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평생 지음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 漁笛[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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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평생 지음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 漁笛[1]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7.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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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29>

漁笛(어적)/ 만해 한용운

안개 낀 강 한 돛단 배 대나무 가을인데
갈대꽃을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르는구나
낙조 진 저 너머에는 백구만이 지음알며.

孤帆風烟一竹秋 數聲暗逐荻花流
고범풍연일죽추 수성암축적화류
晩江落照隔紅樹 半世知音問白鷗
만강낙조격홍수 반세지음문백구 

 


뱃전을 두들기며 한 가락 뽑는 어옹(漁翁)의 노래를 들으면 낭만이 물씬 풍겼다. 흥얼거리는 한 마디도 정서를 담아낸다고 할진데 구성진 노랫소리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뱃전을 두들기는 장단이 제격임에도 한 술 더 떠서 피리 소리까지 겸했다면 천하의 일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소리는 멀리 강가에 있던 나그네의 수심을 달래 주었고,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마음도 한껏 사로잡았을 것은 뻔한 이치였겠다. 멀리 백구와 벗을 삼으면서 반평생의 지음(知音)일랑 저 백구만이 알리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漁笛)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한 대나무 가을인데 / 갈대꽃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른다네 // 단풍 든 저 너머엔 낙조(落照)만이 지는데 /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돛배 한 척 가을인데 갈대꽃 피리소리, 저 너머 낙조 지니 백구만이 지음알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기잡이 어부의 피리소리]로 번역된다. ‘어부’가 하는 직업은 고기를 잡는다는 면에서는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지만 고기 잡는 방법 면에 있어서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멋진 노랫가락 한 대목을 뽑는가 싶더니만, 구성진 피리 소리를 더하여 듣는 이들의 낭만을 더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멀리서 들려오는 어부의 피리 소리를 듣고 깊은 잠에 취해 있다는 모습을 선뜻 상상하게 된다. 선경후정이라는 시적 구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저 멀리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아늑하게 떠 있는데 휘날리는 갈대꽃을 줄줄이 따라서 한 곡조 피리 소리가 낭랑하게 흐르고 있다고 상상했다. 선경(先景)이라는 그림 한 폭을 잘 그렸다.

화자의 그림은 단풍 든 저 건너를 바라보며 낙조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천길 물속의 깊은 속내를 훤히 드려다 보는 것처럼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라는 후정(後情)의 심회를 담아냈다. 이어지는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에서는 [가락 기막히니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 / 곡조 끝나도 애끊는 시름을 달래지 못하는데 // 그 소리 바람이 인 듯이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은 스러질 줄 몰라라]라고 음영했던 시상을 성큼 만나게 된다.

<한자어 어구>
孤帆: 외로운 돛배. 風烟: 바람과 연기. 一竹: 한 대나무. 秋: 가을. 數聲: 자주 들리다. 暗逐: 어두움을 쫒다. 荻花: 갈대꽃. 流: 흐른다 // 晩江: 늦은 강. 해가 넘어가다. 落照: 낙조. 隔: 막히다. 紅樹: 붉은 나무. 半世: 반평생. 知音: 소리를 알아주다. 問: 묻는다. 白鷗: 백구.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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