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몸) 눈바람 속 하늘가에 이르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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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몸) 눈바람 속 하늘가에 이르고 말았으니
  • 홍주일보
  • 승인 2014.05.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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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0>

 

추석과 음력설이면 전국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는 방송을 듣는다. 조상 성묘라는 우리네 미풍양속이겠지만, 고향을 찾는 즐거움이 그 속엔 한껏 담겼다. 크고 자란 고향에는 향수덩이가 자리하고 있어 어디를 가나 내 놀던 동산이고 놀이터다. 초등학교 때 다녔던 운동장의 추억이며 훌쩍 커버린 느티나무를 만지면서 달라진 환경에 덧없는 세월을 곱씹어 본다. 모두가 시덩이요 글감이다. 시인은 마음이야 아직도 젊지만 몸은 이미 많이 늙어서 눈바람 속 하늘가에 이르고 말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思鄕(사향) 
머나먼 고향 떠나 서른 해 글 속에 묻혀
마음이야 젊지만 몸은 이미 늙었는지
하늘가 이르고 말았네, 눈바람도 맞으며.

江國一千里 文章三十年
강국일천리 문장삼십년
心長髮已短 風雪到天邊
심장발이단 풍설도천변

(이내몸) 눈바람 속 하늘가에 이르고 말았으니(思鄕)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리라 머나먼 고향을 떠나 있어서 / 글속에 파묻혀 떠돌기 시작한 지 서른 해를 넘겼구나 // 마음이야 젊지만 몸은 이미 많이 늙어서 / 눈바람 속 하늘가에 이르고 말았으니]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천리 타향 고향 떠나 서른 해를 글에 묻혀, 마음이야 젊지만은 하늘가에 이르렀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하며]로 번역된다. 나이 들면 무상한 세월을 한탄한다. 흰 머리가 나면 세월 앞에서 나이 듦을 원망할 때가 많다. 고향을 멀리 두고 떠돌이 신세였다면 그 간절함은 더했을 것이다. 이것은 정한 이치다. 시인은 조국의 독립과 불교의 전파를 위해 전국 어디나 다녔다. 시를 짓고 불경을 쉽게 쓰며 민족의 나아갈 바를 바르게 정립하며 노력했다. 사(私)보다는 공(公)을 중시하는 애국애족 정신이 누구보다 강하고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시인도 사람인지라 계절이 바뀌고 차가운 겨울이 오면 향수에 젖지 아니할 수 없었던 모습을 시의 깊은 속에서 찾게 된다. 시인이 천리나 되는 머나먼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시에 묻혀 글에 묻혀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 이미 서른 해가 되었다고 한탄한다.

화자는 머나먼 곳에 와 있다는 현장감에 대한 한탄을 하더니만, 이제는 현실감을 인지하고 나이 들어감을 한탄한다. 지금도 마음이야 젊지만 몸은 늙어서 황천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뜻을 담았다. 그리고 이제는 [눈바람 속 하늘가에 다시 이르렀다] 애상에 젖어보는 마음을 읽는다. 큰 시심을 품었던 노시인이었지만, 무심한 세월 앞에서는 어쩌지 못했던 것을 시상에서 함께 만난다.


한자와 어구
江國: 강과 나라. 곧 고향을 떠나다. 一千里: 천리나 되는 머나먼 곳. 文章: 글을 하며 살다. 三十年: 삼십년이 되었다. // 心長: 마음은 길다. 곧 젊다. 髮已短: 머리는 이미 짧다. 곧 늙었다. 風雪: 눈바람 속. 찬 계절. 到: 이르다. 天邊: 하늘가. 곧 나이가 기울어 죽을 때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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