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이 선(禪)에 들어와 그만 스러지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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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이 선(禪)에 들어와 그만 스러지고 마네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05.0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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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7>

 

현대인들은 오늘 일기예보를 접하면서 일정도 잡으면서 하루를 설계한다. 맑은 하늘이면 기분부터 상쾌하다.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사업도 잘 될 것 같고, 좋은 사람도 만날 것 같다. 그렇지만 날씨가 찌뿌둥하고 비가 올 것 같으면 왠지 어깨부터가 무겁다. 날씨 정도에 따라서 하루의 기분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다. 시인은 꽃내음이 무선(無禪)에 들어와 그냥 스러지고 만다는 시상과 함께 만약 선(禪)과 꿈이 다시 잊어버리는 곳이 있다면, 창 앞의 한 그루 벽오동나무일 뿐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新晴(신청)
새 소리 꿈 저 쪽에선 차가움이 감돌고
꽃 내음 무선에 들어 스러지고 마는구나
선과 꿈 잊는 곳 있다면 벽오동 뿐인 것을.

禽聲隔夢冷 花氣入禪無
금성격몽냉 화기입선무
禪夢復相忘 窓前一碧梧
선몽부상망 창전일벽오

꽃내음이 선(禪)에 들어와 그만 스러지고 마네(新晴)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새 소리의 꿈 저쪽에선 차가움이 감돌고 / 꽃 내음 무선(無禪)에 들어와 그냥 스러지고 마는구나 // 선과 꿈 을 다시 잊은 곳이 있다면 / 창 앞의 한 그루 벽오동나무뿐이려니]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차가움 감돌면서 무선에 든 저 꽃내음, 선과 꿈을 잊는 곳에 한 그루 벽오동나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선(禪)에 드니 새롭게 개다]로 번역된다. 선사의 시상은 어느 대상과도 선시에 치환(置換)시키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시를 쓰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객관적상관물과 선(禪)과 연관을 지었다. 자연을 보면서도 선과 연관을 지었으며, 날씨가 쾌청하게 갠 상황까지도 남김없이 선과 깊은 연관을 맺어보려는 시상을 만나게 된다.
시인은 새 소리의 꿈이 저 쪽 한 구석에선 차가움이 감돌고 꽃내음이 선(禪)에 들어와 그만 스러지고 마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시인은 율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절구에서도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 거의 예외없이 대구법을 구사하는 묘미를 잘 부렸다. 말을 부리는 7언에서 종종 보지만 시인의 시상은 5언에서도 시적 재주를 마음껏 부린다. [禽聲와 花氣 / 隔과 入 / 夢冷과 禪無] 어구에서 남김없이 대구법을 쓰고 있다.
화자는 비유법에 능통한 테크닉을 여기에서도 발휘하고 있다. 흩어진 선과 꿈을 다시 이어지는 곳에 있다면 이란 가정 하에 그것은 아마도 [창 앞의 한 그루 벽오동나무이려니]라는 멀리 보이는 객관적상관물이란 벽오동나무에게로 그 공을 돌리고 있다. 선과 꿈이라는 정신적인 것에 벽오동나무라는 물질적 실체적인 것으로 전이시킨 수사법이다.

<한자와 어구>
禽聲: 짐승 소리. 隔: 막히다. 夢冷: 꿈이 차갑다. 花氣: 꽃의 기운. 곧 꽃의 기운. 入: 들어오다. 들어와 스러지다. 禪無: 무선. 선(禪)이 없다. // 禪夢: 선과 꿈. 復: 다시. 相忘: 서로 잊다. 窓前: 창문 앞. 一碧梧: 한 벽오동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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