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 선생과 오리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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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 선생과 오리 농업
  • 홍순명<밝맑 도서관장>
  • 승인 2014.10.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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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의 오리 농업 이야기

밝혀진 조류 독감 원인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해서는 과학적 실증도 없으면서 들새 전파설(특히 오리 등 철새)이 멋대로 떠도는데 의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수의학자들이 진상을 밝히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리는 실태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끈기있게 정론을 주장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이따금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구제역에 대해서도 국제수의기관(본부 파리)의 지침이 내렸는데도 구태의연하게 각국이 대응하는 태도에 정말 의분을 금할 수 없어서 지난해에 아사히신문의 ‘나의 주장’ 난에 기고를 하였더니, 커다란 반향이 있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꼬이던 간에 희생자는 언제나 생산하는 농민입니다. 농민들이 학자나 식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 가면서 강하게 주장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만다 마사하루(萬田正治) 선생이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작은 오리농사 책을 보내드린데 대한 회답이었다. 만다 선생은 국립 가고시마대학 농학부 부학장을 지낸 축산 전문가다. 일찍 교수직에서 퇴직하여 오리농사를 직접 지으며, 다카세농숙(竹子農塾)을 열어 농민교육을 한다. 오리농민교류로 홍성에도 자주 오셔서 지역 농민들과도 친숙하다. 

다카세의 한일농민교류회 때 장면.

한때 철새나 오리가 조류독감 주범으로 몰리어 오리농업이 위축되었으나,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2013년 조류인플루엔자 및 야생조류학술대책위원회 같은 국제기관의 성명문에서 밝혀졌다.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는 이번 전라도에서 보고된 H5N8 같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는 오리농장과 같이 매우 좁은 공간의 비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가금류 (닭과 오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질병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가금류 생산시스템과 그 가치 사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H5NB HPAI는 최근 한국의 국내 가금류에서 발생했으며, 가금류 및 야생 조류의 사망을 유발하였습니다… 야생조류가 이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들은  매개체가 아닌 피해자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이런 발표 내용은 국제역학 환경계획, 이동성 새의 보존에 관한 협약단체와 국제식량 농업기구(FAO)가 공동으로 지지한 사항이다. 무엇보다 철새가 돌아간 여름에도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것은 조류독감이 철새나 오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부할 수 없는 증명이 된다.

만다 씨의 유축복합 농업론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에 대해서는 전에도 만다 선생과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기에 조류 독감 원인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걱정한 것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편지에서 ‘의분’이라는 글자가 유독 눈에 크게 들어왔다.

사회에는 의분을 과잉 행사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평소 언어 행동을 조심하며, 온화한 신사의 인품을 가진 만다 선생 같은 이가 그 말을 쓰면 뜻이 무겁다. 7년 전 한일오리농민 교류회 때 있었던 일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국 사회의 감정이 격해 있던 때라, 일본에선 자국 여행객의 한국 여행 자제를 권고하던 때였다. 한국에 올 차례였던 일본 오리농민은 주저하는 기색이 역연했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는 정치문제와 분리하여 초청하기로 정했다.

모임 첫날 일본 오리농민을 대표하여 만다 선생이 과거사를 사죄하면서 한국농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국 측에서는, 늘 역사의 희생자였던 양국 농민들은, 정치를 떠나 민간교류로 계속하자고 말했다. 일본 측 참가자에는 작가인 시마무라(島村) 슬로우 푸드 일본 지부장도 있었다.

“한일 역사의 질곡을 넘어 농민의 진정이 교환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회고했다. 다음해는 한국 오리농민이 일본에 갈 차례였다. 마침 전국에 퍼진 구제역 때문에 여행객, 특히 축산지역 농민은 일본 입국의 통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국 오리농민은 후쿠오카공항에서 형식적 절차만 밟고, 귀빈실로 안내되어 통과하였다. 만다 선생을 비롯해 일본 측 오리농민 대표들이, 한일 간 긴장감이 돌던 시기에 초청해준 한국 농민들에 대한 답례로 최대한의 배려를 공항에 건의했던 것이다. 그 뒤 양국 오리 농민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신의의 신고식을 거쳐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미소베초(溝邊町)의 만다 선생 집에서 가까운 논가에는 작은 비석이 세워져있다. 오리의 위령비다. 사람을 위해 논에서 일을 하고 목숨을 바친 오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했다. 해마다 주지스님이 불공을 드린다.

