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말살한 옛 우리말 고유지명 되찾은 충북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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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말살한 옛 우리말 고유지명 되찾은 충북 청주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7.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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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충북 청주는 일제 잔재인 일본어 지명을 순 우리말 지명으로 바꾸는 등 우리말 보존운동을 왕성하게 펼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주문화사랑 모임이 큰 역할을 하고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단체로 눈길을 끌고 있다. 1992년 당시 10여명의 뜻있는 청주지역 인사들로 구성된 청주문화사랑모임은 창립 이후 한글 보존운동 등 지역의 문화 보존과 복원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오는 단체로 알려지고 있다. 이 단체가 그동안 중점적으로 펼쳐 온 대표적인 사업의 하나로 청주 지명에 남아 있는 일본어 지명을 우리말 지명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일제가 1911년 청주읍성을 헐고 본정통이라 불렀던 이름을 우리말 지명인 '성안길'로 바꿨다. 오른쪽 사진은 성안길의 뜻을 알리는 표지석.

청주문화사랑모임, 일제가 남겨놓은 ‘오정목 없애기 운동’ 펼쳐
일제가 바꾼 고유지명 성안길 되찾고 방아다리에는 지명비 세워
공청회·세미나·시민공모절차로 시민들 스스로 우리이름 되찾아

청주의 최대 도심은 성안길이다. 충청북도청 앞에 형성된 이곳은 청주읍성 안의 마을이며, 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청주읍성은 조선 성종 18년(1487년)에 높이 4m, 길이 1783m 규모로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부터 청주읍성을 기준으로 북문로, 남문로 등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일제는 1911년 4월 청주읍성을 철거한 뒤 이곳을 ‘본정(本町-혼마치)’으로 바꿨다. 해방 이후에도 본정이란 이름이 그대로 남아 ‘본정통’으로 불렸던 곳이다.

지난 1993년에는 당시까지 청주 시민들 사이에 널리 쓰이고 있던 일본어 지명인 ‘오정목(五丁目-고초메·청주시 상당구 중앙동 일대 도로의 명칭)’의 옛 지명이 ‘방아다리’라는 것을 청주문화사랑 모임의 회원들이 각종 사료와 고서 등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또 지난 1995년에는 시내 중심가를 가리키는 ‘본정통’이란 일본어 지명을 바꾸기 위해 수개월 동안에 걸쳐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칭 공모를 실시해 ‘성안길’이란 이름이 선정돼 바꾸기도 했다. 이렇듯 청주시는 이 단체의 노력의 결실인 ‘방아다리’와 ‘성안길’이라는 명칭을 받아들여 각각 지난 1997년과 도로명 변경 시에도 최종 도로명으로 확정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일본인들은 한글과 조선말을 강제로 없앴고, 심지어는 사람의 이름과 땅 이름(지명)까지도 모두 일본식이나 한자어 등으로 바꿨으며, 마을과 성곽을 없애 새로운 길들을 만들었다. 이는 지진이 잦고 습하며 고립된 섬나라라는 일본의 지정학적 한계를 벗어나 사계절이 뚜렷하고 땅이 기름지며 대륙으로 통하기 쉬운 조선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만대를 이어 살겠다는 그들의 숙원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충청도 청주 땅도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본보기가 되었던 곳이다. 청주 도심의 남북으로 길게 본정(本町)을, 동서로는 일정목에서 오정목까지 나누었고, 동편에는 신사(神社)를 지어 그들의 신(神)을 앉혔던 곳이다.

