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보다 농업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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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보다 농업이 더 재미있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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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7>

금마면 봉서리 이을숙
송화버섯 재배 시설에서 만난 이을숙 씨.

큰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살아서인지 자연친화적인 성격의 아이는 두 달 이상 시골에 가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우울해했다. 어느 날 고구마 밭에 들어간 아이는 오전 9시에 들어가 오후 5시까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흙에 얼굴을 대보고 공기에서 물방울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시골은 건희가 착한 일을 많이 안 해서 못 오는 거야?”
“아니야, 우리도 내려와 살 수 있어.”
“그럼 언제 가?”
“건희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이후 아이는 단 한 번도 시골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3학년이 된 그 해 3월 2일 건희가 물었다. “엄마, 우리 몇 월에 가?” 그리고 4월 홍성에 내려왔다. 아무 대책 없이 내려온 도시여자, 이을숙 씨는 이제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농부가 됐다.

“마침 도시에서 사람에게 시달리는 것이 싫을 때도 됐고, 그 6년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희망의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바로 시골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농사만큼 치열한 것이 없었다. 이 씨는 주변의 상관을 전혀 받지 않는 작물로 작두콩을 선택해 가공식품으로 개발, 작두콩차를 만들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계절 작물로 수박과 배추 농사를 짓고 일 년 농사로 송화버섯을 재배한다.

“어차피 불편한 것이 익숙한 것이 되게 하자는 마음으로 내려왔고, 농사는 시간 싸움이다. 어느 날 아들이 관공서에 갔다가 ‘엄마 뭐 하시니?’ 물었는데 ‘우리 엄마는 농부에요.’ 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그것이 지금까지 버티어 온 힘이고 자부심이다. 직업이 바뀌었으니 전투적일 수밖에 없다. 난 그렇게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나누는 얘기들이 왜곡되는 시간을 가지는데 풀은 그리고 작물은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데 무조건적으로 주기만 하더라. 맹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을 인생에서 처음 만났다.” 
이 씨는 농사보다 농업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들이 나한테 농사짓는 것을 보고 왈가닥이라고 한다. 나는 풀도 잘 안 매고, 제초제도 안 쓰고, 약도 안 하고, 싸돌아다닌다. 예를 들어 겨울장화를 벗을 때 내피가 딸려오는데 내피가 쓸려나오지 않는 방법을 개발하면 그것이 농업이다. 농사보다 농업이 더 재미있다. 발전시킬 수 있는 잔가닥이 많고,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기획하면 나 같이 농사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할 수가 있다. 시골은 할 것이 없어 농사나 지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이 씨는 소통을 하기로 했다.

“내가 키운 수박과 양배추가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크고 깨끗하지는 않다. 그런 좋은 상품 속에서 내 작물이 경쟁을 해야 한다면 나는 세월과 시간과 스토리를 공유하겠다고 생각했다. SNS를 활용해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직업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뿐이다. 적어도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이런 작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씨 농사의 모토는 직거래다. 벌레 먹은 양배추와 크기와 당도를 보장하지 못하는 수박의 성장 이야기를 담아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한다. 또한 내 아이가 먹을 수 있으면 당연히 어른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사람의 몸에 가장 안전한 작물을 생산, 가공해 판매한다. ‘천 번의 반품이 들어와도 받는다’는 직거래의 모토는 지난 며칠 동안 4번의 전화를 받게 했다. ‘이런 양배추를 팔아줘서, 키워줘서 고맙다’는…. 진심이 담긴 유기농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농부, 이을숙 씨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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