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마음 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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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마음 달리네
  • 홍주일보
  • 승인 2014.05.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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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1>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사정에 따라 고향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고향을 향한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 추억이 새겨져 있어 회상을 만끽한다. 현대인은 이런 추억을 ‘향수(鄕愁)’라고 한다. 점차 나이 들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했던가.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아련한 고향을 기리면서 산다. 남(南)에 고향을 둔 사람이야 시간되는 대로 가면 되겠지만, 북(北)에 고향을 둔 사람이랴. 득도를 위해 출가하여 선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썼던 스님이 고향을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思鄕(사향)
한 해가 또 가면서 내 혼백 놀랐으며
구름 걸린 희미한 달 꿈만은 외로워라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 향한 이 마음

歲暮寒窓方夜永 低頭不寐幾驚魂
세모한창방야영 저두부매기경혼
抹雲淡月成孤夢 佛向滄洲向故園
말운담월성고몽 불향창주향고원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마음 달리네(思鄕)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해가 가려는데 차가운 창엔 밤이 길어 / 잠 못 들고 몇 번을 내 혼백이 놀랐던가 // 구름 걸린 희미한 달의 꿈이 외로운데 /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달려가는 고향 마음]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차가운 창 밤이 길어 내 혼백이 놀랐었네, 달의 꿈이 외로운데 달려가는 고향 마음’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하면서]로 번역된다. 시인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다. 고향에서 독실하게 한문공부를 했고 결혼도 하여 자식을 두었다. 뜻한 바 있어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가 선가의 사상에 빠져 득도한 스님이다. 반야사상에 빠졌고, 깊은 생각과 철학이 있었기에 불교의 개혁을 힘차게 부르짖었다. 사람은 나이 들면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고 했으니 시인도 향수에 젖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회한이 숨어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한 해가 또 가려는데 차가운 창엔 밤이 길기도 한데,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몇 번을 자신의 혼백이 놀라고 놀랐던가를 회고한다. 찢어지는 지난날의 회고 속에 얻은 것보다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는 허전함이 배어나고 있다.
화자는 후정(後情)의 시심 속에서 구름 걸린 희미한 달을 보니 꿈에 부풀었던 지난날 회고에 마음은 외롭기만 한데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마음 달리네]라고 했다. 창주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이 사는 곳으로 [창랑주(滄浪洲)·동방삭(東方朔)·신이경(神異經)]이란 뜻이나 여기에선 [부처를 따르는 길]이라고 정의하련다. 부처를 따르는 것이 주이겠으나 고향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읽게 된다.

<한자어 어구> 
歲暮:해가 저물다. 寒窓: 차가운 창. 方:바야흐로. 夜永: 밤이 길다. 低頭: 머리를 숙이다. 不寐: 잠 못 이루다. 幾驚魂: 몇 번 혼백이 놀랐던가. // 抹雲: 구름에 걸리다. 淡月: 희미한 달. 成: 이루다. 孤夢: 외로운 꿈. 佛: 아니다. ‘부처’는 아님. 向滄洲: ‘창주’를 항하다. 向故園: 고향을 향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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