 나장연 가업을 잇다
서천 한산소곡주 양조장, 1500년의 숨결로 우리 술을 빚기 3대째 이어

 

백제의 1500년 전통이 깃든 ‘한산소곡주’는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따르면 다안왕(多晏王) 11년(318) 흉작에 가양주 제조를 전면 금지했고, 서동요로 유명한 ‘무왕 37년(635) 3월에 조정 신하들과 부여 백마강 고란사 부근에서 소곡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백제가 멸망한 이후 한을 달래기 위해 한산 건지산 주류성에서 백제 유민들이 소곡주를 마셨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렇듯 소곡주는 백제 무왕과 의자왕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다. 따라서 ‘소곡주’의 역사는 1500여 년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전통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술인 셈이다.

소곡주는 ‘앉은뱅이술’로 더 유명하다. 조선 시대 때 과거 길에 오른 선비가 한산 지방의 어느 주막에 들러서 목을 축일 겸 술 한 잔을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술이 너무나 달고 맛나기에 한두 잔 더 마시고 일어나니, 다리를 펴면 넘어지고, 또 일어서려 하면 넘어지고, 결국 과거시험도 못 보게 됐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바로 그 술이 ‘한산소곡주’다.

서천군 한산면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백제부흥운동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이다. 한산면의 건지산성(乾芝山城)은 그 흔적 중 일부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 왕실에서 마시던 술이자 백제 마지막 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산으로 들어가 통곡하며 마셨다는 소곡주가 서천 한산지역에서 유명하고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산소곡주는 1800년대 모시 거래가 흥했던 한산 오일장을 중심으로 보부상과 인근 금강 포구를 거쳐 전국으로 퍼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따라서 조선 시대 사람들이 백제의 술로 여겼다고 전해지는 이유다.

한산의 옛 명칭은 마산(馬山), 마읍(馬邑), 한주(韓州) 등이었다. 백제는 이 지역에 마산현을 설치해 다스렸고, 통일신라 시대에 마산현은 가림군(嘉林郡)의 속현이 됐다가 고려 시대에 한산(韓山) 또는 한주(韓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산현은 고려 시대에도 가림군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한산군(韓山郡)으로 승격됐다. 현 서천군 일대의 행정구역은 한산, 서천, 비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조선총독부가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 서천군으로 통합됐다.

서천군 한산면은 지난해 말 기준 1393세대, 2383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지역에서 250여 가구가 소곡주를 빚고 있다고 한다. 전국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수치에 견줄만한 곳은 찾기 어렵다. 전통주는 대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소수의 전승자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는 반면 소곡주는 전승자에게서는 물론 한집 너머 한집에서 빚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5년 서천문화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소곡주의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는 한산면 단상리에서는 전체 60가구 중 30가구가 소곡주를 빚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예부터 단상리, 호암리, 지현리는 소곡주로 유명한 마을로 꼽힌다. 이렇듯 한산면 주민들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굽히지 않고 ‘앉은뱅이술’로 유명한 전통주 ‘소곡주’의 전통과 1500여 년의 역사를 지켜왔다. 지금의 한산소곡주는 이제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전통주)으로 명실공히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품주로 꼽힌다.
 

서천 한산의 무형문화재복합전수관 전경.
서천 한산의 무형문화재복합전수관 전경.

■ 1500년 전통의 숨결로 빚은 우리 술
한산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을 가리킨다. 한산모시로 유명하고, 목은 이색과 월남 이상재의 고향이다. 한산면의 진산은 건지산인데, 건지산 둘레로 한산의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그 평야에서 나는 쌀로 빚은 술이 1500년 전통의 숨결로 빚은 우리 술 ‘한산 소곡주’다. 누룩을 적게 써서 빚는다 해 소곡주라고 불린다.

소곡주는 조선 시대 문헌에서 삼해주, 과하주와 더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명주다. 17세기 중엽 경북 영양에 살던 안동 장씨가 지은 ‘음식디미방(1670년 경)’에 등장하는 걸 보면 경상도에서도 빚었는데, 어떤 경유인지 현재는 한산에서만 전해오고 있다. 소곡주 제조법은 우리나라 최초의 식품서인 ‘산가요록(山家要綠; 1450년경)’을 비롯해 ‘수운잡방(需雲雜方;1500년대 초)’과 ‘산림경제(山林經濟;1715)’, ‘역주방문(歷酒方文;1700년대 말)’, ‘규합총서(閨閤叢書;1809)’,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827)’ 등 39개 문헌에 나타난다.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한산 소곡주를 조선의 명주로 꼽기도 했다.

일명 ‘앉은뱅이 술’로도 유명한 소곡주는 1800년대 모시 거래가 흥했던 한산 오일장을 중심으로 보부상과 인근 금강 포구를 거쳐 전국으로 퍼졌다. 또 조선 시대 중기 사람들은 백제의 술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쌀과 물 등의 원료로 100일간 빚는 소곡주(도수 18%)는 단맛이 강한 게 특징인데, 이 탓에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가 어느새 취해서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는 구전도 전해지고 있다.

