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은빛 까마귀를 생각하고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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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은빛 까마귀를 생각하고 기다리며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15.01.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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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 두 날개를 펼쳐 비상하는 큰부리 까마귀.

까마귀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텃새. 가마귀, 가막이, 효조(孝鳥)라고도 불린다. 까마귀는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좋고, 먹이를 저장하는 습관도 있는 영리한 새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한 포식자다. 몸 색깔이 검고 잡식성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도 까마귀를 소재로 한 시조들이 많이 보인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까마귀는 우리와 매우 가깝게 살아온 친근한 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까마귀는 몸이 검어 현조(玄鳥)라 불리기도 한다. 검은 색은 음양오행에서 북방의 통일된 물, 생명의 뿌리를 상징한다. 태양 속에 있는 까마귀는 진리의 광명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메신저를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태양신 아폴로의 사자(使者)는 까마귀다. 아폴로는 코로니스(Coronis)라는 까마귀를 데리고 다닌다. 까마귀는 현대인에게 죽음과 불길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고대 신화에서는 태양의 새, 예언의 능력을 가진 새로 곧잘 그려진다.

 

▲ 삼족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불사조로 불린 까마귀
오작교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를 만든 주인공
좋은 인간이 되기위한 바람담은 은빛 까마귀


세 발 달린 까마귀는 삼족오(三足烏)로 고구려가 국조(國鳥)로 삼았다는 발이 3개인 상상의 새다. 삼족오는 쌍영총을 비롯한 수많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등장한다. 태양같이 커다란 붉은 원 속에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가 자리하고 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등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날개 너비가 석자나 되었다’ 등의 기록이 있다.

고구려 벽화에는 태양 속에 삼족오, 달 안에는 두꺼비, 혹은 방아 찧는 토끼가 많이 그려져 있다. 신성시된 삼족오가 태양 숭배신앙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우리 민화나 솟대, 부적 등에 나타난 까마귀는 태양숭배와 관련이 깊다. 연오랑(燕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설화 등 일본의 건국신화는 우리 고구려의 국조 까마귀와 관련이 깊어 더욱 이채를 띈다. 일본축구협회는 삼족오를 엠블렘(emblem)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삼족오나 까마귀는 고대 이집트 문명 등에서는 불사조(不死鳥)로 나타난다. 불사조 역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등에서 태양 숭배와 관련된 전설의 새다. 까마귀는 태양, 불멸 또는 재생(再生)을 상징하는 신조(神鳥)로 변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 영생불사(永生不死)나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고 하나, 인간의 어리석음만이 영원하다고 하면 과언인가.

반포보은(反哺報恩)은 자식이 길러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비유한다. 반포(反哺)는 까마귀의 새끼가 자라서 먹이를 물어와 자기 어미를 봉양한다는 뜻.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그렇게 보일 뿐 아쉽게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 나무가지에 걸터앉아 있는 큰부리 까마귀.

오작교(烏鵲橋)는 칠월칠석(七月七夕), 음력 7월 초이레 까마귀와 까치들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날 수 있도록 은하수에 만든다는 상상의 다리. 그래서 이 날은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유야 어떻던 부모의 반대 때문에 어렵게 결혼을 하고 1년에 한 번씩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는《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조 아시아판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두산 천지의 물(약 20억톤)이 급경사를 타고 흐르는 장백폭포 위쪽에는 견우교라는 징검다리가 있다고 한다. 천지의 물이 빠져나가는 달문에서 장백폭포에 이르는 내를 하늘의 냇물이 흐른다고 해서 천하(天河)라고 불린다. 김생과 영영의 환상적이고 애절한 사랑을 그린 전기소설(傳奇小說) <상사동기(相思洞記)>에는 서로가 주고받았다는 시(詩)에 까마귀, 까치가 등장하고 견우와 직녀의 사랑과 이별의 하루가 참으로 비통하다.

몇 날을 서로 생각하다가 오늘에야 만났는데,/............./하늘에는 까마귀와 까치 흩어지는 것을 금하지 못하고/무산(巫山)에 어찌 다시 운우가 짙어지랴/멀리 한번 작별하면 소식이 없을 것을 생각하니, /머리를 돌이키면 궁궐 문이 몇 겹이나 잠겼는가./등잔불은 비단 창에 다하고 떨어지는 달은 비꼈는데,/슬프게 작별하는 견우와 직녀, 하늘 은하수가 격해 있네/좋은 밤 한 시각은 그 값이 천금이요/작별의 눈물 두 줄에는 백가지 한이 서렸네.............

김 현(1913~1975) 선생의 <가을의 기도>에는 담백하고 여운을 남기는 까마귀가 아름다운 영혼과 함께 날아온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1037~1101)의 <적벽부(赤壁賦)>에도 까마귀가 등장한다. 작품은 짧은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슬퍼하는 절창(絶唱)이다. 좋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던 우리는 때로 은빛의 까마귀가 세상에 나타나기를 상상한 적은 없었던가. 우리는 검은 색 까마귀를 보고 사는데 익숙하지만, 언젠가 은빛 까마귀를 볼 수 있기를 기다리지 않는가.

저명한 언론인 출신 작가 고승철의《은빛 까마귀》는 혼탁한 이 세상과 맑은 이상향의 구도를 구체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와 인간의 진정한 길을 묻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작품은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격차 사이에서 패배하고 좌절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영혼들의 깨끗한 승리를 간절히 염원한다.

《서재필 광야에 서다》로 소설가로 데뷔한 그의《은빛 까마귀》는 가상의 은오산(銀烏山)에 산다는 전설의 새-은빛 까마귀는 진실과 정의,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의 은유(隱喩)로서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群像)들의 인연과 배신, 영합과 대립, 진실과 거짓, 영광과 치욕의 엇갈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설은 정치인들의 위선과 출세지상주의자들의 허위의식을 통해 부패한 권력과 타락한 욕망을 통렬하게 냉소하고 있다. 작품은 사건을 추적하는 여기자,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신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가톨릭 신자, 슬픈 과거의 아픔을 가진 성악가,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찍는 사진사, 고뇌하는 은둔 지식인 등 현실의 많은 ‘아바타’들을 실감나게 소화하고 있다.

뉴스와 사건을 추적해 온 저널리스트 출신다운 스피드와 박력이 있는 작품의 사건 전개는 언론의 생생한 특종(特種)기사나 탐사보도를 방불케 한다. 문학, 철학, 예술, 신앙 등에 대한 작가의 깊은 지식과 혜안이 소설 곳곳에 부드럽게 녹아 있어 소설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작가의 소설은 급박한 빅뉴스(Big News)이자 스케일이 큰 대형 연극(演劇)을 동시에 보는 느낌을 주며, 선악(善惡)의 이중적인 대결구조 속에서 허구의 사건(事件)들이 그야말로 ‘레알(Real)’하게 펼쳐진다.

소설의 순수하고 착한 주인공들은 현실에서처럼 야심만만한 후안흑심(厚顔黑心)의 인간들에게 모두 패배하지만, 은빛 까마귀가 언젠가 고향으로 도래하듯 아름답고 현명한 은자(隱者)들의 귀환-큰 바위 얼굴-을 암시하고 예언한다. 은빛 까마귀는 어두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언젠가 새벽이 오면, 언젠가 좋은 날들이 오면, 우리가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색 하늘을 여명처럼 날아가는 은빛 까마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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