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소제동·서천·장항 원도심 ‘문화혁명’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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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제동·서천·장항 원도심 ‘문화혁명’ 도시재생
  • 한관우·서용덕·한기원 기자
  • 승인 2014.07.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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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사업, 지역의 경쟁력이다(2)

 


대전역 뒷동네, 대전광역시가 아닌 충청남도 대전시였던 시절의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일제 강점기시대 철도 노동을 하던 민중들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는, 삶이 여정이 100년 이상 남아 있는 곳. 힘들고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삶의 현장을 뛰었던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사실 ‘낙후’와 ‘옛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관점을 바꾸면 버릴 것은 곧 지킬 것이 되는 법이다. ‘지금’은 ‘옛날’에서 꽃피고, 아픔 또한 역사다.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이제 소제동을 ‘낙후 지역’ ‘재개발 예정지’ ‘슬럼가’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실제로 소제동 면적의 절반 이상은 대전시가 2009년 수립한 역세권 재정비 촉진계획에 포함됐다. 대전역 철길을 따라 조용히 자리 잡은 대전 동구 신안동과 소제동 골목길은 힘차게 서있는 대전역 쌍둥이 빌딩 뒷편에 위태하게 버티고 있다. 길의 끝자락도 개발 바람 에 힘들게 버티는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 위풍당당할 것 같았던 관사촌은 세월이 지나면서 기와도 뜯어 고치고 내부도 수리하고 해서 원래의 모습을 갖춘 곳은 사실 몇 곳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이란 동네의 현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철도관사촌 주민들은 마을을 보존하고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는데 합심하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소제동은 한때 대전에서 부자 동네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헌데 지금은 재개발을 피할 수 없게 된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대전은 본래 철도가 키운 도시다. 1905년 경부선 대전역이 들어선 이후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은 일약 근대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자연히 철도 관련 기술자들이 늘었고, 대전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관사촌이 형성됐다. 소제동 역시 그중 하나로, 동(東)관사촌이라 불렸다. 대전에는 세 곳의 관사촌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었다.
 

 


철도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은 시간이 멈춘 곳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철도 간부들의 생활을 위해 1920~40년대에 지어진 이곳은 그래도 아직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남아 있는 40여 채의 관사에는 사람이 사는 곳도, 빈곳도 있다. 협소한 골목과 색 바랜 간판, 사람 키 높이의 담장과 슬레이트 지붕, 1950년대 교통부 철도국 마크가 붙어 있는 100여년은 족히 되보이는 나무전봇대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마치 옛 거리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또 인근 동구 정동의 쪽방촌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 사이로 양품점과 대폿집, 기름 짜는 집, 전파사 등이 색 바랜 간판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하지만 한쪽은 이미 철거됐다. 도시가 확장되고 대전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걸었던 곳들이다. 결국 재개발지역이 되면서 뻔한 개발과정만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곳이다.

대전시 고윤수 학예연구사는 “소제동의 철도관사촌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이곳은 사라져 가는 철도마을이라는 경관적, 문화재적 가치평가가 충분한 곳이며 보존가치가 크고 학술적 가치도 있다”며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릴 수 있는 개발 방식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적 과정에서 “이곳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사람들이 생겼다. 대전 근대사 아카이브 구축사업 포럼에서 소제동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복원하자는 실험을 제안하면서 관점이 확 바뀌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이를 계기로 “대전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전면철거 방식에서 사람과 장소 중심의 사회·경제·문화를 중요시하는 소규모 지역공동체 재생사업으로 전환해 추진하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주민들의 참여와 동참을 위한 일환으로 도시재생 선도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장소, 주민 중심의 도시재생사업 추진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보급창고는 공연장으로 활용하거나 북콘서트 등도 열었다”고 밝히고 “철도관사 등은 원형을 보존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등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시에서 매입해 문화예술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면 지역이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제동에는 지금도 42호, 51호 등 숫자가 적힌 일부 관사가 남아 있다. 소제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동네 전체가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제동은 사람과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사진전을 열고 젊은 음악인들이 모여 음악회도 개최하는 등 도시재생을 위해 다양한 세대의 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또 하나 주목할 곳은 서천군 서천읍 원도심에 조성된 ‘봄의 마을’과 장항읍의 문화예술창작공간 ‘미곡창고(美曲唱考)’다. ‘봄의 마을’은 주민참여를 통한 문화·교육·복지의 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서천지역의 이미지 향상 및 지역경제 활성화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천군 관계자에 따르면 “총 165억 원을 투입해 건물 5동, 건축연면적 5500㎡, 광장 3485㎡로 조성됐다. 현재 종합교육센터, 청소년문화센터, 여성문화센터, 일자리종합센터, 친환경농산물판매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19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30여 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하루 2000여명의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각종행사 및 다양한 공연이 매일 개최되면서 유동인구 유입을 촉진시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주민참여와 협력을 통한 성공적인 원도심 개발이란 점에서 충남도가 추구한 균형발전사업의 대표적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봄의 마을은 2009년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주민참여분야’ 공약이행 우수기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 BEST 7 선정,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면서 전국 지자체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다.

충남도 제1기 균형발전사업의 대표적 성과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항선 철길의 종착지로 80년간 주민들과 고락을 같이 했던 옛 장항역사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옛 장항역 주변은 2008년 1월 장항선 개량화사업으로 종점이 전북 익산시로 옮겨 가면서 공동화 현상과 함께 숨죽인 회색도시가 됐다. 이런 장항이 최근 새로운 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제2의 부흥기를 예고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침체되고 있는 장항지역을 재생하기 위해 읍내에 산재한 낡고 오랜 삶의 공간과 문화예술 콘텐츠를 융합한 새로운 지역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장항읍 활성화 사업은 도심 곳곳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미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장항읍의 문화예술창작공간 ‘미곡창고(美曲唱考)’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실어갈 쌀을 저장하던 창고를 보수해 지역주민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한편 장항읍 장암리의 장항제련소와 굴뚝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210m의 전망산(바위산)에 는 높이가 110m나 되는 굴뚝이 자리 잡고 있다. 제련소는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됐다. 이후 수십 년간 국내 구리 제련의 주요 생산시설로 활용됐지만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1989년 제련소 용광로가 폐쇄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동파이프 생산공장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장항읍은 1938년 광주광역시와 함께 읍으로 승격됐지만 장항읍 인구는 현재 1만3260명에 불과하다. 광주가 인구 14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항은 일제강점기 제련소로 번성했지만 1989년 제련소가 폐쇄된 이후 인구 1만여명의 소읍으로 쇠락했다”며 “장항이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서천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금도 장항에는 제련소 굴뚝을 비롯해 버려진 창고와 빈집들이 산업화의 유물처럼 남아있다. 서천군은 낡은 유물에 예술을 접목시켜 낡은 공장 등을 부둣가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으로 다시 탄생시킨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도시재생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이 기획취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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