찹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들국화, 메주콩, 홍고추 등의 재료로 자연발효기법으로 빚어 100일 동안 익혀서 마시는 술, 한산소곡주는 색깔은 연한 미색을 띄고 있으며 단맛이 돌면서 끈끈하고 진한 향을 풍긴다. 맛은 잡미 산미와 곡자 냄새가 전혀 없고 부드러운 맛이 나며 주도는 18도 정도이다. 특히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하고 독특한 향이 매력적이라는 평이다. 특히 혈압강화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에 좋은 술로도 알려져 있다.

서천의 한산면은 ‘대한민국 술기행 1번지’라는 칭호를 붙일 만하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란 시구처럼 술 체험 마을로 ‘동자북마을’이 선정돼 소곡주 관광화에 나서고 있다. 한산모시관 건너편에 자리 잡은 한산 소곡주 제조장에는 소곡주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한산 소곡주의 매력은 한산면 주민들이 대부분 소곡주를 빚을 줄 안다는 것이다. 한 고을 사람들이 특정한 술의 제조법을 두루 알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홍주’로 유명한 진도 정도가 있을까.

한산면에서도 술맛 좋기로 유명한 동네가 여럿 있는데, 건지산 기슭인 호암리는 1979년 소곡주로 충남무형문화재에 지정된 김영신 씨가 살던 동네다. 지금은 그의 며느리 우희열 명인이 지현리로 나와 양조장을 차려 술(소곡주)을 빚고 있다. 한산면 단상리는 우물물이 좋아 소곡주 맛이 좋다고 소문난 동네라고 전해지고 있다. 
 

서천 ‘한산소곡주 양조장’ 전경.
서천 ‘한산소곡주 양조장’ 전경.

■ 무형문화재·명인이 빚는 ‘한산소곡주’
한산 소곡주는 1973년 7월 3일에서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돼 한산면 호암리의 고 김영신(1916~1997) 할머니가 소곡주 기능보유자로 인정되면서 처음 양성화됐다. 김영신 명인이 1997년 6월 81세로 작고한 이후에는 그의 며느리 우희열 명인이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승계됐고, 전통주 명인 제19호로 지정되면서 뒤를 이어 오늘날까지 한산소곡주 빚기의 전통과 역사를 잇고 있다. 한산소곡주는 현재에 이르러 연간 약 100억 원어치가 팔려나간다는 설명이다.

소곡주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실제로 전통주가 집에서 담그는 술에서 벗어나 정부로부터 정식 양조 면허를 받은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인 1990년이었다. 한산 소곡주는 가내 소비용으로 빚다가 1990년 4월에 면허를 얻어 ‘한산 소곡주’라는 명칭으로 본격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산 소곡주 양조는 가업이 돼 김영신~우희열~나장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양조장도 지현리로 옮겼고 소곡주 전시관도 갖추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전통주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문배주, 이강주 등이 각광을 받았지만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의 유통망에 소곡주가 끼기는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시어머니에게 소곡주 제조방법을 배운 우희열 명인은 “27살 때 부여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故 김영신,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호 한산소곡주 술 담그기 보유자, 1997년 작고)께 소곡주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시어머니께선 1년에 한 번씩 술을 만드셨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거죠. 온화한 성격의 시어머니께 크게 꾸중을 들었던 적은 없지만 소곡주가 정성 없이는 제맛을 내지 못하는 술이어서 쉽게 배우지는 못했죠”라면서 “지금의 명성과는 달리 당시에는 소곡주는 쉬쉬하며 만드는 술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시어머니께선 가양주(家釀酒)로 소곡주를 빚으셨어요. 다른 집은 술을 만들 때마다 달거나 신맛이 나는 반면, 시어머니께서는 언제나 달고 감칠 맛이 나는 소곡주를 만드셨죠. 가을에 벼를 수확하면 몰래 방아를 찧어 술을 담그곤 하셨어요”라고 말한다. 

당시 소곡주는 허가 없이는 빚지 못하는 밀주(密酒)였다. 쌀이 귀해 수시로 금주령이 내려졌고, 해방 이후에도 주세법에 밀려 계속 밀주 취급을 받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아버님은 술을 즐기지 않은 반면 시어머니는 수시로 소곡주를 즐기셨는데, 시아버님은 예순도 못 채우고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오히려 여든둘까지 장수하셨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밀주를 담그다 그 술맛이 소문난 김영신 할머니는 1979년 7월,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호 한산소곡주 술 담그기 보유자’로 지정됐고, 1990년에는 ‘전통식품 명인 제19호’로 지정받아 주류제조 면허를 취득하면서 소곡주는 드디어 밀주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왔다. 

1997년 시어머니(김영신)가 작고한 후에는 우희열 명인이 무형문화재와 전통식품 명인을 고스란히 승계받았고, 지금은 우 명인의 아들인 나장연 대표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지난 2014년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서천 한산의 소곡주 양조장은 오늘도 1500년의 숨결로 우리 술을 빚고 있다. 또한 서천의 가을은 대하와 전어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고, 늦가을부터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와 겨울 철새의 군무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소곡주 한잔이 맛난 안주와 기다리고 있는 고장이 서천의 한산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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