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성지, 노근리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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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성지, 노근리평화공원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0.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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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평화인권공원(가칭) 어떻게 조성해야 할까? <5>
▲ 영동군의 노근리평화공원 전경.

미군, 1950년 7월 26일 사람들 쌍굴에 가둔 채 총 쏘기 시작해
미국 AP통신, 미군이 300명의 민간인 학살한 노근리사건 보도
학살의 진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정은용씨 2014년 세상을 떠나
노근리평화공원, 인권신장·세계평화 기여 역사현장 자리매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평화공원이 평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성지로 자리 잡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민간인들은 포화를 피해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난 7월 25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도 500여명의 피란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안내를 받아 경부선철도 쌍굴다리로 향하고 있었다. 순간 느닷없이 미군 전투기에서 기관총이 발사되면서 피란민들이 하나둘씩 피를 흘린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들의 넋을 기리고, 전쟁의 아픔을 삭여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승화시킨 곳이 노근리평화공원이다. 노근리평화공원은 국비 191억 원을 들여 13만2240㎡의 터에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과 평화기념관(1500㎡), 강의실·숙소 등이 있는 교육관(2046㎡), 조각공원, 야외전시장 등을 조성했다. 야외에는 지난 1940∼1950년대 미군의 주력 전투기로 당시 피란민을 폭격한 전투기와 동종인 F-86 F기와 미군 트럭(K-511)과 지프(K-111) 등 군사 장비도 전시하고 있다.

이렇듯 ‘노근리평화공원’은 제주도에 있는 ‘4·3평화공원’과 함께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곳이다. 전쟁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숨져 간 넋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아야 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만들어 주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 평화기념관 지하 1층에 들어서면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경과를 영상과 모형으로 복합 연출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경부선 철도 모형과 쌍굴다리 인근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물도 전시돼 있다. 또 당시 사건의 전모와 피해자, 미군 가해자 인터뷰 등을 담은 15분짜리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다.

 

▲ 민간인 학살 사건의 발원지인 경부선 쌍굴다리.


■미국 AP통신 ‘노근리 다리’ 보도로 파장
이곳 노근리평화공원의 방문객을 위한 영상물에는 “살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던 피란민들의 발걸음은 노근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1950년 7월 26일 정오 무렵, 미군은 그렇게 사람들을 쌍굴에 가둔 채 총을 쏘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중 몇몇 건장한 남성들은 어둠을 틈타 가족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탈출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쌍굴에는 많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미군의 공격에 힘없이 죽어갔다. 믿을 수 없게도 총격은 3박 4일 70여 시간 동안이나 계속됐다….”(노근리 평화공원 상영물 자막 내용 중에서)

또한 평화공원기념관 지상 1층에는 이 사건을 처음 알린 AP통신의 취재 과정과 국내 매체들이 집중 보도한 내용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지난 1999년 9월 29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은 ‘노근리 다리(The Bridge At No-Gun-Ri)’라는 제목을 달아 미군이 약 3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노근리 민간인(양민) 학살사건’을 보도하면서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취재기자들은 이 기사로 1년 뒤에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이 기사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미군의 만행이 알려졌고 한·일 공동조사까지 추진됐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조사에도 불구하고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지시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미군의 잘못이 기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25~29일 남으로 내려오던 피난민 약 300명은 충북 영동군 노근리 쌍굴다리(경부선 철로) 인근에서 무참히 살상을 당했던 것이다. 북한군을 막기 위해 주둔하던 미군 제1기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북한군이 피난민에 숨어 있다”며 피난민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들은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무조건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명령에 따라 피난민에게 전투기 폭격을 가하고 기관총을 난사했던 것이다. 쌍굴다리로 몸을 피하는 피난민들을 쫓아가 무참히 사살했던 것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은 지금까지도 쌍굴다리에 남겨진 총탄의 흔적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특히 피해자들은 속속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곳의 학살의 진상을 처음 세상에 알렸던 정은용 씨도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2014년 AP통신은 정은용 씨를 ‘올해 사망한 주요인물’로 꼽기도 했다. 당사자 대다수가 사망한 데다 가해자의 은폐로 알려지지 않던 이 사건은 고 정은용 씨의 진술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정씨는 1960년 주한미군소청사무소에 손해배상·공개사과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지만 기각 당했다. 하지만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한국정부는 물론 국내외 언론 등과 꾸준히 접촉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정은용 씨는 지난 1977년 10월에는 노근리 사건을 다룬 중편소설 ‘버림받은 사람들’을 발표했으며, 지난 1994년 4월 유족들의 이야기를 묶은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서 이 사건이 비로소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계기가 됐던 것이다. 정은용의 아들인 정구도 씨는 현재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쌍굴다리 벽면에 남아있는 당시 미군이 쏜 총탄 흔적들.

■노근리 쌍굴다리 민간인학살사건 발원지
이곳 노근리평화공원 기념관에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각각 노근리 사건 진상 조사를 하는 과정과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는 모습도 연출돼 있다. 국회에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내용도 설명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과 유사한 국내외 전시관들의 정보와 세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세미나 참가자 등을 위해 70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2∼20인실)도 마련돼 있다. 방 하나에 하루 2만∼20만 원씩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영동군은 방문객을 위해 추억의 생활전시관과 외국어 음성 안내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시설을 보강 중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평화공원 근처의 쌍굴다리는 사건의 발원지이기 때문에라도 반드시 들러야 할 필수코스다. 지난 1934년 길이 24.5m, 높이 12.25m로 가설된 이 쌍굴다리 교량은 2003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59호로 지정됐다. 2010년에는 이곳을 소재로 한 영화 ‘작은 연못’이 개봉되기도 했다. 지난 1999년에는 철도공사가 상판 갈라짐과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1.2cm 두께의 시멘트를 덧씌웠다가 탄흔의 은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동군은 지난 2011년 이 다리 교각 안쪽에 덮어씌운 시멘트를 일일이 손으로 긁어 낸 뒤 탄흔을 찾아 보존 처리했다. 정구도 이사장은 “노근리 평화공원은 전쟁의 참상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곳이자 인권 신장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근리평화공원 전시관 모습.

지난 2011년 문을 연 이후에 노근리평화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아픔의 역사를 기록한 이곳이 이 땅에 영원한 평화와 자유를 소망하는 제단(祭壇)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노근리평화공원은 지난 2009년에 노근리 역사공원에서 평화공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평화와 인권이 자유와 민주의 근간이 된다는 진리를 새롭게 깨달아, 다시는 참혹한 전쟁을 겪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헌신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 평화공원의 위령탑에서는 해마다 6월 25일에는 6·25한국전쟁 중 억울하게 숨진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노근리 사건의 희생자는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해 63명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4년만인 지난 2004년 ‘노근리사건 특별법’이 제정됐다. 전쟁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숨져 간 넋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아야 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만들어 주는 교육의 현장이 바로 ‘노근리평화공원’이다. 흐른 세월의 아픔만큼이나 앞으로의 시간을 향해 어느덧 이곳은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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