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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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3>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6.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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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미나릿길 골목에 서면 옛 추억이 생각나네

‘그 옛날 이 곳은 실개천 주변에 미나리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곳입니다. 여기저기 흐드러져 있던 미나리는 실개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지고, 골목과 우리들만 남았습니다. 담벼락과 골목 모퉁이는 시간이 멈춘 듯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두웠던 회색골목이 하얀 도화지벽으로 바뀌고, 그 위에 형형색색 벽화가 그려지면서 골목 담벼락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 골목사람들은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펼쳐 꿈을 키워가게 되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우리 골목길, 오가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우리골목길...’

 

 

천안시 중앙동은 도심재생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추억의 미나릿길 벽화마을’을 새롭게 조성했다. 250여점의 벽화에는 부조 및 파타일 형태의 용 벽화와 사계절 풍경, 12띠 벽화, 옛 날의 삶의 모습과 추억이 담긴 벽화마을에는 평일에도 전국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말에는 연인들과 가족단위 방문객 등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벽화마을을 찾아오면서 천안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 중앙동이 ‘추억의 미나릿길 골목여행’이란 주제로 추진한 골목길 벽화마을 골목 입구에 있는 글이다. 이 사업은 노후화로 인해 어두운 분위기 골목길을 테마가 있는 ‘녹색 골목길’로 바꾼 사업으로, 8개 자생단체 회원, 미술전공 아르바이트 대학생 20여명이 참여해 삼복더위에 비지땀을 흘렸다고 한다. 참여한 사람들이 흘린 비지땀 방울만큼이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길을 찾고 있다. 1940∼50년대의 골목길과 주변의 집들까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중앙동 미나릿길은 옛 원성천변에 가득했던 미나리꽝을 추억하며 동네 개구쟁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고즈넉한 시골풍경 등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벽화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7개 벽면에는 트릭아트 포토 존을 조성해 놓았다.

천안시 중앙동 17~18통 일대는 2년 전만 해도 좁고 지저분한 골목이 얽히고설킨 낙후된 지역이었다. 낡고 허름한 골목길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 2012년 도심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통장협의회, 노인회 등 지역 주민단체와 공무원, 전문 업체, 아르바이트를 자청한 벽화 동아리 미술학도들이 힘을 합쳤다. 쓰러져가던 담벼락을 복구하고 바닥은 옛날 골목길처럼 황톳길로 단장했다. 담장에는 예쁜 벽화를 그려 넣어 확 달라진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벽화가 그려진 담장 길이는 무려 800여m에 이른다. 전문가의 손을 빌린 트릭아트 8점을 비롯해 다양한 테마의 벽화가 오밀조밀 미로를 이루어 옛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현장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되돌아 보며,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돌아보기에 좋은 길이다.

골목마다 서로 다른 테마의 그림은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심과 흥미를 끈다. 다른 벽화마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재미있는 트릭아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하철로 쉽고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은 미나릿길이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에서 왔다는 유아무개(70)할머니는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천안역까지 2시간 걸려서 왔다”며 “요즈음 안양, 수원, 평택을 지나 천안으로 이어지는 전철이 있어 마치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들이 가는 느낌이라, 멀리 가기엔 부담스럽고 여행 기분은 내고 싶을 때 이용하기 딱 적당한 곳이 천안, 아산이어서 자주 내려오는데, 오늘은 벽화마을을 찾았다”고 설명하고 “옛 추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골목사람들은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펼쳐 꿈을 키워
1940∼50년대 골목길과 집들도 원형 그대로 간직

