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봉만학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오네:重陽[2]
상태바
천봉만학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오네:重陽[2]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11.28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45>

 


놀부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말에 심술이 났다.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치료한 후 강남으로 보낸 후 다음해에 삼짇날에 다시 찾아온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를 심었다. 무럭무럭 자란 박이 가을이 되니 주렁주렁 열렸것다.

중양절에 제비가 떠난 후로 푸짐한 박을 타 보았더니 금은보화는커녕 오히려 큰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교훈성을 담아냈다. 중양절에 먼 곳을 보았더니 천봉만학 문을 향해 파란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천봉만학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오네(重陽[2])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냇물이 말라 돌덩이는 구슬 같고 / 하늘 높이 기러기가 나는 곳엔 먼지와 멀어지네 // 낮이 되어 다시 방석 위에 일어서니 / 천봉만학(千峰萬壑)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오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돌덩이 구슬 같고 기러기는 멀어지네, 낮 되어 일어서니 만학천봉 들어오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9월 9일 중양절을 맞이하여(2)’로 번역된다. 중양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신라시대부터 명절로 정하여 잔치를 베풀어 즐거움을 같이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3. 3)과 가을(중양절) 노인잔치를 베풀어 경로사상을 드높였던 것으로 전한다.

전구인 수련과 함련에서 [설악산 백담사에 오늘은 구월 구일 / 온 나무 잎이 지고 내 병도 이제는 나았다네 // 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며 / 국화 이미 피었는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그 자신을 돌아봤다.

시인이 읊었던 경련에서만도 선경후정이란 심회를 담아냈다. 비가 오지 않아 시냇물이 말라 돌덩이는 구슬과 같고 가을 하늘이었던지 높이 뜬 기러기

重陽(중양)[2]

물 마른 시냇물에 기러기 먼지와 멀고
푸른 바위 물안개 온 숲에 젖어든다
가파른 하늘 들어오네, 천봉만학 문으로.

溪磵水落晴有玉 鴻雁秋高逈無塵
계간수락청유옥 홍안추고형무진
午來更起蒲團上 千峰入戶碧嶙峋
오래갱기포단상 천봉입호벽린순

날아가는 그 자리엔 지상의 먼지와는 점점 멀어진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지상을 작은 먼지로 비유하는 시심도 만난다. 화자는 미련에서는 화엄사 경내라는 작은 여행이 마무리되는 순간에도 시적인 상상력은 타오른다.

자박자박 걸어서 경내로 들어서는 나그네임을 자부하는 시심은 앉았던 돌 위를 방석이라고 표현하며 일어섰다고 했다. 그랬더니 멀리 펼쳐지는 경관은 천봉만학(千峰萬壑)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온다는 절경을 절구로 표현하는 시상을 만난다.

<한자어 어구>
溪磵水: 시냇물. 落: 마르다. 晴: 맑고 깨끗함. 有玉: 구슬이 있다. 鴻雁: 기러기. 秋高: 가을 하늘이 높다. 逈: 멀다. 無塵: 티끌과 멀다. // 午來: 낮이 되다. 更起: 다시 일어서다. 蒲團: 둥근 방석(돌 위를 비유함). 上: 위. 千峰: 만학천봉. 入戶: 집으로 들다. 碧: 하늘. 嶙峋: 가파르고 깊숙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