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최고의 날들을 만들어 가는 삼화페인트
상태바
가족과 함께 최고의 날들을 만들어 가는 삼화페인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1.07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업을 잇는 청년, 청년CEO,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13>

삼회페인트 황규범 이사
현장 작업 도중 자신의 가게에서 포즈를 취한 황규범 이사.

페인트의 역사는 무려 10만 년 전으로 올라간다. 붉은 흙이나 황토에 숯 등을 섞어 벽화를 그리는데 사용했으며, 이집트에는 2000년 전에 사용한 페인트의 색감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남아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 처음 도료가 들어온 것은 1400년 전으로 불구 제작에 필요한 도금기술이 옻칠기술과 함께 들어왔다. 지금의 현대적인 페인트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다. 현대에는 친환경페인트, 에폭시, 황토페인트 등 종류도 수백 가지에 이르며 그 질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셀프인테리어가 늘어나면서 페인트를 사용하는 사람도 대폭 늘어났다.

36년 전에 홍성에 삼화페인트라는 상호를 걸고 페인트를 시작한 황유성 씨는 더 이상 젊은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문을 닫을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같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도 이미 환갑을 넘었다.

마침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큰아들 황규범(34) 이사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에서 호텔관광학을 전공하고 전역 후 취업을 했는데 유학을 다녀오지 않는 이상 전망을 확신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방세, 식비, 교통비 등을 해결하고 나면 수중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2007년에 홍성에 다시 내려온 황이사에게 아버지는 붓과 로울러를 손에 쥐어주었다. 페인트 가게를 하려면 현장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릴 적 틈틈이 아버지 일을 도와드렸기에 큰 어려움 없이 현장에 적응해갔다. 다만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는 것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이야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현장 갈 준비를 챙기는 황이사다. 이제는 아버지가 직접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믿고 맡기는 든든한 파트너다. “가족과 함께 일하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저도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얼마 전부터는 동생인 황규덕 씨도 이 일에 합류했다. 황이사가 여러 차례 눈 수술을 받으면서 중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있던 동생도 자연스럽게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동생이랑 저 둘 다 도장기술자격증에 합격을 해서 단종면허를 준비해 사업체를 다시 등록할 생각입니다.”
올해 7월에 지금 자리로 이사를 와서 새로 리모델링을 하고 페인트 조색 기계도 새로 들였다.

“페인트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거라 생각해요. 홍성만 해도 페인트를 새로 해야 할 곳이 많잖아요.”

인테리어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페인트다. 실내뿐 아니라 실외에도 페인트는 다양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페인트의 수명은 3~4년 정도다. 그러니 한 번 칠을 한 곳에는 다시 페인트를 해주어야 한다. 젊은 페인트 기공 황이사의 손길이 바빠지는 이유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중 일부다. 황이사의 최고의 날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앞으로의 날들일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