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자락 끌어당기며 고향 소식도 이야기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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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자락 끌어당기며 고향 소식도 이야기했네
  • 홍주일보
  • 승인 2014.06.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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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2>

 

고향에 가고 싶은 애탄 심정이 더하여 이제는 고통의 그림자로 남았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하여 마음만 먹으면 금방 고향에 다녀올 수 있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그렇지도 못했다. 고뇌에 찬 심정으로 고향을 그렸음은 많은 시인의 시상의 얼게 속에서 유추(類推)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시를 분석한다’고 하거나, 시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시를 감상한다’고 한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고통과 고뇌로 변해 가슴 벅찬 마음으로 그리며 옷자락 끌어당기며 이야기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思鄕苦(사향고)
심지를 따지 않아도 등잔불 타는 밤에
온 몸은 자르러지고 넋은 나가고 없네
매화가 학을 타고서 옷자락 끌어당기네.

寒燈未剔紅連結 百髓低低未見魂
한등미척홍연결 백수저저미견혼
梅花入夢化新鶴 引把衣裳說故園
매화입몽화신학 인파의상설고원

옷자락 끌어당기며 고향 소식도 이야기했네(思鄕苦)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심지를 따지 않아도 등잔불은 타고 있는 밤에 / 온 몸이 자지러지고 넋 또한 나가고 없네 // 꿈을 꾸니 매화가 학이 되어 나타나고 / 옷자락을 끌어당기면서 고향 소식 얘기하네]라는 시심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등잔불이 타는 밤에 넋 또한 나가고 없네, 매화가 학이 되어 고향 소식 얘기하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하는 괴로움이 깊어]로 번역된다. 닛코의 자연경관에 취해 마음껏 구경하면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상의 주머니에 다복하게 담아 넣었을 것이다.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고 했던가. 시인도 그랬던 모양이다. 시적인 상상력 주머니를 채우고 나니 이젠 고향 그리는 마음이 생겼다. 그것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고국심이 아니라 괴로운 충동감 속의 마음을 담아냈다.
시인의 향수심은 깊어가는 밤에 더하는 법이다. 등잔불 심지가 타다보면 굳은 심지가 있어 불 밝기가 약해진다. 이것을 따내면 등잔불을 더 밝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심지를 따지 않았지만 등잔불은 여전히 타고 있는 깊은 밤에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온몸은 자지러지고 넋 또한 나가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나 깊은 향수에 젖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화자의 시상은 이제 큰 날개를 다는 그림을 만나게 된다. 가까스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더니 한 줌 매화가 학 되어 아련히 나타나면서 시인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고향 소식을 소곤거리면서 전해 주더라는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멋진 비유법 때문에 시의 맛과 멋을 한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평자 혼자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리라.

<한자어 어구>
寒燈: 차가운 등불. 未剔: 따지 않다. 紅連結: 붉게 연결되어 있다. 百髓: 온 몸의 뼈. 低低: 자즈러지다. 밑이다. 未見: 보이지 않다. 魂: 넋. 혼. // 梅花: 매화. 入夢: 꿈에 들어오다. 化: 화하다. 新鶴: 새로운 학. 引把: 끌어당기다. 衣裳: 옷자락. 說: 얘기하다. 故園: 고향 동산. 고향.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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