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문화자산으로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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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문화자산으로 보존한다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9.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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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3〉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형성돼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관광명소가 됐다.


보수동 책방골목 정류장 같은 헌책방 여행의 징검다리 역할 하는 곳
보수동 책방골목 전성기 1960~80년대, 당시 70~80여개 책방이 있어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지 않고 부산을 알거나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국내 유일 헌책방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자산으로 보존할 움직임 


낡고 오래된 헌책 속에는 오래된 추억이 있다. 누런 책장과 누군가의 손때가 묻고, 간혹 책장에 쓰인 메모나 낙서까지도 모든 ‘아날로그의 보고’를 품은 부산의 숨겨진 명소가 바로 ‘부산 보수동의 책방골목’이 아닐까. 무거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누군가의 손때 묻은 흔적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 대청로 사거리에서 동서로 길게 이어진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책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비켜서기도 버거운 비좁은 골목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헌책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지만 헌책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장소이기도 하다. 

같은 처지의 헌책과 겹겹이 살을 맞대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느림의 여행길이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이 정류장 같은 헌책방은 여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곳이다. 번잡한 오고 감 속에 가끔 잃어버린 책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잊혔던 저자를 만나기도 하는 곳, 뜻밖의 만남과 이별 속에 반가움과 아쉬움이 늘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제는 전국에서 독보적이다시피 남은 책방골목이 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지난 60여 년간 자리를 지키면서 아직도 새 주인을 기다리는 헌책을 찾아 골목길로 들어선 것이다.


■ 1960~1980년대 80여개 헌책방 전성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부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거나 피난민들이 가져온 책을 생활을 위해 팔고, 피난 온 학교 교수들과 학생들이 책을 사는 거래가 이뤄지면서 헌책방 골목이 형성됐다. 전성기였던 1960~1980년대엔 80여 개의 헌책방이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형서점의 등장과 인터넷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현재는 50여개로 줄었다. 2000년대 초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책방의 90%가 건물을 임대해 영업하는데다가 책방 주인의 평균 나이가 60~70세로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폐점하는 헌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헌책방 주인들은 골목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카페와 갤러리를 꾸미고, 축제를 기획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쇼핑몰을 만들어 활로를 찾기도 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이젠 부산의 관광명소 중의 한곳이 됐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 같은 헌책방 골목에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그러는 사이 결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갖고, 또 책을 사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지였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살아야만 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됐다. 처음 시작은 일본인이 떠난 자리에 사람들이 모이면서부터다. 이후 전쟁 통에 피란민이 장사를 했고 미군의 군용물자,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이 주로 거래됐다. 당시 부산의 국제시장 한편에서는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을 사과궤짝에 올려놓고 파는 거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아이들의 교과서도 있었고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영어책도 있었다. 사과궤짝 위에서 시작한 중고책 시장은 담벼락에 책장을 놓고 팔던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작은 서점들이 모인 헌책방 거리로 발전했던 것이다. 

삶이 어려웠던 피란시절. 먹고사는 일이 버거우니 아이들 가르칠 학교가 제대로 있었을까. 구덕산 자락의 보수동 뒷산에는 수많은 피란민 아이들을 가르칠 노천교실과 천막교실 등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당시 학생들의 통학로였던 보수동 골목길에 책방이 하나둘 모여들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신학기가 되면 가난한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때때로 희귀본이나 값진 개인소장 고서도 흘러들어와 지식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최고 전성기는 1960~1980년대로, 당시에는 70~80여개의 책방이 있었다. 지금도 약 200m의 좁은 골목구석에는 50여개의 책방이 오밀조밀 붙어 영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들도 상당 수 있다. 가게마다 보유하고 있는 책의 종류가 달라 원하는 책을 구하려면 발품을 꽤나 팔아야 한다. 헌책은 새 책 보다 70~40% 저렴하다. 물론 책방주인과 협상도 가능하다. 초·중·고 교과서나 참고서, 아동도서와 소설류, 사전류·고서적·만화·잡지·외국도서·실용도서 등 세상의 모든 책이 이곳으로 흘러와 새 주인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과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지 않고 부산을 알거나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안으로는 한국전쟁의 깊은 상처가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붙잡으며 발길이 머물게 하는 곳이 바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가난하던 우리의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느린 시간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부산 구경을 오시는 분들은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을 보고서야 부산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책방들이 마주보고 있는 좁은 골목길,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탐스러운 것들은 상처를 겪은 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속에 안으로 깊은 상처가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붙잡으며 발길이 머물게 합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가난하던 우리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에 느린 시간 속에서 지나간 세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옛것은 아름다우나 요란하지 않고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오늘 걸어가는 이 길을 향한 희망을 말없이 선물합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켜온 책방 주인장의 말이다.

부산시 중구 보수동 1가. 폭이 몇 미터인 좁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헌책방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좁다란 골목이 있다. 50여 개의 헌책방들이 들어찬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게마다 층층으로 쌓인 수많은 책들이 별세계를 연출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은 헌책방 거리라는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들어오는 입구가 예전과 좀 달라졌지만, 이 골목은 처음 생겨났던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입구 쪽이 옆 도로 확장공사 때 좀 깎여나갔어요.”

보수동 책방골목의 터줏대감들은 깎여 나간 자리에 생긴 로터리 한쪽에 서 있는 ‘책 배달하는 소년 동상 터’가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6·25한국전쟁이 터지고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밀려들 때 보수동 인근에는 각지에서 피난 온 학교들도 천막으로 임시교사를 세워 수업을 계속했다. 날마다 책 보따리를 들거나 짊어진 학생들이 보수동 골목을 수없이 지나다녔다. 평양에서 온 청년과 전북 김제에서 온 처녀가 여기서 만나 결혼한 뒤 포장지를 깔아놓고 책 노점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책 몇 권을 놓고 번역문을 오려붙여 빌려주다가 본격적으로 헌책을 모아 팔았다고 한다. 가난했기에 오히려 헌책장사는 승승장구했다는 것이다. 두어 칸 문 칸 방을 빌어서 연 가게들이 번창하자 비슷한 책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로터리의 책 배달하는 소년 동상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그 터요.” 열세 살 때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헌책을 팔고 있는 책방주인장의 말이다. 오롯한 보수동 책방골목의 산 증인의 살아 있는 증언인 것이다.

이제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헌책방거리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문화자산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가 곧 우리나라 도서 출판시장의 변천사로 보존가치가 높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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