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인문학, 닭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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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인문학, 닭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들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15.02.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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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8>

 


닭은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 오덕 갖춘 존재
목계는 심중무검(心中無劍)의 경지에 달한 인물 상징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가 되지 않는다


치킨게임은 누가 먼저 치킨(겁쟁이)이 되느냐를 겨루는 게임이다.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멈추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게임이론이다. 1950~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꼬집는 국제정치학 용어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도 인용된다. 파산을 감수하고 생산을 확대하는 기업의 사례도 치킨게임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이 주연한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처럼 갈 때까지 가는 자동차 게임도 전형적인 치킨게임의 일종이다.

이런 치킨 게임의 반대편에는 목계(木鷄)가 있다고 볼 수 있다.《장자(莊子)》<달생편>에 목계(木鷄)가 나온다. 목계는 나무로 만든 닭을 말한다. 사람으로 치면, 흔히 덕(德)이 완숙하여 바보처럼 보이는 존재를 비유한다. 마음에도 칼이 없는 상태, 칼이 없어도 악한 자를 벨 수 있다는 심중무검(心中無劍)의 경지에 달한 인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옛날에 투계(鬪鷄)를 아주 좋아했던 왕이 투계 전문가에게 싸움닭을 기르게 하여 훈련을 맡겼다. 며칠 후 왕이 닭이 지금 싸우러 나가면 어떠냐고 묻자 “아직 아닙니다. 허세로 교만합니다.” 10여일이 지나 다시 묻자 “아직 안됩니다. 다른 닭을 쳐다보고 노기(怒氣)를 띱니다.” 다시 10여일이 지난 후 왕이 준비되었냐고 묻자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기색이 변하지 않고,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木鷄) 같습니다. 그 덕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승리는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온다고 말하는 고수들이 많다.

살아가면서 어떤 극단적인 선택들은 끝이 좋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좋지 않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경계를 우리는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내가 어디에 처하리오. 아마도 재(才)와 부재(不才), 현(賢)과 불현(不賢), 지(智)와 우(愚), 귀(貴)와 천(賤) 사이인가 보오. -유몽인(1559~1623)

처신하는 것은 청탁의 중간에 있어야 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빈부의 중간으로 해야 하며, 벼슬살이 하는 것은 진퇴의 중간에 있어야 하고, 남과 사귀는 것은 깊고 얕음의 중간으로 해야 한다. -성대중(1732~1809)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 쓴다. -장상영(송나라 승상) 청마 유치환 선생(1908~1967)은 수상록《예루살렘의 닭》(1953년 발간) 표제시에서 노래한다. “오늘도 너는 조소(嘲笑)와 모멸로써 침 뱉고 뺨치는 위선의 선(善)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함으로써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성에 밝은 제 울음을 크게 홰쳐 울고. 내 또한 무력한 그와 나의 비굴(卑屈)에 대하여 죽을 상히 사모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써 베개 적시노니.”

닭은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새로 보인다. 능력이 있으나 그것을 차츰 포기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닭은 날지 않는다. 차라리 급하게 뛰어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진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닭의 운명은 달걀 속의 DNA 정보가 결정한다는 유력한 견해가 존재한다. 닭은 영양을 제공하는 식품으로 각광을 받아 ‘공장형 농장’에서 대량 사육되면서 거의 복제 닭 수준으로 유전자의 다양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닭 소비량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상당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된다.

가계유식화탕근(家鷄有食火湯近)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量天地寬). 집에서 기르는 닭은 쉽게 모이를 먹을 수 있지만 펄펄 끓는 탕수가 늘 가까이 있고, 학은 천지에 식량을 대주는 이 없으나 자유롭게 마음껏 날 수가 있다. 닭의 길인가 학의 길인가. 과연 무엇을 택해야 현명하다 할 것인가.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계충득실(鷄蟲得失). 닭이 벌레를 쪼고 사람이 닭을 잡아먹는다. 득실이 다 같이 작다는 뜻이다.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가 되지 않는다. 출전은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말과 같다. 자립의 뜻을 강조하는 말이긴 하나, 어느 쪽이 실제로 나은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산으로 가고, 어떤 이는 바다로 간다. 삶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하나의 기준으로 세상과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또 내가 과연 무엇을 가장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나 남들이 평가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자신(自信)을 할 수가 없다. 모름지기 우리는 겸허한 것이 낫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 비웃고/세상 사람들은 나를 졸렬하다 비웃지만/내가 어리석지 않으면 네가 어찌 지혜로우며/내가 졸렬하지 않으면 네가 어찌 치밀하랴. -정윤해(鄭允諧, 1553~1618) 닭은 한나라 고서《한시외전(韓詩外傳)》에 따르면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의 오덕(五德)을 갖춘 존재라고 예찬한다. 닭의 벼슬은 문인들이 쓰던 관(冠) 모양으로 입신양명의 출세를 뜻하는 문(文)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발톱은 날카로운 무기의 형상으로 무(武)를 나타낸다. 용(勇)은 닭이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습성을 말한다. 인(仁)은 모이를 식솔들과 함께 나눠먹는 습성에서 보인다. 독식(獨食)을 하지 않고 나누는 것이 인이다. 신(信)은 새벽이 되면 언제나 어김없이 목청껏 아침을 알리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종(북송 제8대 황제, 1082~1135)도 <부용금계도(芙蓉錦鷄圖>에서 읊었다. 만발한 가을 국화 (秋頸拒霜盛)/높은 볏의 금계 (峨冠錦羽鷄)/알겠구나, 이미 오덕을 갖추어 (己知全五德)/오리와 갈매기보다 태평스러운 것을 (安逸勝鳧?). 군계일학(群鷄一鶴). 출전은《진서(晋書)》<혜소전(嵆紹傳)>. 많은 닭 중에 한 마리 학. 많은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백미(白眉), 출중(出衆), 발군(拔群), 철중쟁쟁(鐵中錚錚), 학립계군(鶴立鷄群)이 비슷하거나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군계일학이 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평범한 우리는 ‘군학일계(群鶴一鷄)’의 의미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떤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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