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 건립 105년째 술을 빚고 있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목도양조장’
자료관, 자료들 잘 보존돼 근대기 양조산업의 변천 과정 살펴볼 수 있어
4대째 가업 이어… 1939년 제2회 조선주류감평회에서 약주부분 1등 수상
약주 ‘느티’ 1종·탁주 3종류 목도생막걸리·무감미 ‘괴산백주’ 등 술 생산
충북 괴산은 국토의 정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는 가치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는 지역이다. 전국 최초로 ‘유기농업군’을 선포한 곳이며, 산림면적이 76%를 차지하고 있는 괴산 전역에는 ‘자연특별시 괴산’이라는 문구와 간판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것처럼 자연 친화적 도시다. 친환경 유기농업의 준고랭지 지역으로 청정환경과 좋은 토양에서 괴산 청결고추와 배추, 찰옥수수, 감자 등 우수한 농산물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수려한 산세와 험준한 소백산맥이 남동부를 가로막고 있으며, 조령산(鳥嶺山; 1017m)·군자산(君子山; 948m)·백화산(白華山; 1,064m) 등 소백산맥의 높고 험준한 산들이 형성돼 있다. 중앙부에는 대산(647m)·배미산(557m)·성불산(成佛山; 520m) 등이 솟아 있어 완만한 경사의 구릉성 산지가 발달한 곳이다. 속리산국립공원의 절반가량도 괴산군에 속해 있다.
괴산군은 조선 시대에 괴산군·연풍현·청안현 등 3개의 독립 군현이 있었던 곳으로 역사 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신라 때에 잉근내현(仍斤內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757년에 괴양군(槐壤郡)으로 고쳤다가 940년(고려 태조 23)에 괴주(槐州)가 됐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03년에 지괴주사(知槐州事)로 승격됐고 1456년에 괴산군으로 고쳤다. 청주의 영역이었던 청천면 화양계곡에는 조선 후기에 만동묘·화양서원 등이 건립돼 유림의 집결지로 이름을 떨쳤던 곳이다. 1896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충청북도에 속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괴산군과 연풍군 일원, 청안군의 일부가 합병돼 현재의 행정구역을 형성했다. 교통의 요지인 증평면이 1949년에 읍으로 승격했고, 괴산면이 1979년 읍으로 승격했다. 1990년 증평읍과 도안면이 증평출장소로 분리됐고, 2003년 증평군으로 승격됐다. 지금의 괴산군의 행정구역은 1읍(괴산읍) 10면으로 이뤄져 있으며, 올해 9월 말 현재 2만 1100여 세대에 인구 3만 6000여 명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1만 5000명에 이르러 40%가 넘는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는 도시다.
괴산은 예로부터 문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한 해 100만 명 이상이 찾는 화양구곡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명소 등이 잘 보존돼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 1920년 건립 105년째 술 빚는 등록문화재
충북 괴산의 명소 중에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에 가면 1920년에 건립돼 올해로 105년째 술을 빚고 있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목도양조장’이 100여 년 세월을 품은 역사와 전통, 막걸리 특유의 향기와 추억이 스며있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은 어디일까? 100년 세월의 역사를 지닌 몇 안 되는 양조장 가운데 하나가 충북 괴산에 있는 ‘목도양조장’이다. 100여 년 격동했던 시대의 상을 그대로 담은 개화기 전후의 근대문화가 그대로 녹아든 건축물이다. 충북도는 지난 2022년 8월 ‘괴산 목도양조장과 부속건물 5동’을 충청북도 등록문화재 제2호로 등록 고시했다.
‘괴산 목도 양조장과 부속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양조장으로 원형과 관련 설비, 도구 등의 자료들이 잘 보존돼 근대기 양조산업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현재도 양조장으로 운영되면서 전통막걸리 고유의 맛을 대대로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양조 시설로는 술밥을 만드는 증미장의 환기창, 술의 발효를 위한 사입실과 누룩 배양을 위한 종국실에 왕겨를 채워 보온을 위한 벽체를 구성했고, 사무실과 숙직실 등은 양조장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양조장 이외의 부속 건물은 살림집으로 사용한 한옥주택(1969년 건립)과 판매창고(1959년 건립), 본관(1939년 건립) 등도 근대기 양조장 관련 시설로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목도 양조장과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괴산 목도 양조장과 부속건물’의 문화재 등록은 지난 2021년 6월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의미가 더 크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충북 괴산의 ‘100년’ 명소인 ‘목도양조장’은 故 유증수 대표가 1920년 지어진 현재의 양조장을 인수해 1936년 괴산주조주식회사를 창립한 이후로 줄곧 술을 빚어온 양조장이다. 지금은 초대사장의 손녀인 유기옥 대표와 그의 남편(이석일)이 술을 빚어내고 있다.
