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으로 가더니만 돌아올 줄을 모르고 : 春閨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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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으로 가더니만 돌아올 줄을 모르고 : 春閨怨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09.1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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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5> 春閨怨(춘규원)

春閨怨(춘규원)

원앙새 수놓다가 봄 수심 애태운데
밤 되면 의복 재봉 외로운 꿈 이루고
우리임 강남 가셨는데 돌아올 줄 모르고.

一幅鴛鴦繡未了 隔窓微語雜春愁
일폭원앙수미료 격창미어잡춘수
夜來刀尺成孤夢 行到江南不復收
야래도척성고몽 행도강남불부수 


남자들은 병역이나 노역에 끌려가 일을 했다. 아무런 보수나 대가도 없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개병제(皆兵制)와 같은 사회 규범적인 제도다. 전쟁이 끝나야 돌아 올 수 있었고 대공사가 마무리되어야 노역의 의무(?)를 마쳤다는 증표가 된다. 사회의 관습이고 제도였다.

잘 있는지 여부의 소식도 전할 수가 없다. 유일한 통신 방법은 오가는 인편을 통하여 안부를 묻고 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절에 시인은 원앙새 수놓다가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창 건너 속삭임에 봄 수심 더욱 애태워라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강남으로 가더니만 돌아올 줄을 모르고(春閨怨)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원앙새 수놓다가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 창 건너 속삭임에 봄 수심 더욱 애태워라 // 밤이 되면 의복 재봉하는 일로 외로운 꿈만 이루고 / 강남으로 가더니만 돌아올 줄을 모르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원앙새 수놓다가 봄 수심에 애태워라, 재봉하니 외로운 꿈 돌아올 줄 몰라라’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규방의 한은 쌓이는데]로 번역된다. 강남은 먼 곳, 혹은 멀리 떠나거나 전쟁터를 뜻하여 쓰이기도 한다.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아니면 군역으로 끌려가 돌아오지도 않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남은 여인의 마음속에 남편을 기다리는 한만이 쌓여갔을 것이다.

시인은 여성을 시적인 화자로 치환시켜 시상을 일으킨 작품이다. 시인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절박한 동기를 보면서 이 작품을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 시적 화자인 부인은 원앙새 수놓다가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멍하니 창 건너 봄이 오는 소리의 속삭임에 남편을 보고 싶은 봄 수심에 더욱 애태웠음으로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시적 화자는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춘심과 여심은 그리움으로 변하여 애태웠음을 나타내고 있다. 화자는 이어지는 전구와 결구에서 밤이면 하는 일이 의복을 재봉하는 일로 외로운 꿈만 이루고 있다고 했다.

손으로 하는 일은 재봉하는 일이지만 기실은 남편이 강남으로 가더니만 돌아올 줄을 모르고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기다린다는 수심을 담아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절박한 한은 역시 기다림이라는 몸부림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준 격정적 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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