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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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
  • 장희구<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4.06.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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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3>

 

참선의 도를 깨치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수도승들은 오도송을 외쳤다. 아니 암송하면서 그 자신의 도의 정도를 가늠해 본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면 수도에 정진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 속에 반야의 깊은 세계에 몰입하면서 부족한 공부와 수행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시인은 오도송의 진리를 남자가 있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라고 정의한 다음 객수 속에 갇혀 사는가를 묻는다. 기실은 자신을 합리화해버리지만 삼천세계를 뒤흔들면서 눈 속에 복사꽃만 붉게 핀다고 하면서 자신의 도를 깨닫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悟道頌(오도송)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 수심에 잠겼던가
한 마디 버럭 지르니 복사꽃만 붉게 피고.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紅
일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홍

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悟道頌)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아가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인 것을 / 그 몇 사람들 객수(客愁) 속에 길이 갇혔나 // 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 / 눈 속에 점점이 복사꽃만 붉게 지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가는 곳이 고향인 걸 객수 속에 길이 갇혀, 삼천세계 흔들리니 복사꽃만 붉게지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의심이 씻은 듯 풀리다]로 번역된다. 오도송(悟道頌)은 도를 깨닫는 송시라고 해야겠다. 불자들은 도를 깨닫기 위해 이 시제로 시를 썼다. 혜능스님, 서산대사. 얼마 전 열반한 성철스님도 오도송을 음영하며 선도의 바른 세계에 젖어 들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오도송의 깊은 뜻은 가볍게 풀이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원대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남아가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라고 하면서 그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객수(客愁) 속에 가던 길에 갇혔나하고 의문점을 던진다. 그는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자겠느냐 하면서 냉골 거처에서 꼿꼿이 앉았다. 이를테면 좌사법(座思法)이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저울추]였다. 그렇지만 조선 땅덩어리에 갇힌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안방에 앉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화자는 한 호소를 보낸다. 한 마디 소리를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뒤흔들어 놓았더니 마치 눈 속에서 점점이 복사꽃이 편편히 붉게 핀다고 했다. ‘삼천세계’는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를 말한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서 해, 달, 사대주(四大洲), 육욕천(六欲天), 범천(梵天)을 합하는 한 세계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자어 어구> 
男兒: 남아. 到處: 이르는 곳. 是故鄕: 고향이다. 幾人: 몇 사람. 長在: 오래 갇히다. 客愁中: 객수속에 // 一聲: 한 마디. 한 소리. 喝破: 버럭 지르다. 三千界: 삼천세계.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를 말한다. 雪裡: 눈 속에. 桃花: 복사꽃. 片片: 송이송이. 紅: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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