본래 본정통(本町通-혼마치)이란 말은 우리말에는 없는 말이다. 뿌리 본(本)에 밭두둑 정(町)이 붙은 한자말인데, 마을이나 거리 이름에 정(町) 자를 붙이는 경우는 일본식 한자말밖에 없다. 따라서 본정통은 일제시대에 처음 쓰인 말이다. 서울에서는 지금의 충무로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지역을 나타내던 말인데, 경성(일제시대 서울을 일컫던 말)에 진출한 상인들이 일본 공사관 주변에 모여 큰 상가를 이루고, 스스로 그 거리를 혼마치(본정;本町)라 불렀다. 옛 일본에는 혼마치(ほんまち)라는 지명이 흔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원래 마을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말에서의 ‘본(本)’은 ‘중심, 주가 되다’라는 뜻이고, ‘정(町)’은 ‘시내, 번화한 거리’를 뜻한다. ‘통(通)’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본정통(本町通)은 ‘번화한 도심의 중심 거리’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서울에서 제일 번화했던 일본인 거리를 본정, 또는 본통이라 했고, 이 두 말이 합쳐져 본정통이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충무로와 명동, 퇴계로에 이르는 중심 거리를 나타내던 본정통은 전국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각 지역의 중심도시인 부산, 경주, 익산, 군산, 목포 등의 거리에는 본정통이란 이름이 남아 있거나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근지역인 예산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예산시장에서 군청에 이르는 길을 본정통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청주가 본정통을 ‘성안길’로 고쳤듯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이나 옛 지명을 되찾아 우리의 혼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더하는 이유다.

 


청주문화사랑모임   ‘방아다리, 성안길’ 우리 고유이름 되찾았다

 

1993년 초 충북참여연대의 전신인 ‘충북시민회’의 회원들은 ‘문화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청주문화사랑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모임의 첫 사업이 일본인들이 만들어 부르다 남기고 간 ‘오정목 없애기 운동’이었는데 다행히 향토사학자, 교수 등의 도움으로 세미나와 공청회를 열 수 있었고, 바윗돌을 다듬어 뜻을 새 긴 ‘방아다리 지명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전했다.

옛 방아다리사거리 도로변에 세워진 방아다리 지명비<사진>의 앞면에는 “방아다리라는 고운 옛 지명을 다시 널리 부르고자 이 지명비를 세운다. 1993년 6월, 세운사람들 문화사랑모임”이라고 기록돼 있다. 뒷면의 세운 뜻을 보면 “이 곳은 교서천(청주향교의 서쪽 개울)으로 조선시대에 청주읍과 사주면(四州面)의 중간지점이며 주변에 논과 밭이 널려있고 방앗간이 있는 다리라 하여 방아다라라고 불리웠다.(한글학회 지음, 한국지명총람 충북편, 637쪽).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후 읍성을 헐고 행정명칭을 바꿈에 오정목, 오정목교라 하게 하였다. 해방 후 1947년 왜식동명 변경조치에 따라 이곳을 북문로 3가, 북삼교라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오정목, 오정목다리라 불러오고 있다. 이에 우리 문화사랑모임에서 바른 지명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방아다리라는 본디 이름을 찾게 되었다. 현재 이곳은 다리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1989년 교서천 위를 덮어 도로를 넓힌바 도로가 곧 다리이니 방아다리라는 본디 이름이 더욱 뜻 깊다 하겠다.”라고 적고 있다.

청주문화사랑모임 정지성 회장은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본정통이란 이름을 쓰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전제하고 “당시 성안길과 함께 청풍, 청명, 단재로 등의 후보군이 있었지만 성안에 있는 마을·길이란 뜻을 지닌 성안길이 최종 선정됐다”고 밝히고 “지난해에는 성안길 지명을 찾은 지 20년을 맞아 한글날 성안길에서 아름다운 서체로 옮기는 글씨쓰기 백일장, 한글 글씨 멋 내기, 한글 역사·맞춤법을 겨루는 우리말 겨루기대회 등을 열었다”고 설명하고 “성안길 상점들의 간판을 대상으로 우리말 좋은 간판을 뽑는 행사 등도 가졌다”고 말했다.

지난 1994년 청주문화사랑 모임은 1993년에 세운 ‘방아다리 지명비’의 전과(戰果)를 앞세워 청주시민들이 무심히 입에 달고 다녔던 본정통(本町通)도 없애게 됐다고 한다. 이를 위해 회원들은 공청회와 세미나를 열었고, 시민공모절차를 거쳐 마침내 ‘성안길’이라는 우리의 고유 이름의 지명을 찾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청주는 시민들의 힘으로 일제가 바꾼 본래의 고유지명을 되찾은 대표적인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제에 의해 빼앗긴 고유지명을 되찾는 일이 광복 70년을 맞은 오늘 후손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광복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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