그가 평소 하는 말이 있다. “논의 물벼룩에 농약을 치면 연쇄적으로 모든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다. 모든 생명에 감사하고 존중해야 한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시장 원리와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처에서 생명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닭, 돼지, 염소 등 주변에서 키우는 가축을 소중히 해야 생물다양성이 살아나고, 자연 순환도 회복되며 유축복합경영이 가능해진다. 3만 마리 기르던 양계를 100집에서 300마리를 기르고, 2000마리 기르는 양돈 농가를 열 집에서 200마리 씩 기를 수 있다.

다카세마을의 직판장.

그래야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는 만인직경(萬人直耕), 생활 속에 농업을 정착시키는 생활농업이 가능하다. 이것이 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내 젊은 날부터의 평화론이기도 하다” 이런 성품과 생각을 가진 만다 선생이 공장식 양계장에 갇혀 고생하는 닭들을 보고 마음에 고통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돈에 얽매어 유럽에서는 진작 폐기한 방식으로 기르는 닭, 오리들이 지르는 비명에 의분을 느꼈을 법하다. 예전 스님들은 행여 벌레라도 밟을까 봐 길을 나설 때면 비로 길을 쓸며 다니셨다고 한다.

일찍부터 살생유택과 측은지심을 배워 온 민족인데, 돈 때문이라고는 하나 어쩌다 이렇게 생명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유기농 특구 맞는 오리농업
주변에 겸업으로 몇백 마리 소규모 양계를 하는 이가 있다. 자가 사료를 쓰고, 계분은 밭에 퇴비로 낸다. 풀과 흙을 먹고 햇빛을 쬐며 흙을 뒤지는 닭들은 건강하고, 달걀 노른자는 황금 같고, 수탉의 목청은 우렁차다.

소농의 유기 양계와 함께 만다 선생이 말하는 분산형 유기농축 복합경영이 바로 오리농법이다. 보통 병아리는 3개월 자라야 성체가 된다. 그런데 사료에 이상한 걸 집어넣고 밀폐된 공간에서 길러 27일 만에 시장에 낸다. 한 해 8억 마리다. 닭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사료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나 밀, 항생제, 성장촉진제는 사람에게 불임을 비롯해 수많은 질병을 몰고 온다. 특히 생체 안의 호르몬 기능을 교란시키는 성장촉진제는 연약한 태아, 갓난아기, 어린이들이 먼저 피해를 입고 여성의 위험률이 더 높다.

비스테로이드성 합성 여성호르몬(DES)은 71년 미국에서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큰 기업이 사료 속에 섞어 넣어 인체에 그대로 유입된다. 올해 쌀 전면 개방 정책이 발표되어 농민이 긴장하는 가운데 홍성이 전국에서 처음 유기농업 특구로 지정되었다. 김석환 군수님을 비롯해 여러 분이 애쓰신 것으로 안다.

아, 지역 유기농업이 여기까지 왔구나, 국민정부 입각 전 김성훈 장관이 홍동에서 유기농업 원년을 선언했을 때의 감동을 다시 느꼈다.

유기농업지구 선정 이유로 ‘전국 최초의 오리농업 발원지로 그동안 친환경 유기농업을 실천해 오면서 이에 대한 풍부한 노하우를 보유한 곳으로 이를 활용한 차별화된 특성화 전략이 필요하다(충청일보)’

그러나 ‘후발주자보다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서울경제)’는 보도도 있었다. 오리농업이 유기농업 지역 선정의 우선 이유가 되었지만, 앞으로 특구의 내용을 채우는데도 손색이 없다.

좋은 쌀을 만들고 오리를 가공해 농협에서 지역 브랜드로 판매하면 경제 특화에 도움이 된다. 농민, 학교, 행정, 소비자가 협력해야 한다. 오리농업은 오리가 일꾼이 되어 주면서 건강한 순환농업을 촉진시켜 준다.

논에서 우수한 쌀과 사료절약형으로 오리를 기르며, 어린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소비자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일석삼조의 방법이다. 또한 오리농업은 만다 선생을 비롯해, 자연과 역사, 문화의 특성을 가진 아시아 오리농민들이, 국경을 넘은 대지의 우정으로 평화의 역사를 써나가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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