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의 성직자 영입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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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의 성직자 영입 운동
  • 조현옥 전문기자
  • 승인 2014.11.0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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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14>

홍주천주교회사9

 


1801년 신유박해 때 주문모신부가 죽임을 당한 후 사실 상 조선 교회는 목자 없는 양떼들처럼 35년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지도층이 사라진 교회는 지하 교회를 이루며 전국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용인 부근에 살던 신대보는 박해가 잦아들자 용인 근처에 사는 교우 다섯 집과 교류하다가 40여명을 데리고 8일간에 걸쳐 강원도 산중까지 걸어 들어가 피신하여 살게 된다.

그는 서울에 살던 권(요안)과 교회 재건에 힘을 쏟고 이여진이 1811년 로마 교황과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동지사의 하인이 되어 북경으로 가도록 돕는다. 신유박해의 큰 피해자였던 정약용 집안을 들여다보자. 다산의 둘째형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그의 큰 아들은 함께 순교하고, 정하상은 나이가 어린 이유로 살아남았다.

정약용의 집에서 곁방살이를 하던 정하상은 집을 나와 여러 교우의 집을 옮겨 다니며 교리를 배우고 한문 지식을 넓혀나갔다. 1816년 10월 24일, 그의 나이 22세에 교우들이 모아준 여비를 가지고 동지사 이조원 일행의 역관 하인이 되어 북경 부주교 리베리오 신부를 찾아갔다.

당연히 조선에 신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는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힘쓸 겨를이 없었고 청나라 또한 교회 박해가 심한 지경이라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 아홉 번이나 북경을 다니며 성직자 영입 운동을 벌였다. 정하상은 사제가 없는 어둠의 시기에 평신도로서 교회 부흥에 적극적이었으며 튼튼한 교회 제도를 이루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다행히 1825년에 로마 교황청으로 보낸 편지가 빛을 발해 1831년 9월 9일 조선교회를 북경 교구로부터 분리하여 독립된 교구(대리 감목구)로 승격시킨다는 교서를 받아내게 이르고,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주교로 임명된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는 길에 숨을 거두게 되어 두 번째로 앵베르 주교가 1837년 뒤를 잇게 된다. 그렇다면 나라 안 사정을 살펴보자.

조선은 22대 정조를 보내고 1800년 23대 순조의 시대를 맞는다. 어린 순조가 임금이 되어 35년간 왕좌를 지키게 되는데 정순왕후는 1802년 김조순의 딸(순원왕후)을 왕비로 맞아들이면서 안동 김씨 세력을 키우게 만들었다. 이러한 세도 정치는 1839년(24대 헌종 6년)까지 계속되는데 이 해에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또다시 커다란 박해(기해박해)의 바람이 불었다.

다시 외척 세력인 풍양 조씨가 실권을 잡았고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피바람이 몰아쳤다. 안동 김씨 김조순은 1818년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양용을 해배시키고 경기도 마재로 돌려보내기도 하였는데 천주교 신자들에게 다소 유한 정책을 폈다.

조선 교구가 두 번째 주교를 얻고 1836년 프랑스 외방전교회의 모방신부가 입국했으며, 겨울에는 샤스땅 신부가 입국, 1838년 1월 1일에는 상복차림을 한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여 교회 창설 후 54년 만에 제도권 교회의 조직을 갖춘다.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땅 신부는 숨어 지내며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는 한편 새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흙바닥에서 잠을 자고 상복을 입은 채로 가난한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전교활동을 하면서 교세를 확장하고 튼튼히 한다.

1839년 초, 교우의 수가 9000명에 이르자 교회는 조선인 출신의 성직자 양성을 꿈꾸고, 3명의 소년을 뽑아 마카오에 보낼 계획을 수립하면서, 한편으로는 장년층에서 4명을 뽑아 단기간에 신학생을 만들게 되는데 42세의 정하상과 이승훈의 친손자인 29세의 이재용, 유학생 최 프란치스코의 큰형인 최베드로와 이문우 요한이었다. 그러나 정하상과 이문우는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하고 만다. 평신도 교회 부흥가 정하상(바오로)의 유명한 ‘상재상서’와 현석문(가롤로)의 ‘기해일기’가 이 때 나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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