미나릿길 골목여행은 중앙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한다. 주민센터 뒤편 남산목공소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벽화골목 출발점을 알리는 안내판과 일러스트 지도를 볼 수 있다. 이어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트릭아트의 하나인 ‘겨울 빙하시대’가 출발점에서 춘하추동 사계를 표현한 산수화 골목을 지나면 8점의 트릭아트 중 첫 번째로 ‘겨울 빙하시대’ 그림이 나타난다. 평면회화인 북극곰과 펭귄을 3D처럼 입체감 넘치게 표현했다. 양쪽 벽면이 눈과 얼음으로 가득 채워져 한여름에도 으스스 추운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만 같다. 미나릿길에서는 이밖에도 사슴, 호랑이, 판다, 독수리 등의 트릭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각각의 그림을 가장 실감나게 촬영할 수 있는 위치와 방법을 안내하는 포토 존도 마련돼 있어 인기다. 골목이 하도 복잡해 마구잡이로 돌아다녀서는 본 곳을 또 보거나 놓치기 십상이다. 방법은 바닥에 적힌 번호를 따라가는 것이 지혜라면 지혜이고,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주요 갈림길마다 1번부터 16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고, 되돌아서야 할 지점에는 친절하게 유턴 표시까지 해두었다.

골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열두 띠 이야기, 천안의 명물 먹거리, 추억의 옛 거리, 풍속화, 자연, 인기 만화 캐릭터 등으로 계속 테마가 바뀌니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특히 추억의 옛 거리 테마는 젊은 층은 모르는, 어른들만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자극한다. 소독차를 좇아가는 아이들, 커다란 가위를 든 엿장수, 고무신을 들고 엿 바꿔 먹으러 달려오는 아이, 아이스케키 장수, 말뚝박기, 닭싸움, 고무줄놀이, 봉숭아꽃 물들이기 같은 그림 앞에 서면 어릴 적 골목길에서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걸 수 있는 사랑의 열쇠 ‘하트 철망’이 인기다.

충북 청주에서 50년 전 이곳으로 벽돌공으로 일하기 위해 왔다는 박평식(76) 노인은 “그 옛날 이곳은 전부 가게와 술집 등으로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여. 지금은 서부지역이 발전하면서 원도심 공동화로 썰렁 헤졌어. 옛날 이곳에 있던 실개천 주변에는 미나리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곳이여. 여기저기 흐드러져 있던 미나리는 실개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지고, 골목과 우리들만 남았지. 담벼락과 골목 모퉁이는 시간이 멈춘 듯 옛날 모습 그대로 담고 있잖여. 그런데 개발가능성이 없자 주민들이 이렇게라도 하자는데 동의했지. 어느 날부터 어두웠던 회색 골목이 하얀 도화지벽으로 바뀌더니, 그 위에 형형색색 벽화가 그려지면서 골목 담벼락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까 주민들이 찾아오고, 관광객들이 몰려서 주말에는 몇 천명은 몰려와. 사람 몰리는 걸로 봐서는 그 옛날 번창했을 때 같지. 주말에만 사람이 몰려도 골목사람들은 옛날처럼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펼쳐 꿈을 키워가게 되잖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에 모처럼 오가는 사람들이 붐비면서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골목길이 됐다니께.” 장탄식속에 그래도 희망 섞인 노인의 미소는 60~70년대 정겨웠던 이웃집 아저씨 그대로다.

골목여행을 마친 후에는 벽화마을과 연결돼 있는 전통과 인정이 살아 있는 전통재래시장인 ‘천안중앙시장’의 구경은 덤이다. 벽화마을 골목 건너편에 있는 시장에는 채소와 과일에서 생선, 의류, 잡화, 먹거리까지 없는 게 없는 대형시장으로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시장 구경 중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바로 싸고 푸짐한 먹거리. 떡볶이와 순대, 각종 튀김과 어묵을 가득 쌓아놓은 포장마차부터 호떡, 족발, 죽, 도넛, 뻥튀기, 센베와 옛날 과자, 찐빵, 만두까지 출출한 속을 달래줄 먹거리가 차고 넘친다. 여기에 정 넘치고 구수한 목소리의 충청도 사투리와 넉넉한 인심도 배를 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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