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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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 홍주일보
  • 승인 2014.02.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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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7>

 

뼛속까지 차가운 감옥의 겨울이라고 한다. 그 겨울은 차갑고 어둡기만 했었다는 필설을 토해낸 어느 시인의 글을 희미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지 않을 만큼의 온도만 유지하는 모진 추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거침없이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꾸는 꿈을 잿빛이라고 표현했다. 시적인 표현의 진수에 글줄이라도 쓴다는 사람도 은유적 비유법 묘미에 고개를 끄덕이지 아니할 수 없으리. 시인이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雪夜(설야)
감옥 밖 눈의 바다 무쇠처럼 차가운 밤
철창은 여전히도 잠기어 열리지 않네
깊은 밤 쇳소리만이 어디서 들려오나.

四山圍獄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사산위옥설여해 금한여철몽여회
鐵窓猶有鎖不得 夜聞鐵聲何處來
철창유유쇄불득 야문철성하처래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雪夜)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방 산은 감옥을 두르고, 내린 눈은 바다 같은데 /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꾸는 꿈은 잿빛이어라 // 철창은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는데 /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내린 눈은 바다 같고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철창문은 잠기었고 쇠소리만 들려오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눈 오는 밤인데도]로 번역된다. 동짓달 기나 긴 밤에 눈이 소복이 내렸던 모양이다. 감옥은 춥고, 인기척도 없어서 스산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밤이었다.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고 인생의 회환이 스쳤을 것이다. 출옥해서 또 잡혀서 감옥에 들어올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언가를 더 하리라 했으리. 조국 독립을 위해 무언가는 꼭 더 하리라. 백성들이 읽을 수 있는 읽을거리를 반드시 써내리라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사방 산은 감옥 한 바퀴 두르고, 밤새워 내렸던 눈은 이 큰 바다와 같이 이루었는데, 무쇠처럼 차가운 이불 속에서 꾸었던 꿈은 한낱 한 줌 잿빛처럼 지나가는 한 바탕의 소용돌이였음을 회환하고 있다. 멋진 시상을 일구어 냈다. 감옥의 벽을 사방 산으로, 밤새 내린 눈이 바다를 이루었다고 표현하면서, 찬 이불을 무쇠라고 했고 선잠으로 꾸었던 꿈은 잿빛처럼 스쳐 지났다고 했던 표현들이다.
화자는 잠긴 철창은 자물쇠를 풀 기미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잠기어 열리지 않고 있는데 [깊은 밤 쇳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가]라는 기다리는 심정을 노정했다. 화자는 갖가지 생각에 사로 잡인 나머지 차가운 밤을 지새우면서 보내는 가운데 쩌렁쩌렁 울리는 쇳소리 창문이 ‘행여나’를 기대했을 것이니.

<한자와 어구>
四山: 사방산. 圍獄: 옥으로 둘러싸다. 雪: 눈. 如海: 바다와 같다. 衾寒: 차가운 이불. 如鐵: 무쇠같다. 夢: 꿈. 如灰: 잿빛과 같다. // 鐵窓: 철창. 猶: 여전히. 有鎖: 잠기어 있다. 不得: 얻지 못하다. 열지 않다. 夜: 밤. 깊은 밤. 聞: 들리다. 鐵聲: 쇳소리. 何處: 어느 곳. 來: 오다. 들려오다.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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