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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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7>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8.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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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세월 흐르는 광주 양림동 골목길 ‘관광객 북적’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100년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근대 역사의 보물창고다. 100년 전이면 일제강점기(1910∼1945)지만 이 마을에는 의외로 일제 잔재보다 서양 선교사 흔적이 더 많다. 2015년, 올해로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양림동 골목길이 있는 광주 남구는 ‘2017년 올해의 도시’로 선정돼 앞으로 3년간 대대적인 변신을 노리고 있다. 양림동은 특히 한국 특유의 감성인 ‘정(情)’을 느낄 수 있는 ‘영국 에든버러시’를 꿈꾸며, 2017년까지 매년 달라지는 양림동 골목길의 모습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림동은 100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이기도 하다. 1911년 건립된 수피아홀과 1920년대 지은 윈스보로우홀이 있는 수피아여학교를 비롯해 근대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양림동 골목길 투어를 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곳에 100년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일선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한 윌슨 선교사 자택과 19세기 초에 지은 전통 한옥들이 공존하는 매력이 남다르다. 이 골목길의 특징이 무엇이며, 어떤 매력이 있어 관광객들이 이렇게 몰릴까.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현장에서 살아있는 골목길의 답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의 골목길이 시작되는 지점의 광주문화재 돌봄사업단 양림동 사람들.

양림동 골목길의 모습 색다른 역사문화 흔적 느낄 수 있어
광주 최초로 100년 전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유입구
전통과 근대 어우러진 역사문화예술의 보고, 생명존중 현장
소중한 가치인 근대 역사문화를 허물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

광주 최초로 100여 년 전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유입구이자, 생명존중사상을 싹틔웠던 광주정신의 발현지이며,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역사문화의 보고이자 현장이 바로 광주 남구 양림동이다.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양림이라는 이름은 산 능선이 밖으로 뻗어나간다는 ‘버드름’(뻗다+으름)이라는 지형을 빗댄 말이라고 한다. 버드름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말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양림(楊林)’이 됐다는 설명이다. 양림동은 광주 선교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근대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회는 기독교 복음을 목적으로 양림동 일대에 ‘광주 선교부’를 설립했다. 현재 호남신학대 일대인 선교사 거주 지역에 유진벨(Eugene Bell, 배유진), 오웬(Owen, 오원) 등 선교사들이 상주하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남신학대 일대는 해발 108m로 광주읍성 바깥쪽인데다 땅값이 저렴해 선교사들은 이곳에 터를 잡았고, 그로 인해 도로, 집 등이 건축되며 양림동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광주의 예루살렘’ 또는 ‘서양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양림동은 기독교촌으로서의 특색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교회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들을 만들었고 이는 수피아여중·고, 기독간호대학, 호남신학대학교로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양림동 골목길의 무인 카페 다형다방. 다형은 김현승 시인의 호.

호남신학대 뒤편에 있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22명이 묻혀 있는 양림산(선교동산) 선교사 묘역은 100년이 넘도록 당시 선교사들의 활동 흔적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다. 순교한 선교사들의 묘역으로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드문 이곳에는 유진 벨 선교사와 호남 최초의 의료선교사인 오기원씨 등이 안장돼 있다. 또 6·25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들의 보육 장소였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1910년대 건립)과 1909년 순교한 선교사 오웬 기념관, 네덜란드 건축 양식의 수피아여고홀(1911년 건립) 등 한국교회 초기 유적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이와 함께 1906년 배유지 선교사 임시 사택에 제중원이 설립되면서 광주 근대 의료가 시작됐던 ‘광주기독병원’과 호남신학대 선교동산,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생가,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다형 김현승 시인의 시비도 잘 보존되고 있다. 이밖에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로 불린 최흥종 목사와 농민운동에 앞장선 고든 어비슨 등과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 거리와 함께 여러 문인들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유적지 주변에는 400년은 족히 넘은 호랑가시나무숲과 참나무, 도토리나무가 군락을 이뤄 도심 공원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양림커뮤니티센터 전경.

광주 양림동의 역사문화마을 사업은 단계별로 나뉘어 총 사업비 307억 원(국비 127, 시 127, 민자 53)을 들여 시작됐다. 1~2차 사업은 완료됐지만 오히려 양림동의 문화를 파괴하고 행정적인 시각으로 개발한다는 혹독한 비판이 뒤따랐다. 따라서 3차 사업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3차 사업에는 마을주차장 조성, 커뮤니티 센터 건립, 전시공간 및 공공디자인 사업, 양림역사(문화)길 조성, 공동체 회복 사업 등으로 154억 원이 투입됐다. 3차 사업의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커뮤니티센터 건립과 마을주차장 조성 사업은 업체의 부도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어 차질을 빚기도 했다고 전한다. 광주시는 양림치안센터 뒤편에 위치할 이 주차장을 총 80억 원을 들여 124면 지상 2층의 철골 주차장으로 지으려했다. 그러나 철골 구조물은 양림동의 역사문화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역주민과 양림동 예술가들로부터 비판의 화살이 거세게 쏟아졌다. 더군다나 양림동 입구에 위치해 있어 처음 양림동을 방문했을 때의 첫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철골주차장은 마을 경관을 해친다는 것이 반대의 골자였다. 결국 광주시는 추진하려던 사업을 전면 백지화 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해 재검토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차장을 2층으로 지으려던 것을 대신해 지하1층과 노면 주차장으로 바꾸는 등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친환경 콘셉트로 건립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건축면적 208.80㎡, 연면적 3375.24㎡으로 건립될 주차장은 지하 1층 70대, 지상층 54대 총 124대의 주차면적을 가지는 주차장으로 건립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굿모닝양림 한희원 추진위원장은 “남아있는 한옥들이 있는데 양림동에 살았던 인물을 하나하나 조명할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양림동의 역사를 살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그러나 시에서는 역사문화와 관계없이 1~2차 사업을 행정적, 건설적 사고로 근대역사마을을 만들어버리고, 양림동과 관계없이 결과물을 내놓을 만할 시설만 짓기 위해 급급했다”고 말했다. 또한 말끔해진 양림오거리 인근에 위치한 커뮤니티센터도 완공이 됐지만 역시나 말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2월 시작된 커뮤니티센터 건립은 42억 원(보상비 8, 공사비 34)의 예산을 들여 공연장, 예술인사랑방, 작은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등 지하2층, 지상4층 건물로 현재 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이처럼 근대역사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오늘에 맞게 살리고자 30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작하게 된 조성사업이 행정적, 토건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지적에 주목한다. 양림동에 남아있는 소중한 가치인 근대 역사문화를 허물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 사업’이 진정한 양림동의 근대역사문화를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때인 듯싶다. 양림동만의 독특한 역사문화마을을 조성해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양림동을 찾을 수 있는 꺼리를 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장년층에게는 어릴 때 뛰어놀며 자랐던 골목길에 대한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에 대한 신선함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양림동이 문화와 예술, 역사와 자연이 소통하고 시간의 축적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하나의 보물상자 같은 곳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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