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장중한 안개가 어우러진 신비한 길
상태바
빗소리와 장중한 안개가 어우러진 신비한 길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8.25 1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33구간
산 행 일 시 : 2011년 7월 2일 - 3일
산 행 구 간 :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삼거리 - 연가리골삼거리 - 바람불이삼거리 - 쇠나드리삼거리 - 조침령
산 행 거 리 : 21.3km
산 행 시 간 : 10시간 30분



새벽녘 구룡령의 하늘을 구름이 덮고, 안개가 자욱하다. 비가 오지 않기를 기원하며 산림전시관을 뒤로 하고 나무계단을 따라 구룡령을 출발한다.(02시30분)

구룡령(九龍嶺. 1031m)은 북으로는 설악산과 남으로는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강원도의 영동(양양군)과 영서(홍천군)로 가르는 분수령이다. 일만골짜기와 일천봉우리가 일백이십여리 구절양장(九折羊腸)고갯길을 이룬 곳으로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서린 기상을 보이는 곳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한편 구룡령 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 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으며, 산세가 험한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보다 산세가 평탄해 양양과 고성 사람들이 한양으로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명칭에서 유래하듯 옛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넘어갈 때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급제를 기원하며 넘어 갔다고 한다.
치받골령을 지나 갈전곡봉(葛田谷峰.1204m)에 도착한다.(04시20분)

칡 뿌리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가칠봉, 사삼봉, 구룡덕봉 지나 방태산을 빚고는, 소양강 지류인 방대천을 비롯하여 계방천, 내린천 등의 발원지를 이룬다. 갈전곡봉부터 분수령 서쪽은 홍천고을 대신 인제고을을 끼고 간다. 나무 벤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조침령 까지는 17.05km, 8시간이라는 표지석은 작고 불품이 없다.
구름속을 뚫고 솟아 오르는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보면서 1000m 내외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왕승골삼거리(900m)에 도착 비닐덮개를 치고 아침을 먹는다.(06시10분)

왕승골삼거리는 왕승골로 해서 갈천리로 통하는 길이다. 갈천리(葛川里)는 춘궁기에 갈근(葛根)으로 근근히 살아 간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우의를 벗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참나무가 무성한 능선에는 당단풍과 함박꽃나무가 반긴다. 1037m봉을 힘들게 올라왔건만 조망은 되지 않고 잡목만 무성하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대간길은 너무 좋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이 이어지면서 연가리골 삼거리(805m)에 도착 한다.

‘정감록’에 보면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 일대는 난리를 피할수 있는 최고의 피난처로 ‘3둔 4가리’ 를 꼽고 있다. 3둔은 살둔(生屯), 달둔(達屯), 월둔(月屯)이며, 4가리는 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또는 곁가리를 넣어 5가리라고도 한다. ‘둔’은 산 기슭의 평평한 땅을 말하며, 가리는 계곡가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말한다.

‘정감록’에 나와 있는 기린곡의 비장처(秘藏處)로 ‘3둔4가리’를 꼽고 있다. 조경동(朝耕洞)의 원명은 아침가리로 한자로 표기하여 아침조(朝), 밭갈경(耕)자를 써서 조경동이라 한다. 조경동이라고도 하는 아침가리는 산이 높고 험해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 만 비치고 금새 저버릴 만큼 첩첩 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아침가리도 재앙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살던 곳 중의 하나다. 역시 비경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특히 하류의 십리 구간은 참으로 깨끗하다. 소(沼)와 아담한 폭포가 어우러진 계곡 풍광이 수려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암반의 자연스런 미에 마음을 뺏기는 곳이다.
또 경사도 완만하며 중간 중간에 서식하고 있는 열목어나 산천어도 쉽게 볼 수 있다.

4가리 중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계곡은 방태산에서 발원한 적가리골이다. 지세가 마치 넓적한 그릇을 닮은 적가리골은 오랜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긴 운석 분지라고도 한다. 적가리골 경관의 핵심은 계단 폭포, 널따란 마당바위, 가을에 오면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만날수 있는 환상적인 곳이디. 적가리골을 품은 방태산은 초여름이면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돌 틈에 앙증맞은 바위취가 흰 꽃을 피우고, 새하얀 함박꽃, 자주빛 범꼬리, 코끝을 자극하는 정향나무 꽃들이 환상적이다.

 


적가리골 초입엔 산삼 캔 자리에서 솟는다는 방동약수가 있다. 1670년경 인제의 심마니가 산삼을 캐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산속을 헤맸지만 매번 허탕만 쳤다. 그러던 어느날 심마니는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의 계시를 받고 적가리골 아래에서 꿈에 그리던 산삼을 발견했다. 그것도 삼대 위에 가지가 여섯 개 있고, 종자가 만 개 달렸다는 ‘육구만달’ 이었다. 이는 800년에서 1000년쯤 묵어야 되는 천종삼(天種蔘)이다. 방동약수는 심마니가 육구만달을 캐어낸 바로 그 자리에서 샘솟는다. 300살된 엄나무 아래의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방동약수는 탄산, 철, 불소, 망간 등이 주성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1891년 포수 지덕삼이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수렵생활 중에 발견 하였고, 효능이 좋아 업혀 올라 왔다가 제 발로 걸어 내려간다는 개인약수, 한국의 명수(名水) 100선에 드는 삼봉약수 등이 있다.

연가리골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956m봉을 지나 잠시 내리막인가 했더니 다시 오르막이다. 오늘 구간 중 두번째로 높은 1061m봉에 오르니 넓다란 헬기장이다.
비는 여전히 세차다. 여름 산행에 적당히 내리는 비는 몸도 마음도 시원하지만, 오늘처럼 비가오는 대간길은 비에 젖은 배낭과 흠뿍 젖은 등산화 때문에 발길은 더디고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빗소리와 장중한 안개가 어우러져 신비한 숲 길을 걷는 멋스러움은 대간꾼만이 누리는 복이다.
바람불이삼거리(728m)를 지나 쇠나드리삼거리(703m)에 도착한다.

쇠나드리삼거리는 옛 조침령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소(牛)까지 날려 버렸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실제로 강한 바람이 사시 사철 그치지 않는 곳이다. 일명 ‘바람 부리’ 라고도 불리운다.
쇠나드리를 지나 흐르는 계곡이 진동계곡이다. 봄에는 기화이초, 여름에는 절벽에 폭포와 소(沼), 가을에는 단풍, 겨울엔 설경이 아름다운 사계절 관광지이다. 추대분교 일대를 추대계곡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계곡 최고의 절경이다. 주변에는 방동약수와 방태산 자연 휴양림 등이 있다.

황이리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조침령 임도를 만난다. 이곳의 임도는 임도가 아닌 조침령 터널이 개통되기전 넘나들던 도로였던 것 같다. 지금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움푹 패인 모습이 흉물스럽다. 때맞춰 비는 세차게 내린다. 붉은 흙탕물이 넘쳐 흐르는 임도를 힘겹게 내려오니 먼저온 일행이 반긴다.(13시)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을 벗어버리고 계곡에서 찌든 땀을 씻으니 피로가 풀린다.
오늘 대간길은 비와 안개 그리고 운해가 산을 신비롭게 가꾸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