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옆을 지켜가는 대한인쇄소의 아들입니다”
상태바
“아버지 옆을 지켜가는 대한인쇄소의 아들입니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0.13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업을 잇는 청년, 청년CEO,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10>

대한인쇄소 권주봉 실장
대한인쇄소 권주봉 실장.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많이 팔리건 적게 팔리건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양식이 되어 포동포동 살을 찌우게 만드는 것이 책이다.

요즘은 전자책이 앞으로의 종이책을 압도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종이책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바스락거리는 종이책을 읽는 맛은 그 어떤 무엇도 대체 불가능하다. 책을 이야기하면서 인쇄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매년 9월 14일은 인쇄문화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1936년에 조선서적주식회사가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 인쇄공장을 신축하고 2색 오프셋 인쇄기, 2색 활판기, 자동접지기, 자동장합기 등의 시설을 최초로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인쇄 전성기가 오게 된다.

홍성에 대한인쇄소를 처음 만들었던 권병종 씨 역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군청에서 인쇄물 시장을 접하고 서울과 홍성을 오가며 인쇄를 배워 1977년에 대한인쇄소라는 이름의 사업장을 냈다.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해 오롯이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만 일구어낸 일이다. 이  곳을 남에게 넘기기는 너무 아까웠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그런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레 내비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대한인쇄소 권주봉 실장(32)은 그렇게 가업을 이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잠시 도와드리다가 대학 4학년부터는 아예 취업계를 내고 인쇄소에서 일을 했다.

“저 초등학교 다닐 때도 가끔 도와드린 적은 있어요. 그 때는 어머니도 같이 하셨는데 지금은 안 하시죠. 옛날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으니 그만큼 사람 손이 더 많이 필요했으니까요.”
인쇄소 일은 거의 대부분이 관공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충남도청 이전이 권 실장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반가운 일이다.

“인쇄를 하는 입장에서는 참 많이 도움이 되죠. 한편으로는 도청 이전에 따라 대전에 있던 인쇄업체들이 홍성으로 오면서 경쟁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
바쁠 때는 기사를 도와 직접 인쇄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영업과 납품을 주로 한다. 그럴 때는 젊음이 무기가 된다. 하긴 젊음만큼 큰 무기가 또 어디 있을까.
흔히들 인쇄 시장이 이제 사양 산업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주변 친구들의 우려와 걱정이, 취업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는 했다.

“어떤 일이든 장·단점이 있죠. 아버지가 해오시던 일이니 더 부지런히 배워서 앞으로 인쇄와 디지털 분야로 세분화해 사업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아버지 옆에서 돼지본드 냄새를 맡고 자란 소년이 성인이 되어 늙은 아버지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만은 않다.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종이 밥을 먹었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인쇄소 아들이 되었고 후회는 없다.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자식에게 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어야 하고, 아버지에게 자식은 앞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돼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권 실장은 돼지본드 냄새를 맡으며 묵묵히 아버지 옆을 지킬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