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달 5월이다. 빠르게 가족 간의 유대 관계가 와해되고 해체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가정 형태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족 구성을 알아보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4주에 걸쳐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④ 노인 세대 가정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생활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엄하길(월산리. 89) 할아버지와 김흥순(82) 할머니는 슬하에 딸이 하나 있다. 딸은 출가하여 전주에 살고 있으며 가끔 들른다. 부부는 50여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엄하길 할아버지는 7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쳐 반신불수가 되어 거동이 불편한 상태며, 김흥순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한다. 백월산 밑에서 토지 주인의 묘를 손봐주고 산을 지켜주는 대가로 임대료 없이 살고 있는 집은 이미 오래 전에 지어 많이 낡았지만 수리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고 한다.
“제일 힘든 것은 몸이 너무 아픈거야. 특히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그나마 할아버지는 요양보호사가 오기 시작하면서 많이 좋아졌어. 혼자 화장실만 다녀도 얼마나 다행인데”라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했다.
부부 앞으로 노령 연금과 장애 연금이 나오는데 그나마 1년 전보다 10여 만원이 줄었다고 한다. 다행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문하여 매일 2시간씩 물리치료를 해 주는 요양보호사가 있어 틈틈이 약도 사다 주고 밑반찬도 챙겨주고 있다면서 너무 고마워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 고령환자들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작지만 소중한 지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가 됐지만 고령농업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또한 혼자 사는 노인의 비율도 늘고 있다. 읍·면지역의 65세 이상 독거노인 가구비율은 25.9%(2008년 기준)로 대도시의 16.5%보다 훨씬 높으며 농촌 독거노인 가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 노인들 중 상당수는 소득이 아예 없거나 낮아 당장 먹고사는 것부터 걱정해야 한다. 읍·면지역에 사는 65세 이상 고령농업인의 33.7%가 월 50만원(2008년 기준)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홍북면 석택리에 사는 조 할머니(72)는 5남매의 자녀를 두고 있으나 그 중 막내아들 내외, 손녀와 생활하던 중 지난해 막내며느리가 자궁암으로 사망하자 막내아들은 아내 사망 후 사업 실패로 부채를 지고 현재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자녀를 돌보지 않아 현재 조 할머니가 초등학생인 손녀를 돌보고 있다. 할머니는 노인복지관에서 노인일자리 활동으로 월 15만원을 수령하며, 지난 3월부터 손녀가 수급자가 되어 30만원씩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고령인 할머니 혼자서 손녀의 학원비와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기만 하다.
노인복지관 한동수 사회복지사는 “지금은 국가 전체 노인을 상대로 한 ‘보편적 복지’도 필요하지만 농촌지역 노인만을 위한 ‘선택적 복지’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며 “어떻게 보면 고령화 사회에서 독거노인 문제가 저소득층이나 생활보호대상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보편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천읍에 거주하는 이 할머니(65)는 간질환자로서 미혼이며 부양가족 없이 홀로 살고 있다. 현재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이며 간질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음식이나 생활비 등의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노인의 빈곤, 질병, 고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사회, 국가가 같이 해결해야 한다. 국가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복지 등 막대한 재정소요와 지원인력의 한계 등으로 이 문제를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겠지만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노인들의 생활안정, 건강관리,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국민, 기업과 봉사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인돌봄서비스 일을 하는 최미림 사회복지사는 “현재 노인복지관에서는 노인돌보미 1명 당 27명의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이웃과 동떨어져 있거나 말이 없는 분들을 항상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며 고독사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주 1회 방문, 주 2회 전화 서비스를 한다. 전화를 드리면 어르신들이 너무 반가워하시고 매일같이 전화를 기다린다고 말씀들 하신다”며 경제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의외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어르신이 많다고 밝힌다.
명절이면 읍내에 있는 경로당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면 단위 오지 노인들은 이런 혜택도 받지 못해 참혹할 만치 외로움을 안고 산다.
이제 생색만 내는 경로행사나 노인 지원시책이 아니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노인 일자리사업이 필요하며, 외롭고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는 도우미 사업도 절실하다. 법적으로 자식이 있기 때문에 지원받을 수 없다는 고식적 행정제도를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선·보완할 필요도 있다.
노인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요, 농촌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또한 지금 늙고 병들어가는 노인세대 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숱한 과제가 있지만 노인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최우선 순위로 해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이다. 왜냐하면 곧 우리들의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