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게 농사짓는 일, 여기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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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게 농사짓는 일, 여기라 가능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9.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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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2>

홍동면 금평리 이연진, 남경숙
직접 지은 스트로베일 하우스에서 두 딸과 함께 한 이연진, 남경숙 씨 부부.

잡초와 잡초 사이에 가지, 고추, 땅콩 등이 심어져 있다. 자칫 하다가는 작물을 밟을 수도 있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심어놓은 작물을 살핀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타들어간다는 표현이 맞다.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작물 한 번 쓰다듬는다. 날씨에 의존하는 농사기에 앞으로도 농사를 놓지 말고 살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며 산다.

오롯이 자연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이연진, 남경숙 씨 부부의 귀농살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이 씨가 먼저 귀농을 하자고 했다. 남 씨는 노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내려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귀농을 결정하는 시점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는데 지하철을 탔다. 그 순간 도시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태어날 우리 아이도 성장하며 이 틈에서 자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지하철은 많은 모습을 담고 있다. 어딘가로 끝없이 향하기만 하는 사람들,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는 교통수단들과 숨 막히는 습한 냄새, 지하철 문이 닫히고 열리는 순간 내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터널을 통과하면 어느 순간에는 밝은 빛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데 지하의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하철은 마치 답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씨는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과연 평생 할 수 있는 일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다. 부부는 귀농학교를 다니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홍동면에 내려온 것은 2009년이지만 처음 귀농하면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잠시 공주에 머물기도 했다. “지리산 산내에서 6개월 정도 생활도 해보고 공주에서 대전을 다니며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속 홍동의 문을 두드렸다.”

홍동에 터전을 잡으며 품앗이로 집을 지었다. 홍성의 제1호 생태건축협동조합인 ‘얼뚝’의 창단멤버이기도 한 이 씨는 자신의 집을 손수 짓는데 참여했다. 스트로베일로 완성된 집은 설계 과정에서 약간의 오차도 있었지만 다섯 가족이 살기에 따뜻한 보금자리로 완성됐다.

부부는 자연재배협동조합을 하다가 지난해부터 ‘풀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논밭이 풀로 가득한 농장, ‘논밭의 풀로 완벽한 농사가 가능한 충만한 기쁨의 농장’을 모토로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무모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이곳이라 가능하다. 다른 곳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텐데 다행히 주변 분들이 너그럽게 봐주시는 것 같다.”

잡초 하나가 올라오면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농부다. 그 일이 습관이 돼버린 농부는 길을 지나도 아스팔트 틈 사이에서 올라온 잡초 하나를 기어코 손가락으로 파헤쳐 뽑아낸다. 풀풀농장에서는 그런 일은 생각도, 실천도 하지 않는다. 단 너무 높게 자라면 낫으로 베어주는 정도는 한다. 너무 덥거나 귀찮으면 안 해도 된다. 농부 맘이다.

“한 달에 두 번 마르쉐 장터를 찾아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진다. 수확물이 많지는 않지만 소비자들이 알아주는 재미도 있고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마르쉐에서 1년에 한 번씩 농가 체험을 하는데 실제로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귀농을 한 사람도 더러 있다.”

부부는 요즈음 주변 사람들과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부부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수제맥주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하고 더러는 성공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이라 더 의미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도 배곯지 않고, 아이들이 시골에서 건강하고 자유롭게 성장하고, 평생직장인 논과 밭이 있으니 그 이상 더 원하는 것은 없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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