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잇는 딸의 자랑스러움과 어머니의 여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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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는 딸의 자랑스러움과 어머니의 여유로움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1.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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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는 청년, 청년CEO,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15>

미다헤어리더 이혜영 실장
샴푸 후 드라이어로 손님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이혜영 실장.

여자들이라면 반드시 가는 곳 중 하나가 미용실이다. 아무리 화장을 잘 하고 옷을 잘 입었다 하더라도 머리가 엉망이면 볼썽사나운 꼴이 되고 만다.

지금의 미용실은 먹고 살기 위해 하던 그런 곳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가는 곳이 되었으며, 미용사들 또한 헤어디자이너 혹은 헤어리더로 불린다.  미다헤어리더의 이혜영 실장(41)은 어머니인 김인수 원장(72)의 뒤를 이어 미용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대학에서는 관광학을 전공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실습을 나갔어요. 여행사로 갔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는 좀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 때 마침 엄마가 이쪽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고 잠시 고민을 했죠.”

둘째딸인 이실장은 자신의 가르마 한 번 제대로 탈 줄 모르고, 머리도 한 번 길러 본 적 없으며, 엄마가 미용실을 운영할 때도 장난삼아라도 미용을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막내딸이 마네킹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것을 좋아해 당연히 막내가 이 일을 하리라 생각했다.

“원장님이 워낙 이 일을 하면서 즐겁게 하시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외향적이세요. 아마 그런 부분이 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뒤늦게 입문했지만 이실장은 각종 대회에 상을 휩쓸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런 그녀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것은 섬세함이나 기술력보다는 손님들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사실 대회에서 상을 받은 헤어스타일을 우리가 평상시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잖아요? 커트와 퍼머 등 다른 관리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씩 서울로 올라가 대학원 연구생들이 만든 모임을 다니며 손상모발복구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실 저는 손재주가 없어요. 100%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거죠.”

이실장의 명성을 듣고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만 갔다. 특히 이실장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손님들로 인해 이실장은 육체적 피로와 손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5년 전부터 예약제 운영으로 바꾸었다.

“사실 제가 막 수다스러운 타입도 아니고 머리를 만지면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머리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또 손님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 번 더 손이 가야할 부분을 놓치는 것 같더라고요. 예약제로 하니 그 분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은 힘든 직업 중 하나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해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고, 오래 서서 일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 늘 파스를 붙이고 살며, 손님들에게 응대를 해야 하다 보니 감정노동자의 피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저희 원장님은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하시겠다는데 저는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웃는 이실장에게는 가업을 잇는 딸의 자랑스러움이, “이실장 딱 하루 쉬는 날에는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러 다녀요”라고 말하는 김원장의 얼굴에는 노련함과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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