1920년 일본인(쓰찌모토준조·土本準造)으로부터 출발한 목도양조장은 1939년 괴산주조주식회사 목도공장 때 한국인 경영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1939년에는 제2회 조선주류감평회에서 약주부분 1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목도양조장의 창업주인 유증수 대표는 이미 1931년 괴산읍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후 첫째아들인 유종희 대표가 물려받았지만 일찍이 세상을 떠나 실질적으로 40여 년 가까이 며느리인 이순근 여사가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창업주 손녀인 유기옥 대표가 맡아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양조장이다. 유기옥 대표와 함께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로 양조장을 이끌고 있다. 의사인 남편은 주중에는 경기도 분당에서 일하고, 금요일 진료를 마치면 내려와 주말에는 양조장 일을 한다는 설명이다. 아들 또한 4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양조장 일에 동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부부가 본격적으로 목도양조장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13년이었다. 유 대표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스며있는 양조장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가업을 이어 받기로 결심했다”고 밝히고 “지난 2012년 강경, 군산, 논산으로 답사를 간 적이 있다. 군산의 적산가옥 등을 보면서 우리 양조장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이부자리 하나 달랑 들고 괴산으로 내려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무감미로 만든 술 약주1종·탁주3종류 출시
목도양조장에서 나오는 막걸리는 달지 않은 맛이 특징적이다. 합성감미료를 최소한으로 넣어 옛날 맛 그대로를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 특유의 맛과 텁텁, 칼칼, 쓴맛, 신맛이 잘 어울리는 막걸리로 정평이 나 있다. 어린 시절 논두렁에서 홀짝이던 그런 막걸리를 제조하는 이유가 이들 부부가 지금까지도 빚어내는 막걸리다. 합성감미료를 확 줄이니 귀향 후 초기엔 술맛이 달라졌다고 주민들에게 타박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고향을 지키는 ‘귀한 술’로 인정받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 사람들은 단맛에 길들어 있어 바꾸기 쉽지 않지만 우리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막걸리를 한 번 마셔보면 단맛이 빠지고 난 막걸리의 근본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다.
막걸리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재료는 쌀이나 밀, 찹쌀 등을 사용한다. 술 항아리에 고두밥을 넣고 전통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어도 늘 그 맛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막걸리는 열린 술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인공적인 감미료나 인위적인 보탬을 하면 안 되는 것이 그 이유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그대로 막걸리가 발효되길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목도양조장 주변은 가장 번화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목도양조장의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창고는 일종의 판매장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술안주로 고소한 빈대떡이 노릇하게 부쳐지던 시절, 매일 1톤이 넘는 막걸리가 팔려나갔는데, 술을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게 호황을 누렸던 양조장도 1990년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목도시장도 문을 닫았고, 그렇게 목도양조장도 맥이 끊겼다.
유 대표 부부가 다시 양조장을 열면서 먼저 한 일은 양조장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들어와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건물과 술 항아리, 그리고 자료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쌀을 찌고 누룩과 주모를 만들며 술을 빚었던 방과 마당, 사랑채, 골방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목도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은 4종류로 약주 1종류와 탁주 3종류인데, 2021년 초에 약주 ‘느티’를 출시했다. 무감미로 만든 술을 출시한 게 지난 2020년이었고, 2021년에는 약주까지 선보였다. 작은 개인 양조장에서 무감미 약주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한다. 다른 대형 양조장에서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조장을 열심히 운영한다고 수익으로 환산되지는 않는데,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실상은 양조장 때문에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지금의 막걸리 양조장의 현실이 느낌으로도 다가오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좋은 술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옛 선비인 송강 정철과 단원 김홍도 등 술독에 빠진 명인들이 후세에 남긴 일화에는 해학이 술잔 넘치듯 담겨 있다. 송강 정철은 ‘장진주사’에서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곳것거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라며 술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술, 막걸리 한잔, 언제나 우리의 생활 속에 깃든 술 이야기를 풀어내 보면 설날 차례 뒤 마셨던 세주, 정월 대보름 식전에 석 잔을 마셨던 귀밝이술, 삼월삼짇날 진달래 화전을 안주 삼아 즐겼던 두견주, 단오날 마셨던 창포주 등 세시와 함께 한 술 이야기가 입에 쩍쩍 눌어붙으며 진한 향을 마신다. 머슴 생일이라고도 불린 백중날 막걸리는 ‘호미씻이’라고 불렸다. 일에 지친 머슴들이 이날만은 호미를 씻고 쉬라는 뜻일 것이기에. 지금 목도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와 약주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좋은 술 곁으로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있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