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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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3.08.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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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 이야기⑫
▲ 금북정맥 마지막 구간인 지령산 전경.

금북정맥 끝자락 서해바다 맞닿은 안흥포구 지령산

안흥성 죽국사신 영접위해 축성?
서해 안흥항 오징어잡이로 활기
태안반도 해수욕장 관광객 몰려
 

금북정맥의 끝자락인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위치한 지령산(206m)은 산림이 울창한 녹음을 자랑하는 천혜의 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안흥포구와 맞닿은 서해 바다를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태안절경의 하나로 꼽히는 자랑할 만한 곳이다. 비옥한 땅, 기름진 갯벌, 넓은 어장, 천리 해변에 맞닿은 다수의 해수욕장을 지닌 태안은 과거 서산에 속해 있던 연유로 서산과 함께 국내 단일 지역 가운데 특산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농산물로는 육쪽마늘과 생강, 간척지 쌀, 양란 등이 유명하다. 바다와 갯벌에서는 굴, 낙지, 꽃게, 대하, 바지락, 실치, 김, 소금 등이 많이 난다. 실치는 일제시대 이곳에서 처음 뱅어포로 상품화됐다고 한다.

현재 안흥포구 지령산 정상 부근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령산 허리품에는 70년여 역사의 안흥초등학교를 가슴에 안고 있으며, 산 아래로는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지령산과 마주하고 있는 무명산(143m) 자락은 골프장 공사로 인해 황토 흙을 드러내며 깎여나갔다. 지령산 산자락 밑으로 서해바다 안흥포구 사이에는 한화리조트가 태안국립공원이 내려다보이는 23만1406㎡(70만평)의 부지에 들어서 있다. 지난 2009년 4000억 원을 들여 골프장(면적 약 42만평, 회원제 18홀, 대중제 9홀)에 27홀 규모의 ‘골든베이 골프&리조트’를 조성, 골프텔을 지은 뒤 콘도미니엄 400실과 워터파크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금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지령산이 있는 안흥포구에는 태안 8경 중 제2경으로 지정된 안흥성(안흥진성)이 안흥항의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조 제17대 효종 6년(1655)에 축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서해안 해안가의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기도 했다. 안흥성은 바깥쪽에 신진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곳이 파도를 막아주어 배가 정박하기 용이하므로 항구로서는 최적이었다. 그래서 군사적 요충지로 낙점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성곽은 조선 효종 때 경기도 선비인 김석견이 성을 쌓자고 주창했다 한다. 그래서 당시에 효종 임금은 물론 대신들도 성을 쌓아 군대를 주둔시키는 군영으로 삼자고 하여 축성을 시작했다 한다. 당시에만 해도 기계화 장비가 없었으므로 근처 19개 군민을 동원하여 10여 년간 성을 쌓았다고 한다. 안흥성은 이후 240년간 내려오다 조선조의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 때 성내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고, 이에 따라 성곽은 자연히 폐성되고 말았다. 지금도 성곽과 동서남북의 성문이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 충남도지정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안흥성 전경.
안흥성은 석성(石城)으로 지난 1979년 7월 3일 충청남도지정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다.
“안흥성의 유래를 살펴보면 국방 차원에서 축성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문화재 전문위원들이나 사료를 검토해 본 결과 국방 차원이 아닌 사신 접대 차원에서 쌓은 성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안흥성 문화관광해설사와 안흥성 안에 사는 주민들은 설명한다. 특이한 것은 지금도 안흥성 안에는 가가호호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곳도 마을인지라 여느 마을처럼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다. 하지만 문화관광해설사나 주민들의 말처럼 안흥성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됐는지, 아니면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거나 접대하기 위해 축조됐는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다.

다만 안흥성 앞에 세워진 간판과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배부되는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1665년(조선 효종 6년)에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1500m이다. 본래는 안흥진성(安興鎭城)이라고 했는데,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배치되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으며, 후에 안흥성으로 불리었다. 성벽의 돌에는 성의 축조를 담당한 고을의 석공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인근의 19개 군민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대시설로는 4개의 성문이 있다. 동문은 수성루(壽城樓), 서문은 수홍루(垂虹樓), 남문은 복파루(伏波樓), 북문은 감성루(坎城樓)라고 하였다. 이 성은 1894년 동학혁명(東學革命) 때에 성안의 건물이 일부가 불에 탔다. 현재는 출입구만 있고, 성안에는 20여 호의 민가와 태국사(泰國寺) 등이 있다.”는 기록이 안흥성의 현재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 태안의 중심어항인 신진항.
특히 최근에 주목할 점은 서해바다에서도 오징어가 잡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안의 중심 어항인 신진항은 안흥항의 외곽 섬 신진도에 위치한 포구로 안흥외항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제시대 당나라와 무역항인 유서 깊은 포구다. 신진도와 내륙을 연결하는 신진대교가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진항 어판장 상인들에 의하면 해마다 7월 중순부터 서해 근해에서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신진항과 안흥항은 입·출항 어선들과 상인들은 몰론 관광객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주말에는 낚싯배와 유람선도 붐빈다.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동해안의 냉수대 영향으로 서해안에 어장이 형성되면서 동해와 남해에서 활동하던 오징어잡이 배들이 서해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오징어는 회, 찜, 볶음, 순대, 냉채, 불고기 등으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산 오징어를 통째로 찜이나 구이는 물론 산 오징어를 통구이로 먹는 맛은 바닷가의 별미 중 별미로 꼽히고 있다.

어판장 상인회장의 말에 의하면 특히 태안앞바다, 서해에서 잡히는 오징어는 쫄깃쫄깃하고 맛이 좋은데다 수도권까지 2시간 이내면 운송이 가능하고 신선도까지 살아 있어 산지에서 뿐만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 수산물 도매상들로부터 인기라고 전한다. 특히 오징어 어획시기와 태안반도 해수욕장철과 맞물려 태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라고 전했다. 태안군청 관계자도 “해마다 성어기를 맞아 전국의 선박들이 찾아와 척당 2000여 마리 가량의 오징어를 잡아 지역의 수협을 통해 위판하고 있다”며 “태안이 오징어 집산지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흥면의 금북정맥도 개발과 훼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역이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고 각종 위락시설들이 들어서는 등 서해안의 관광명소로 부상하면서 곳곳의 산이 파헤쳐지고 있다.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지령산으로 향하는 603번 국도의 고개고개마다 2~3곳의 정맥 능선이 부지 조성을 위해 파헤쳐지거나 절개된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금북정맥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선 금북정맥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무분별한 훼손 행위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백두대간 보호법과 같은 정맥보호 조례의 제정 등 금북정맥의 보호를 위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옛 산줄기 금북정맥을 새롭게 인식하고 보호하는 주인의식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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